겸손과 감사를 느끼며
청명(淸明)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
청명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자연의 순리를 관찰한 선조들의 혜안은 참으로 대단하다. 때가 되면 지나가고 때가 되면 돌아오는 하늘과 땅을 보고 24 등분한 계절의 마디는 정말이지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청명이 지나면서 하늘은 이제 나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듯 그 찬란함을 온 세상에 뒤덮는다. 이 시기에 들어 내 하루의 시작을 겸손하게 만들고 나의 영혼을 정화하며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장소는 우리 집 화장실 작은 창문 아래이다. 비록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크기지만 황금으로 빛나는 창가를 바라보면 없던 신앙심도 생길 것 같다. 왜 교회나 성당에서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보면 실로 그런 마음이 들지 않던가? 그곳이 오래된 교회이든 작은 집 화장실 창문이든 비춰 드는 햇살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
방충망을 옆으로 밀어 열고 가만히 서서 한참을 바라본다. 맞은편 빌라의 붉은 벽돌에 아침 햇살이 널려있다. 조금 더 각도를 틀어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 날은 옅은 하늘이, 또 어떤 날은 진한 하늘이 창문 문틀에 걸쳐서 살짝 보인다. 창틀 모서리에는 작은 교회 간판이 조그맣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창 밖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폈다,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 뒤에서 본다면 꽤나 웃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늘 감상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본다. 마치 풍향계와 온습도계 마냥 그날의 분위기를 팔로 가늠해본다. 한낮에 팔을 내밀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손바닥에 내려온다. 가만히 느끼다 보면 조금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온다면 제법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화장실 창문 아래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는 어떨지 생각해본다. 오늘도 이런 날씨를 맞이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어 감사하다. 예전에는 이런 감상이 이다지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두 눈과 마음에 창가에 비친 햇살을 꾹꾹 눌러 담는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하여 순리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