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비행하던 승무원들끼리 그곳에 대해 제일 처음 묻는 말은 ‘호텔 주변에 슈퍼마켓 있지?’이다. 베이스가 두바이라고는 하지만 100시간을 넘나드는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두바이에서는 단지 잠만 자고 일어나서 비행을 갈 정도니, 일상적인 장을 보는 일이나 쇼핑, 여가생활 등은 그때그때 가게 될 나라에서 해결하게 된다.
각 나라의 기후와 성격에 따라 세계의 슈퍼마켓들은 각자 다른 모습, 다른 냄새, 또 다른 물건들을 팔고 있다. 나는 그런 다양함을 눈에 보고 경험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마트의 진열 방식이라던가 전체 디자인의 일반적인 것은 전부 공통으로 일반화가 되었다지만, 그 속에서 아직 빛나고 있는 그 나라만의 것을 찾는 순간 우리는 더 기뻐진다. 이런 ‘다름’을 경험하려고 멀리 여행을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하게 체 인화된 식료품 마트도 편리하고 그 나라의 특색을 충분히 찾을 수 있겠지만, 그곳의 정서를 더욱 느끼고자 오래된 구시가지의 시장으로 간다. 탄자니아의 채소/과일 시장에는 채소와 과일이 반, 그리고 벌레가 반이 있다. 그래도 아이 얼굴만 한 아보카도들과 튼실한 파인애플이 쌓여있는 좁은 흙길을 걸으며 구경하다 보면, 이곳 사람들은 왜 다 덩치가 크고 살결이 탱탱 한지 알 것 같다.
헝가리의 전통 있는 과일 시장은 온갖 색채가 넘치는 과일들로 가득하다. 블루베리도 산처럼 쌓였고, 잘 익은 복숭아는 멀리서부터 벌써 향긋한 냄새가 난다. 수박 반 통, 복숭아 여러 개, 체리 조금. 그리고 기억 안 나는 여러 작은 과일 사서는 낑낑거리며 호텔로 걸어 들어오던 그 여름날. 땀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 먹은 그 수박의 맛과 복숭아 과즙 얼굴에 다 묻히며 정신없이 먹었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식료품점에서는 냉동된 아사이베리 한 박스를 너무나 사고 싶었는데, 두바이 집에 가기까지 그 큰 박스를 냉동 보관할 수가 없어 한참을 냉장고 앞에서 고민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결국엔 작은 아사이베리 아이스크림 하나 그 자리에서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파리에서는 마트 치즈 코너에서 프랑스 친구가 부탁한 치즈들을 사기 위해 한참을 치즈 냉장 진열대를 들여다보았다. 이 치즈 저 치즈 내게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브랜드마다, 모양마다, 색깔마다 맛이 천차만별이라 한다.
이번 휴일 아침은 직전에 프랑스에 다녀왔으니 바게트에 치즈, 버터를 올려 먹는다. 다음 휴일은 우간다에 다녀왔으니 거기서 사 온 대왕 아보카도 한 통 잘라 냉장고에 두고는 며칠을 질리게 먹는다. 아직 먹지 않은 새 아보카도는 긴 비행에 가져가 동료들과 나누어 먹는다. 아프리카 산 대왕 아보카도는 언제나 모두에게 인기 만점이다.
이렇게 먹고살고 있으니 처음 내가 승무원을 꿈꾸던 시절, 작은 교회에서 받은 신년 말씀 카드가 생각이 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이사야 60:15-16
온 나라 산지의 먹을 것을 자양 삼아 몸도 마음도 기쁨으로 살찌우는 삶.
누가 그랬다.
‘좋은 음식은 사람을 선하게 만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