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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26. 2020

종려나무의 계절


집 밖은 후끈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은 집 안에서 나는 다음의 여행을 위한 짐 가방을 정리한다. 나는 다른 멋쟁이 친구들처럼 화려한 옷가지들을 쇼핑해서 매번 바꿔가며 입지 않는다. 봄에 입을만한 봄옷 가방, 동남아나 그 외 더운 여름 나라에 갈 여름옷 가방, 간절기용 카디건은 옵션으로 항상 가지고 다닌다. 또 겨울용 외투와 두꺼운 옷 가방 그리고 털 부츠 세트, 이렇게 사계절용 옷 가방들은 옷장에 항시 대기 중이다. 간편하게 옷 가방만 바꿔 넣어가면 되니 매번 짐을 정리하는 데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그 달에는 희한하게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존재하는 나라들을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매번 이리저리 날씨가 변하니 감기 기운도 항상 오고 간다.


봄은 봄 만의 싱그러움이

여름은 여름만의 활기가

가을은 가을만의 정취

겨울은 겨울만의 따뜻한 핫 초콜릿 한 잔


어느 나라를 가던 호텔 밖을 나와 걷다 벤치에 앉는 사람은 똑같은데, 그새 옷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니 참 우스운 경험이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 제일 좋은 날씨는 이 사막의 건조하고 쨍쨍한 햇살.

변화무쌍한 내 마음의 계절과는 달리 항상 눈뜨면 한결같은 햇빛, 모래, 하늘이 오늘도 꽤 괜찮은 날이라며 내 몸을 일으켜 준다.


잔걱정도 햇살에 금방 마르고, 고민은 짧게 하라고 하늘은 더욱 밝게 빛난다. 가끔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으로 나를 정신 차리게 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내리는 비는 모두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창밖 큰 대추야자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길게 뻗은 잎들을 내어주고 있다. 대추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저 축복받은 야자나무가 오늘은 특히 더 예뻐 보인다. 


중동에서는 대추야자 나무에 대한 구전이 수없이 많다. 신이 아담을 빚은 진흙의 남은 것에게서 생겨난 것이 대추야자라고도 하고, 아담이 낙원에서 쫓겨날 때 식량으로 밀, 이삭 그리고 대추야자를 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고도 한다. 무슬림의 예언자 무하마드는 라마단 금식 기간에 낮 동안의 금식을 끝내면 여섯 알의 대추야자와 우유 한 컵을 마셨다고 한다.


또 성경에 종려나무로 지칭된 것은 대추야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은 대추야자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주님 나를 구원하소서)를 외쳤다.

성경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설명할 때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꿀이 벌꿀이 아니라 중동의 대추 시럽을 꿀로 해석한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함성에 무너진 ‘여리고’ 성은 대추야자가 많이 자라는 곳으로써 종려의 성읍으로 불렸다.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는 대추야자 잎들을 바라보니 어쩜 내가 중동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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