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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26. 2020

화려한 수영장의 시간


두바이 다운타운에 위치한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를 초대해준 친구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수영장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 멋지게 만들어진 곳, 그중에서도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친구들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웅장한 부르츠 칼리파와 두바이 몰 분수 쇼 전경이 바로 앞에 보이는 인피니트 수영장에는 늘씬한 모델들, 여유로운 노인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아주 다양하게 중동의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자칭 사회적인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명당자리 그늘막 의자에 앉아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데 이 자리의 터줏대감이 여유롭게 걸어오더니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그는 가벼운 대화를 할 때도 단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배테랑 변호사이다.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고 주위 사람들을 통솔할 줄 아는 에너지가 있었다. 매일 아침, 수영장에 와서 전화 통화로 업무를 하는 그는 이곳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다 알고 있다. 또 이곳은 저녁노을이 참 예쁘다고 말하며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뿌듯하게 어깨를 들썩인다.


'일상이 화려하구나!'라고 대답했지만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그가 왠지 외로워 보였다. 매일의 일상을 종일 호텔 수영장에서 보내는 사람의 일상. 수영장의 맨 윗자리에 앉아 명품 티 박스에 차를 담아 따라 마시며 수영장 전경을 바라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과 새로운 대화를 나누는 하루하루. 언뜻 좋아 보인다.


누구나 저마다의 성향과 인생이 있고 그것은 다 자신이 선택한 삶일 테다. 혹은 내 개인적 선택보다는 어떤 환경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을 수도 있다. 승무원인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경험한 그는 매우 자유로워 보이기도, 그 자유 속에 갇힌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다른 나라에, 그는 이곳에서. 그렇게 한 가족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 지성과 매너, 화려하지만 겸손한 언변, 카리스마가 커가는 아이들 옆에 없으니 내가 다 아쉬운 건 내가 오지랖이 넓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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