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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26. 2020

이상한 조합


취리히 비행을 위해 모두가 브리핑 룸에 모였다. 회사 내에서도 스위스 비행은 항상 인기가 많기에 이번 편 동료들의 얼굴에도 벌써 즐거움이 가득하다. 브리핑에서 기장은 우리가 도착할 즈음에는 흐린 날씨가 예상된다며 현지 체류 중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밝았던 얼굴들에 순간 먹구름이 끼었다. 나는 그래도 좋다. 비 오는 그 도시는 특히 더욱 운치 있으니까. 어느덧 비행을 마치고 늦은 밤에 취리히에 도착했다. 도시는 이미 내일의 일기예보를 예견하듯 축축한 공기를 품고 있었다.


푹 쉬고 일어나 아침에 간단히 조식을 먹었다. 창밖엔 먹구름, 그리고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챙겨 들고 호텔 회전문 밖을 나가는데, 같이 비행했던 이집트 동료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길을 나서는 나와 마주쳤다.


그는 회사에 막 입사했고 이 도시가 처음이지만, 비가 와서 다른 팀원들이 나가지 않는다며 본인도 그냥 호텔에 있어야 하겠다고 푸념을 한다. 나는 그를 내 하루에 초대하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우산을 챙겨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취리히 시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각자 호텔에서 빌린 검은색 우산을 쓰고 취리히의 시내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근처 호수 변 벤치에 앉아 따뜻한 커피와 핫 초콜릿을 마시며 호수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여느 청춘들의 대화. 우리들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 도시의 관광객들, 현지인들 그리고 난민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감을 관찰하였다.


이집트 출신인 그는 이곳의 난민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자국의 상황이 위험해서 다른 나라로 와 난민이 되었지만, 스위스에서 난민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그들을 오히려 자기 자신의 위치보다 높이 평가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많은 스위스 사람들이 우리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어떤 여인은 우리에게 ‘What a weird combination?!’ 굉장히 이상한 조합의 커플이네! 라며 우리의 국적을 물어보았다. 젊은 한국 여자와 이집트 남자가 함께 있으니 다들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그러한 관심에 웃고 떠들며 호텔로 돌아왔다. 서로에게 고마웠던 하루였다며 인사하고, 나는 그날을 기억 속에 잘 간직했다.


그로부터 일이 년이 지났을까? 코로나로 인해 정리해고 대상이 된 그는 이제 회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며 회사 승무원 커뮤니티에 작별의 글을 올렸다.


그의 이름과 글을 보자마자 나는 응원에 댓글을 달았고, 그는 내게 곧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의 레이오버에 자기를 데리고 나가주어서 고마웠다고, 새 출발에 대한 두려움을 신에게 맡긴다며 다시 한번 그때 그 비 내리던 취리히 에서의 시간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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