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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26. 2020

이천 원


한여름. 두바이 집에서 전철까지 걸어가던 중에 한 외국인 건설노동자가 내게서 멀리 떨어진 채로 부탁을 해온다. 자기를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요즘 시국도 그렇고 이곳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던 터라 역시 나 또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현금이 없었기에 근처의 슈퍼마켓을 가리키며 저곳에서 먹을 것을 사줄 수 있다고 말하니 천천히 뒤따라온다.


덩치가 큰삼촌뻘의 중앙아시아 출신 아저씨. 슈퍼마켓을 걸어가며 뒤따라오던 그를 흘긋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깐 이상한 걱정을 해본다. 혹시나 내가 예상하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사버리면 어떡하지? 친절을 이용하는 사람을 만나 도리어 내가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슈퍼에 도착하고 나는 그가 고르는 것들을 바라보고 내 좁디좁은 인간성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조용히 계산대에 올려놓은 작은 코카콜라 한 병, 그리고 작은 빵 한 봉지.


계산원이 이것들의 금액을 말하자 그는 흠칫 놀라며 빵을 바꾸겠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카드를 건네며 결제를 부탁했지만, 그는 기어코 더 저렴한 빵으로 바꿔온다. 콜라 한 병과 빵 한 봉지의 값. 2,000원 남짓.

미안한 마음에 과일코너에서 바나나도 권해보고 이것저것 더 사라고 말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하면서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뒤돌아 걷는 내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 이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중동의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원한 콜라 한잔과 빵 한 조각을 배 속에 채울 때, 내가 향하고 있던 두바이 몰에서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만 원짜리 커피와 함께 달콤한 디저트를 포크로 찍어대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겠지.


그저 나는 이 세상에는 흑과 백이 있다는 것만은 안다.

오른쪽과 왼쪽

하늘과 땅

기는 것과 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그저 이 순간을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나는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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