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한달 살기 #1
도쿄로 발령이 났을 무렵, 회사로부터 가고시마로 장기 출장을 다녀오라는 첫번째 미션을 받았습니다. 도쿄에서 연말 연초 휴일을 여유롭게 보내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시키는대로 해야하는게 직장인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규슈 남부 지역의 아직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가고시마 (鹿児島), 주위에 얘기해봐도 골프치기 좋다는 말 외에는 어떤 동네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1년 동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프로젝트는 좀 연기되었지만, 이왕에 '가고시마'라를 지역을 알아가보는 기회로 삼아보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먹지 않으면 심적으로 버틸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는 도쿄에서 몇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가고시마행 국내선을 탑승하기 위해 하네다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하네다공항이 도심 공항으로 유명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세련되고 현대화된 공항인지 몰랐습니다. 뭔가 '새로운 시대의 공항이란 이런거다'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오전 8시이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스시집에 갖춰입은 일식 쉐프가 정성스럽게 니기리를 쥐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공항 식당이 비싸고 맛도 없고, 어쩔수 없이 먹는 느낌이었는데, 프로페셔널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어보니 차이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비행기 탑승 후 2시간 정도가 흐르고 창문을 통해 가고시마의 상징, 사쿠라지마(桜島)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쿠라지마에 대한 이미지는 고로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남자 아이가 화산재 날리는것 때문에 지긋지긋해하던 장면 뿐이었습니다. 활화산으로 분류되는 사쿠라지마는, 찾아보니 올해 5월에도 분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는 모습이지만 분화할때는 새까만 연기가 치솟는다고하니 무섭기도 했습니다. 제가 있을때에는 그럴 일이 없길 바랄뿐입니다. 가고시마 공항에 도착해보니 정말 작은 공항이었습니다. 'ようこそ鹿児島へ(가고시마에 환영합니다)'라는 작은 표지판이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공항 8번 버스 승강장에서 가고시마중앙역행 리무진 버스를 탑승하고 약 40분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체크인하고서는 곧바로 중앙역에 랜드마크처럼 위치한 AMU PLAZA로 향했습니다. 퇴근 후에 수시로 드나들게될 AMU PLAZA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봐도될 것 같습니다. 1층에서는 '포켓몬센터 출장소'라는 이름으로 팝업스토어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십몇년전 초등학생 때부터 보던 피카츄, 파이리, 꼬부기를 아직도 우려먹고 심지어 갖고 싶게 만들다니. 일본 IP 산업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기나긴 구매 행렬을 보니, 가고시마에도 포켓몬센터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MU PLAZA는 지하1층 식품관, 마츠모토 키요시와 정말 큰 MUJI 등의 잡화점, 2층에는 스타벅스, 3~4층의 의류/스포츠, 4층에는 키노쿠니야 서점, 5층은 푸드코트와 피트니스센터, 6층은 멀티플렉스 영화관 까지 있을 것들이 다 있어서 자주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매일 방문중입니다) 2층 중앙역 부근에는 멧케몬이라는 스시 맛집을 추천받아서 꼭 한번 가봐야할 것 같은데 너무 줄이 길어서 못가고 있습니다. 1층에는 아까 말씀드린 '포켓몬센터 출장소' 처럼 팝업스토어가 기획됩니다.
연말 AMU PLAZA 외부에 아름답디 아름다운 일루미네이션 앞에서는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약속의 장소로 삼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반짝거리는 트리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자니 극한의 외로움을 느끼는 한편, 키노쿠니야서점에서 가고시마에 관한 많은 서적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돌아다녀 봐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일만 하다가 돌아갈 수는 없다는 전의를 다지며 숙소로 돌아온 첫날 밤이었습니다. 처음 맞는 숙소에서의 밤은 쌀쌀하긴 했지만 난방과 미리 챙겨온 전기장판과 난방 덕분에 따뜻했습니다. 규슈가 확실히 겨울에 따뜻하긴 한것 같습니다.
* 한국인 기준으로 잠바 하나만 챙겨가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낮에는 덥기도 합니다. 밤에는 추워지긴 하지만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영상 4도까지는 떨어지니 장갑 정도는 있으면 좋은 느낌입니다. 1월초 영하 14도까지 떨어지는 한국과 비교하면 날씨적으로는 천국입니다.
그렇게 처음 몇일은 출근하면서 멀리는 가지 못하고, 집정리를 하면서 생필품을 사고 (바닥이 겁나 차가워서 슬리퍼 필수입니다), 퇴근하면 중앙역 부근과 가고시마 최대의 번화가 덴몬칸(天文館)을 활보하였습니다. 덴몬칸은 여러 아케이드를 구성하고 있는데, 아케이드마다 '~~ 도오리(通り)'같이 길 이름이 있는 것같고, 길마다 컨셉을 달리하여 골목을 돌때마다 새로운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하나의 구획에서도 골목마다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가져갈 수 있다는게 참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연말의 가고시마는 어디든 북적였습니다. 송년회 인파로 바글바글했고, 좋아보여서 들어가는 족족 예약도 안하고 왔냐는 눈초리를 받으면서 퇴짜를 맞아 살짝 마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일본인 직장 동료에 털어놓아보니 가고시마는 중앙역과 덴몬칸 외에는 시골이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일수밖에 없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연휴가 아니어도 금요일 저녁은 항상 붐비되 평일 저녁은 좀 덜할 걸라고하니, 가고 싶었던 가게들은 예약을 하거나 평일 저녁에 한번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말 동안에는 혼자서도 갈 수 있는 맛집들로 주로 방문해보기로 했습니다.
○ 가고시마라멘 톤토로 중앙역앞점 (鹿児島ラーメン 豚とろ 中央駅前店)
- 대표 메뉴 : 반숙 계란을 넣은 톤토로 라멘 (半熟玉子入り豚とろラーメン) 1,140엔
- 평가 : ★★★☆ (추천)
일반적인 넓적한 차슈 대신 '톤토로'라는 희소 부위를 사용해서 젓가락으로 잡기만해도 형태가 흐트러지고, 집는 순간 면과 물아일체가 되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흐트러진다. 고기의 부위 자체가 굉장히 느끼해서 많이는 먹지 못할 것 같다. 국물은 겁나 진득한 돈코츠라멘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맑은 닭육수 같다는 생각도 드는 복합적인 맛이 났는데 알고보니 돼지뿐 아니라, 닭과 가츠오까지 우려낸 국물이라고 한다. 가고시마중앙역 가까운 곳에 있어서 술 마시고 가면 만족할 만한 집이다. 덴몬칸 지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생맥주가 없고 병맥주(빈비루) 밖에 없었는데 별로 맛이 없어서 아쉬웠다.
○ grill 44.5
- 대표 메뉴 : 검은 와규 큐브 스테이크 (黒毛和牛のサイコロステーキ) 1700엔
- 평가 : ★★☆ (추천)
주말 점심에 방문한 집으로 웨이팅 없이 입장이 가능했음.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하고 저녁 장사를 안해버리는 가게이다. (5천엔을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넣지말라는 메모를 보지 못하고 잘못 넣었다가 짜증을 들었음. 가고시마는 사람이 되게 좋다고 들었는데.. 소스는 일본풍(와풍)과 데미글라스 소스 중에 선택이 가능한데, 일반적으로 데미글라스 소스를 추천한다고 함. 대부분이 1인석이라 혼자서도 부담 없이 방문 가능함. 처음에는 진한 단맛이 오르는 양파 수프가 제공되고, 큐브 스테이크는 맛은 있으나 특징은 없고, 함바그가 정말 미친 맛이었다. 곁다리로 나오는 구운 마늘과 캐러멜라이징이 충분히된 양파 맛도 전부 강렬해서 남자스러운 맛이라 생각했지만 여학생들이 더 많았음. 다음에는 함바그만 있는 메뉴로 시켜도 충분할 듯.
○ 롯파쿠 (味の六白)
- 메뉴 : 롯파쿠 흑돼지 로스 정식 (六白黒豚ロース定食) 소자 2,150엔, 대자 2,550엔
- 평가 : ★☆ (비추천)
덴몬칸 중심부 거리의 2층에 위치해있음. 5시반 오픈 조금 전에 가니까 자리가 넉넉한 편이라서 바로 입장할 수 있었음. 쿠로부타 (흑돼지) 돈카츠 위주로 하는 집인데 한국인들이 꽤 많았고 관광객 접근성이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됨. 로스로 시켜서 그런지 당연히 지방 부위가 많았는데 좀 안좋은 느낌으로 질겅질겅 씹혔음. 튀김옷은 왜이렇게 기름진지 금방 물려서 호불호가 크게 갈릴듯 함. 고구마 소주 (이모쇼츄) 메뉴가 다양하게 있길래 추천을 부탁했더니 아예 몰르길래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래도 쿠로부타 돈카츠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가볼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