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쿠니신사(照国神社)에서 신년전야 보내기

가고시마 한달 살기 #2

by 최씨의 N차 도쿄

25년의 마지막 날까지 일하는 외노자의 인생이란... 투덜대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퇴근 후 가고시마에서 보낸 12월 31일에 대해서 남겨봅니다. 도쿄에는 메이지신궁, 센소지 (아사쿠사), 교토에는 야사카신사 등등 지역마다 하츠모우데(初詣)로 유명한 신사가 있듯이 가고시마에도 하츠모우데로 유명한 신사가 2곳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테루쿠니신사(照国神社)와 기리시마신궁(霧島神宮)입니다.


그런데 각자 신사에서 중심으로 모시는 신(主祭神*)의 성격에는 좀 차이가 있는데, 테루쿠니신사는 비교적 최근인 1809년 출생 사쓰마번의 11대 번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를 모시는 신사로 1863년에 창건된 굉장히 신생 신사입니다. 반면에 기리시마신궁의 경우에는 일본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의 직계 손자인 '니니기 미코토'로 천손강림한 일본의 초대 신인 셈입니다.

* 主祭神 (しゅさいじん) : 신사에서 모시는 신들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주요한 신


한국인으로서야 상관이 없는 일이겠지만, 어쨋든 두 신사가 주로 모시는 신의 연대에서 큰 차이가 나는게 신기했습니다. 가고시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지역에서는 신으로도 모시기도 한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기리시마시에서 사는 일본인 직원 동료는 테루쿠니신사를 기리시미신사와 동급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였습니다. 그래도 가고시마시에 살고 있는 한 하츠모우데 장소로 테루쿠니신사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 전에 저녁을 먹어야겠지요. 연말에는 덴몬칸의 거의 모든 곳이 북적여서 저를 슬프게 하더니... 12월 31일은 완전히 거리가 한산했습니다. 절반 이상의 가게는 저녁 6시 시점 닫은 상황이었고, 그 많은 사람들은 당최 어디로 갔는지, 사람이 북적여도 외롭고 사람이 없어도 외로운게 그냥 저는 지금 외로운 사람인가 봅니다.


저녁 메뉴는 소바로 정했습니다. 일본인은 한해의 마지막 날(大晦日, 오미소카)에는 소바를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토시코시 소바 (年し越し蕎麦)'라고 하는데, 유래를 찾아보니 첫번째, 소바는 잘 끊기기 때문에 지난 1년의 액운을 끊어버리고 다음해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고, 두번째로는 소바 면이 길기 때문에 가족과의 연이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는 '소바도코로 야마사키 (そばところやまさき)'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일단 생맥으로 목을 적셔주고 대표 메뉴인 텐자루(天ざる)를 시켰습니다. 소바의 메밀향은 너무 강하지 않고 은은하되 쯔유에 찍어 먹었을 때의 풍미가 일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덴몬칸에서 방문한 10개 정도의 맛집 중에는 최고였습니다. 쯔유에 넣어먹는 튀김 가루의 모양이라던가, 파 썰어놓은 시각적인 표현도 일본에서 밖에 구현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녁을 먹은후에도 자정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은 상황이라 이자카야를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오사사에 나온 '콘치키쇼'라는 이자카야에 자리가 남아 보여서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려봤지만, 예약이 있는 듯 만석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문을 연곳이 많이 없고 따로 예약을 못해서 역시 포기해야하나 싶었지만, 바로 옆에 눈길을 끄는 '야키토리 사쿠야노토리코 (咲夜虜 サクヤノトリコ) 라는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홀린듯 들어간 가게에는 카운터석에 딱 1자리가 남아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이 집도 거짓말처럼 뛰어난 맛집이었으나,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야키토리집에 가면 항상 시키는 메뉴가 모모, 카와, 츠쿠네, 엔코츠 등등이 있는데 아무래도 먹는 것만 먹게되다보니, 숙제처럼 끼워넣는 메뉴가 있습니다. 레바 (간)이랑 코코로 (심장) 인데 풍미가 좋고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숙제를 마치고 이어서 시킨 츠쿠네 (385엔)와 모모 (245엔), 비싼만큼이나, 그리고 뛰어난 비쥬얼만큼이나 가히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여러가지 메뉴를 홀린듯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짭짤한 소스와 함께 터져나오는 육즙은 술을 계속 부르는 맛입니다. 나오는 속도만 좀 더 빠르면 좋으려만... 그래도 혼자서 저녁과 혼술까지 홀로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정이 다가옴과 함께 테루쿠니신사(照国神社)로 향했습니다. 저녁 10시 50분, 신사에 막 도착했을때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자정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 1시간 전인데 사람이 거의 없어서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테루쿠니신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야타이들이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거리가 너무 한산해서 장사가 되려나 허탕을 치는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11시 20분 정도가 되니까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신사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저도 사람들을 따라 줄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밤이되니 좀 쌀쌀해서 장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한국의 날씨를 떠올리니 갑자기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정 10분 전이 되니 신사 안쪽에서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 1월 1일 00시 00분.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순서대로 하츠모데를 시작합니다. 각자 소원을 빌고 다음 사람을 위해 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참으로 일본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일본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사람들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신을 왜 숭배하느냐, 아니면 경험과 문화 체험의 차원에서 봐야할 일이냐는 관점의 차이일 것 같은데 저도 이 경계에서 정해둔 입장은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신사에 머리를 숙인다해서 일본 신에 어떤 존경심을 표할리도 없고, 그저 일본인의 시점에서 그들을 이해해보기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는 그냥 첫째줄에 서있다가 참배는 하지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왔습니다. 그러게 신사를 나오는데 신사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찬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사 내부에만 가득찼는 줄 알았는데, 신사 입구인 토리이를 한참 지나서도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고 경찰차까지 동원되어 행렬이 큰길까지는 나오지 않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1월 1일. 그렇게 대략 잡아도 수천의 사람들이 하츠모데를 하기위해 테루쿠니신사로 모였습니다. 일본은 1월 5일까지의 연휴다보니, 하루정도는 친구, 연인, 가족들과 1년을 회상하고, 새로운 1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줄에 서있는 동안 어떤 소원을 빌까, 어떤 것을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분위기를 좀 더 느끼고 싶었지만, 1월 1일 출근을 위해 귀가하였습니다.


1시간 만에 수천이 몰려드는 신기한 광경을 직장 동료들에게 얘기해보니, 하츠모데는 12시 이후에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고, NHK 홍백가합전을 다보고 나오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궁상맞게 혼자 돌아다니지말고 숙소에서 아일릿과 에스파가 나오는 홍백가합전을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연말에 참 일본스러운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의미있고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앞으로 가고시마에서의 한달, 외로움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업무를 해야하는 도전 속에서 잘 버텨내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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