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한달살기 #3
1월 3일 오후 9시 30분, 가고시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센간엔으로 향하기 위해 가고시마중양역으로 향했습니다. 영상 6도로 날씨는 쌀쌀했지만 몸이 움츠러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쉬는 날마저 일찍 몸을 일으키는게 맞는지, 그냥 집에서 누워있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래도 밖에 나오면 절대 후회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래선(在来線)의 하늘 색깔 노선인 닛포본선을 타고 센간엔으로 출발합니다. 재래선의 재래는 옛날 재래시장과 한자가 같더랍니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구수한 단어인지 모르겠습니다. 가고시마중앙역에서 센간엔역까지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센간엔역이 작년 25년 3월에 생겨서 접근성이 정말 좋아진거라고 합니다. 그 전에는 버스로 이동해야해서 한참 걸렸다고 합니다.
재래선 플랫폼으로 내려왔습니다. 일본의 덴샤는 녹이 슬면 슨데로, 외관이 다르면 다른데로 그 모습을 유지하는게 참 구경하는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환승할때 개찰구를 나와야하는 경우도 많고, 가격도 비싸고 불편하지만 각기 다르게 생긴 전철들은 철덕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철덕 두명이 대포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한국이었다면 진작에 안전상 이유에든 미관상 이유에서든 진즉에 새 차량으로 바꿨을 것 같습니다.
센간엔으로 가는 전철은 편수가 많지는 않아서 30분 이상을 기다렸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일찍 개찰구로 내려오는 바람에 개찰구 밖에 있는 편의점을 가고 싶었습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면 무조건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해보니 의외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편의점 다녀오라고 말씀하셔서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사고 역사에서 먹으면서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짜증낼 거라고 확신한 내 자신에 대해서 오만함을 느꼈습니다.
센간엔 역에서 내리자 사쿠라지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보다도 훨씬 더 가깝고 크게 보입니다. 탄성을 빚게하는 자태였습니다.
전철역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저는 스타벅스 센간엔점으로 향하기 위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시미즈 가문의 건조물, 무려 유형 문화재를 개조한 매장입니다. 외부는 차갑고 세련된 하얀색으로 꾸며진 반면 안쪽에는 갈색톤으로 따뜻한 분위기였습니다. 2층에서 잠시앉아 창가 사이로 보이는 사쿠라지마를 보면서 커피를 한잔 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5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면서도, 무심코 메일을 들여다보게 되는 자신을 보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정말 망할것 같다. 하루만의 여유를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래도 센간엔 초입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본에 와서 거의 일만하다가 2주만에 처음으로 관광다운 관광을 하다보니 설렘을 느끼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것은 외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이 관광이 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잊지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 많이 살아보고 여행도 오다보니 많은 정원을 봤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정원은 교토의 카츠라리큐입니다. 기요미즈데라는 교토에 살 때 지인들이 놀러올때마다 방문해서 10번도 더 다녀온 것 같습니다. 센간엔도 사실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제가 다녀온 정원 중에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힙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차경(借景)의 요소와 함께,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차경정원(借景)은 말 그대로 배경을 바깥에서 빌려와서 정원을 그 일부로서 구성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센간엔에서 차경공원의 끝판왕을 느꼈습니다. 우선 정원 안 어느 창가에서도 사쿠라지마가 한눈에 담깁니다. 그리고 밖에서 정원을 향하도록 조망했을 때에는 정원의 선이 이름모를 뒷산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어디에서 봐도 곡선이 참 조화로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지남과 함께 흘러들어오는 햇빛이 정원 내부의 조경을 변화시키는 모습입니다. 안에서 봐도 바깥에서 봐도 어느쪽에서 봐도 조화로움이 돋보였습니다.
센간엔이 더 좋았던 이유는 이렇게 예쁜 정원을 만끽하면서도 중간중간에 빈 공간을 꽉 채워주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일단 정원 초입에 볼수 있는 잠보모치 (ジャン本餅) 입니다. 가고시마 지역 요리로 맛은 당고와 비슷했습니다. 나무막대가 2개인 이유는 예전 사무라이가 2개의 검을 차고 다닌 것에서 유래합니다. 저는 센간엔 내부에 있는 가게에서 먹었는데 주변에도 유명한 잠보모찌 가게가 여럿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고보다 덜 달고, 떡이 커서 좋았습니다.
두번째로는 사쓰마 키리코 입니다. 유리 공예의 일종으로 유리에 색을 씌우는 기법과 유럽의 유리 공예 기술을 융합시켜, 오묘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자태를 뽑냅니다. 시마즈 가문의 28대 당주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근대화에 힘쓰면서 여러가지 진행한 산업 중 하나입니다. 가격대가 너무 비싸서 구경만 하도록 합니다.
마지막 포인트는 고양이 신사가 있었는데 고양이 좋아하는 분이라면 귀여운 포인트입니다. 센간엔 네코신사의 공식 홈페이지가 따로 있을 정도로 홍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데, 유래도 있어서 17대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로가 전장에 데려간 7마리의 고양이 중 살아돌아온 2마리의 고양이를 모시는 신사라고 합니다. 고양이를 전장으로 데려간 이유는 고양이의 눈에서 시간을 추정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지난주 다녀온 테루쿠니신사에서부터 센간엔까지, 가고시마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마즈 가문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는데, 시마즈 가문은 가마쿠라시대부터 700여전부터 가고시마 지역 (옛 사쓰마번)을 다스린 가문입니다.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를 등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시마즈 가문은 전국시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굴복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반대해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서군으로 참가했다가 적진을 향해 퇴각한 것으로 유명한 등 수난의 세월도 길었지만 근대화와 메이지시대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특히 빛을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박물관에는 세계지도를 거꾸로 해놓은 그림이 있었는데, 가장 밑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던 가고시마가 지도를 거꾸로보니 서양의 일본 첫 거점이자 관문으로 보였습니다. 실제로 1540년대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수십차례 일본에 발걸음을 했습니다.
1853년 쿠로부네 사건과 그리고 1863년에 사쓰마와 영국이 벌였던 사츠에이전쟁(薩英戦争)에서는 큰 전력의 차이로 일본을 심리적으로 굴복시키고, 근대화의 길로 나서게 했습니다. 이 무렵 등장한 시마즈 가문의 28대 당주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일본을 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성관 사업을 시작했고, 군대와 무기의 개발뿐 아니라 풍부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해외 문화를 적극 받아들여 제철, 전신, 유리 등을 개발시켰습니다. 이때 나온게 사쓰마 키리코이고, 더 발달한 것이 사쓰마야키라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 조선을 생각해보면 고등학생때 근현대사에서 배웠던 1866년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1971년 신미양요는 오히려 조선을 훨씬더 폐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훨씬더 중앙집권적이었던 (권력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던 사대부들) 사유도 있겠지만 조선에는 압도적인 힘에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사쓰마라는 지역에서 한 가문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동서남북으로 긴 일본의 지리적 특성일수도 있습니다. 왜 일본은 일찍이 개방했고 조선은 그러지 못했나에 대해서 자책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런 일은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에 너무 원망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봅니다.
센간엔, 그리고 집성관 관광까지 마치고 점심은 'GOOD FELLOWS COFFEE'라는 카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클래식 핫도그와 커피를 마셨는데 핫도그 하나도 어쩜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지 감탄스러웠습니다 (굉장히 늦게 나왔다는 뜻). 오후 1시 낮 11도로 햇빛이 쨍쨍해서 더운데 바람이 찼습니다. 그래도 날이 너무 좋아서 왼편으로 사쿠라지마를 보면서 가고시마 시내 쪽으로 무장적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여행의 마지막으로는 가고시마 수족관을 방문했습니다. 가고시마는 입지적으로 남쪽에서부터 쿠로시오 해류와 쓰시마 해류로 갈라지는 지점에 있어서 다양한 어류들이 있다고 하고, 처음 입장할때 만날 수 있는 진베자메 (고래상어)의 우아한 자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돌고래를 정말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점도 좋았고 역시나 여기에서도 사쿠라지마를 조망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역시 가고시마 하면 사쿠라지마를 빼놓을 수가 없고, 어디를 가도 사쿠라지마가 그 풍경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