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한달살기 #4
원래는 사쿠라지마 여행을 계획했던 날이었지만, 전날부터 비 예보가 있어서 미야마(美山)를 여행 후보에 두고 있었습니다. 사쿠라지마는 비도 오고 흐리면 아무래도 풍경을 보는 맛이 안날 것 같았지만 조선 도공 심수관요로 유명한 미야마 마을은 비가 와도 충분히 운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비가 오기도 하고, 아무래도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정석일 것 같았지만, 아직 일본에서 운전은 자신이 없어서 뚜벅이 여행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가능은 했습니다만, 히사시이치키역에서 미야마 마을까지 약 40분을 걸어야했습니다. 가고시마중앙역에서 히가시이치키역 까지는 재래선(在来線)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다섯 역을 빠른 속도로 이동했는데, 산골로 계속 들어가고 엄청 흔들리는 재래선의 본때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美山'는 びざん(비잔)으로 읽지 않고 みやま(미야마)로 읽는구나. '川内행'은 せんない(센나이)가 아니고 せんだい(센다이) 라고 읽어서 동북 지역의 센다이랑 헷갈리는구나, 일본어는 참 읽는게 어렵다는 둥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풍경을 보고 있을 무렵.
가미아주인역에 서서 역무원이 갑자기 뛰길래 뒤돌아보니, 왠걸 사람이 쓰러져 있고 주위에 사람들이 10명 정도 모여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이쓰러진지 이미 2분 정도가 지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런 소리가 안날 수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괜찮아요?", "정신좀 차려보세요" 라는 소리와 함께 소란스러웠을 것 같은데.. 곧 구급차가 와서 다행이었고, 일본에서는 절대 쓰러지면 안되겠다는 다짐을 하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히가시이치역에 도착을 하니 역시나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비도 추적추적 오고 스산한 길을 걷고 걸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30분이 좀 넘게 걸었는데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보니,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미야마 마을 초입입니다. 너무나 조용하고 예쁜 마을입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편견없이 그 자체로 즐겨야 하는가, 저는 사실 여행을 하기 전에 이것저것 조사를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당일만큼은 모두 잊어버리고 오감에 신경을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길거리 아스팔트의 모양, 나무와 집의 형태, 냄새와 분위기 등을 자세히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여행 방식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심수관요가 월요일에 휴관이라는 것을 바로 앞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고 크게 좌절하고야 말았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보니 힘들어서 기본적인 영업일조차 알아보지도 않고 구글만 믿고 의심없이 찾아온 스스로에게 짜증이 치밀었고, 그냥 돌아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조금 힘을 내어 돌아다녀보기로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역시나 심수관요가 닫았기 때문일까, 실수를 계속 곱씹으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갤러리 카네이(ギャラリー兼井)', 닫았는 줄 알았으나 문에 초인종을 누르라는 안내가 붙어있습니다. 긴가민가하면서 눌러보니 이내 아리따우신 사장님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너무나 반갑게 인사해주시면서 갤러리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봐주시고, "新年、最初のお客様です! (신년 첫 손님이세요!)"라면서 정말 반가운 미소를 지어 주셨습니다. 1/4일 까지는 일본 연휴이고 제가 방문한 1/5 월요일은 심수관요가 휴무이기도하니, 이날 오전에 여기까지 온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실수로 시작했던 여행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짜증으로 시작했던 여행이 전환점을 맞은 순간이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대부분의 전시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전쟁 당시 시베리아 억류된 상태로 작품을 그린 카즈키 야스오의 이야기, 그림에 귀여운 팬더를 넣어 최근 유명해진 아고팡 (あごぱん), 그리고 사쓰마야키와 별도 소장품을 꺼내 보여주시면서 설명을 해주셔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아담하지만 예쁘게 꾸며놓은 갤러리라서 기억에 남습니다. 심수관요가 닫은 것은 아쉽지만 다양한 곳에 다녀볼 것을 추천하시면서 미야마 지도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렇게 다른 가마들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미야마 마을에서는 길에서는 한사람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사쓰마야키 가마에 방문할때 중간중간 식당과 카페에 들어가면 숨은 장인들이 그 실력을 뽑내고 있었습니다. 미야마 여행은 곧 숨은 장인들을 찾아 다니는 여행 같습니다. 갤러리 카네이 대표님에게 추천을 받은 아라키도요 (荒木陶窯)에 도착했습니다. 심수관요 다음으로 미야마 마을에서 유명한 가마인 것 같습니다. 예쁜 티컵을 구매했습니다.
아라키도요에서 한참 구경을 하고, 길거리를 무작정 또 걷고 있는데 그냥 무심코 지나갈뻔한 카페 '나츠노니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들어갔는데 여긴 또 왜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지, 걸리는 곳마다 고유한 분위기를 뽑내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점심 메뉴는 카레가 있었고, 케이크와 카페 메뉴가 있었습니다. 카레도 맛있었습니다. 카페에서는 tenniscoats라는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커피 한잔하면서 듣고 있자니 휴일을 만끽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내일 걱정은 집에 가서 하자.
그렇게 잠시 쉬고 다시 출단군신사로 알려진 옥산신사 (玉山神社), 일본어로는 다마야마신사로 출발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사무라이들에 의해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은 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80여명의 조선 도공은 규슈의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에 흩어져 정책했고, 그 중 40여명 정도가 가고시마 등 남규슈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신토 사상과 한국의 단군 신화가 합쳐진 신비한 곳입니다. 조선 전통 가옥의 스타일이 녹아 있습니다.
단군신사는 미야마 마을에서도 산을 넘고 넘어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일본의 신사 중에서 가장 관리가 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작은 신사에서도 관리인이 있은데, 단군신사는 정말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산중으로 걸어 들어올수록, 조선 사람들이 일본의 텃세를 피해 마음껏 고향을 그리워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외진 곳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가늠이 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 옥산(玉山)이란 이름은 평양에 단군릉이 있는 지역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신비한 마을 미야마, 그 곳에서 한참 더 외진 곳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단군신사는 가장 여운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참을 서서 당시 조선 도공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정체성을 가지고서 살아남고자 하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단군신사로 올라가던 길에 점찍어둔 아기자기한 카페 'cocoNotsu'에 들렸습니다. 길거리에서는 사람이 없는데 카페에 들어오니 가족과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습니다. 미소 양념 돼지고기 샌드위치, 맛차 아이스크림를 시켰는데 여긴 또 왜 이렇게 맛이 깊고 맛있는지, 정말 미스터리한 장인의 마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배를 또 채우고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한일우호의 석탑'입니다. 팻말에는 "일천오백구십팔년 조선에서 사쓰마로 끌려온 도공들은 히가시이치키초 미야마로 이주, 그 후 예의노력을 거듭하여 사쓰마도자기를 창제, 세계적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장뇌제법, 양봉, 기와제조 등 수많은 문화도 그들에 의하여 전해진 것이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한국어로 끌려온은 일본어로 '연행된 (連行された)' 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보수적인 일본인들이 제일 싫어할만한 표현일 것 같기도 합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문구는 사쓰마도자기를 '창제'했다는 표현인데, 물론 기원은 조선 도공이지만 또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냈다는 점을 양국에서 인정한 부분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석탑 바로 옆 히이로가마(緋色窯)에 가보니, 또 엄청 예쁜 컵이 많아서 쇼핑을 했답니다.
이렇게 또 다시 40분을 걸어 히가시이치키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목표로 했던 심수관요에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감상과 행복이 충분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처음 심수관요가 휴관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좌절감, 갤러리 카네이에서 신년 첫 손님으로 받았던 환영, 단군신사에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장인 정신 넘치는 카페들에서 놀라움 등등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여행의 목적이었던 심수관요, 15대 심수관으로 명맥을 이어 한일 교류에 이바지하려는 이야기 등 다음에 다시 한번 더 와야하는 과제를 안고 미야마 여행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