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한달살기 #5
가고시마로 파견을 나와 출근을 시작한지 2주차, 정말 일어나기 힘들었던 휴일 아침이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설쳤던 첫주가 지나고 이제는 출퇴근할때 버스에서 자고, 집에 도착하면 쓰러저 자고, 잠깐 깨서 좀 정리한 다음에 또 자는 피곤한 나날들입니다. 모처럼의 휴일을 앞두고 결심을 하지 않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전날 밤 사쿠라지마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버렸습니다.
겨우 일어나서 집을 나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화창한 하늘을 보니 그래도 일을 벌여놓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전 10시반 기온은 12~14도로 햇빛이 쨍쨍했습니다. 외투를 입었더니 잠시 땀이 나기도 했지만, 가고시마항에 도착하니 바닷바람이 차갑습니디. 사쿠라지마행 페리는 입장료를 내릴 때 지불하기 때문에 들어갈 때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화창한 하늘과 푸른 바다. 페리 밖에서도 내부에서도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사쿠라지마에 도착하고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과는 달리 저는 졸음이 몰려와서 바로 길을 나서지 못했습니다. 관광안내소에서 버스 1일 패스를 사고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소프트 크림을 사먹었는데 무려 이름하여 "降灰 (화산재가 내리는) 소프트",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흑임자인지 회색 가루가 뿌려져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튀긴 고구마 칩으로 표현한 것 같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하는 아이디어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 츠키요미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작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신사의 모습을 보니, 요전에 다녀왔던 미야마 마을의 허름하기 그지없었던 단군신사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근처 비지터 센터에 들려서 다음날 대여할 자전거가 어떤 모양인지 확인하고, 족욕탕에서 발을 잠시 담궜습니다. 가족끼리 놀러온 관광객과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파란 간판의 로손 편의점은 용암 색깔인 갈색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지터센터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유노히라 전망대로 직행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보니 동서남북이 모든 방향이 아름다웠습니다. 뒤로는 사쿠라지마를 한층 더 가까운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고, 서쪽으로는 가이몬다케 산이보이고, 전방으로는 푸른 바다와 함께 가고시마시로 오가는 페리도 보였습니다. 마음이 뻥뚫리는 느낌과 시원한 풍경이 좋았습니다.
500엔밖에 하지않은 1일 패스의 뽕을 뽑고 싶어서 모든 정류장에 모두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가라스지마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세이난 전쟁에서 포대를 발사했던 장소라는 것 같습니다. 벚꽃이나 단풍처럼 색감이 강렬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주황, 연노랑, 파랑, 하늘색, 흰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 풍경이 예뻤습니다. 특정 위치에서 보면 볼록한 사이고 다카모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이고 돌'을 구경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돌아다니고 싶게 만드는 걸 보니 새삼 활동하기 딱 좋은 날씨였던 것 같습니다. 가고시마의 1월의 날씨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2바퀴를 돌면서 4번 정도를 내리면서 충분히 감상을 마치고, 전날 홧김에 예약한 호텔인 '국민숙사 레인보우 사쿠라지마'에 도착했습니다. 활화산인 사쿠라지마에 있는 '마그마 온천'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숙소도 사쿠라지마 방향으로 예약을 했는데, 왠걸 창문으로 보이는 사쿠라지마의 대부분이 가려져 있어서 대실망했지만, 깔끔한 숙소라서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오후 여섯시, 아침 식사 여덟시반에 식사를 예약했습니다. 사실 기대했던 마그마 온천과 가이세키도 특별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작은 섬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의 음식과 시설을 준비한다는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충분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비지터 센터에서 다시 방문하여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전날에는 유노히라 전망대를 경로로하는 작은 원을 그리면서 돌았다면, 오늘은 자전거로 섬 전체를 일주하려고 합니다. 자전거 일주에 4시간 정도 걸리고, 힘들다고는 들었지만 공식적인 자전거 루트도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이게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언덕도 너무 많고, 자전거 길이 따로 없이 일반 차도를 달려야하는 상황도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월하기 전에 앞에 조심하라고 클락션을 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클락션을 잘 울리지 않고 스텔스 비행기처럼 조용하게 추월하다보니 놀라기 쉽고 더 무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달리면서부득이 길을 반대편으로 넘어갈 때에는 무조건 내려서 건너가야겠다고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번째 웨이 포인트인 '카페 시라하마'에 도착했습니다. 좀 오래된 분위기의 사쿠라지마에 대한 기록이 가득한 예쁜 카페였는데,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사장님과 사장님의 어머님으로 보이는 분까지 나와서 일본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시는 바람에 몸둘바를 모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인 관광객이 8년 전에는 정말 자주와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정을 많이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자전거로 일주할 예정이라고 하니 특히 몸 조심하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쿠라지마의 특산물의 코미캉 향기로 가득한 쉬폰 케익과 커피로 몸을 따땃하게 하고 코미캉도 서비스로 받고, 다음번에는 식사를 하러 오겠다는 말과 함께 길을 다시 떠났습니다.
1/4 지점인 카페 시라하마를 출발해서부터는 거의 계속 헉헉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운동을 제대로 하는 기분이고, 그 와중에 풍경이 너무 예뻐서 계속 내려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진도가 안나갔던 것 같습니다. 유노히라 전망대의 반대편에 도착하니 수증기가 나오는 분화구의 구멍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증기가 수직으로 뿜어져 나오는 구멍을 보고 있자니 활화산과 공존하여 함께 산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고, 섬 전체 일주를 하는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뒷면에는 화산재가 날리는 방향이라 짜글짜글한게 징그럽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약 두번째 포인트인 '쿠로카미 토리이'에 도착했습니다. 풀 네임으로는 '쿠로카미 매몰 토리이' 입니다. 사실 사진으로만 봤을 때에는 "에이, 윗부분만 올려놓고 거짓말하는거 아니야?"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실제 눈으로 확인하니 자연의 무서움이 느껴졌습니다. 기존 3m 높이의 토리이인데 1914년 대분화로 인해 하루만에 2m가 화산재로 매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리이의 윗부분 1m 정도만 남아있는 끔찍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바로 옆 땅에서 뿌리를 내려 자란 나무를 보면서, 화산으로 매몰된 종말과 나무라는 생명의 시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장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한번 더 출발하고 도착한 세번째 포인트 '아리무라 용암 전망대'입니다. 히노유라 전망대에서는 녹음을 볼 수 있고, 그 반대편에서는 화산재로 덮인 짜글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곳에서는 양쪽이 그라데이션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푸른 녹음, 그리고 중간에는 생명이 있지만 화산재로 덮혀 시들어 죽은 듯한 색깔, 오른쪽은 화산잿빛으로 그라데이션을 볼 수 있었는데 너무나 신기한 광경입니다.
마지막으로 '오가쿠 토게이'라는 사쿠라지마의 가마에 도착했습니다. 이 가마를 창건한 사장님과 딸이 운영하는 가마였는데, 여기서도 왠걸 말을 계속 걸어주시고 반겨주셔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일본어를 너무 잘한다, 나도 한국에 예전에 많이 갔다 등등 사쿠라지마 화산재로 자기를 만들고 츠바키라는 꽃으로 파란색과 빨간색의 색감을 넣는다고 합니다. 절대 인터넷으로 판매하지 않고 이곳에 방문해야만 구입할 수 있다고 하여 자부심이 느꼈습니다. 차와 함께 사쿠라지마에서 유명한 무로 만든 무절임도 공짜로 주셔서 감사하게 마셨습니다. 화산재로 만든 컵은 확실히 색감이 탁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고 두어개 정도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일주를 마치고 비지터센터에 도착했을 때에는 땀에 웃통이 다 젖어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마지막에는 비지터센터에 도착해서 사쿠라지마의 역사를 관람했습니다. 작년에는 172회 분화했지만 올해는 아직 아직 한번도 분화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활화산과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현대 과학의 고도화와 예측가능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게 현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쿠라지마의 사람들이 육지로 통근과 통학을 하는 사람도 많아서 24시간 운행을 했었는데, 그게 25년 10월부터는 새벽 운항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는 인구 감소와 운행 상의 어려움이 있었고 교통이 제한되면서 육지로 이동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 같아 안타깝다는 글이 있었지만, 어쩔수 없는 사회의 흐름인 것 같아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마지막으로 사쿠라지마를 떠나기전 식사를 하고 출발하고 싶었지만 햄버거집, 라멘집, 일식집 등등 모두 닫혀있어서 식사는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페리 안에서 우동을 먹었습니다. 페리로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우동집에서 줄서서 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주문한지 1분이 만에 나오는 우동인데 퀄리티가 상당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따뜻한 우동으로 몸을 녹이고 가고시마항에 도착하면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비지터센터에서도 쓰여져 있듯이 사쿠라지마 대분화는 언젠가는 꼭 일어날 일이지만, 잘 대비를 하여 모든 사람이 안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