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현 Oct 30. 2018

서울대공원에 말뚝 박힌 친일(親日)의 흉터

친일반민족행위자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라

<본 글은 2018년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 일부(서울대공원)에서 질의 기초자료 활용되었습니다. 이 글을 바탕으로 한 기사들을 인터넷상에서 검색해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대공원 진입부, 사진출처: 픽사베이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서울대공원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발걸음을 하게 되는 대표적인 가족, 테마공원이다. 보통 어린이동물원과 식물원, 서울랜드와 같은 여가시설로 유명하지만 나들이하기 좋은 봄가을철 산책이나 간단한 스포츠, 산림욕 등 휴식을 즐기기 위해 공원을 찾는 방문객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호숫가 둘레길'로 불리며 주차장부터 공원 입구 매표소까지 이르는 공원 진입부 (이른바 '코끼리 열차'가 오 다니는 길로도 잘 알려진)는 잘 정비된 호수와 가로수들이 조성돼 있어 수많은 가족, 연인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며 서울대공원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거쳐가야만 하는 이동 코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호숫가 둘레길'에는 조금 특별한 역사문화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바로 독립운동과 민족지도자로서 업적을 세운 위인들의 동상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동상의 주인공들은 모두 4명, 단재 신채호 선생과 조명하 의사, 유석 조병옥 박사. 그리고 동아일보의 창립자 인촌(仁村) 김성수다. 인촌 김성수.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었던가.


 그렇다. 인촌 김성수(이하 김성수)는 동아일보 창립주이자 고려대학교 설립인이기 이전에 일제 강점 말기 일본의 군국주의적 전쟁 발악에 동조, 우리나라 청년들을 전쟁의 사지로 내몬 학병 지원, 징병을 선전 선동한 친일 언론인, 반민족 행위자다. 한때 대표적 친일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이사(발기인)로 참여하기까지 했던 그의 친일행위는 다양한 증거 아래 2009년 발간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등에 정리되어 있다. 더불어 그가 쓴 궤변적 칼럼과 기고문 등은 명백한 물증으로 남아 있어 단순 검색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 김성수의 동상이  서울대공원 '호숫가 둘레길' 한편에 위치해 있다. 그것도 일제에 맞서 싸운 민족지도자들의 옆자리에. 그것도 옆의 다른 동상들에 비해 비교적 넓은 공간, 잘 정돈된 조경 속에 편히 앉아 있다. 아무것도 모른 체 그의 동상을 보고 웃음 짓는, 또 텍스트를 더듬거리며 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서울대공원에 설치된 김성수 동상, 사진출처: 두산백과


 김성수의 친일 행적은 4차례에 걸쳐 공인됐다. 가장 먼저 김성수의 친일 행적을 고발한 것은 2009년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이다. <친일인명사전>은 4389명에 달하는 친일인사들의 행적을 조사, 국민성금에 기반하여 발간됐다. 당시로서의 파장은 컸다. 특히, 창립주 김성수를 보위해야 할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즉각 반발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 노린 좌파사관 친일사전’이라며 비난했고 조선일보 또한 <친일인명사전>이 좌파적 이념과 사상을 가진 발간자들에 의해 쓰였다며 특유의 '레드 콤플렉스'를 드러냈다.

동아일보 사옥 내에 전시돼 있는 김성수 동상, 사진출처: 위키백과

 그러나 이 진부한 프레임 공세에도 불구, 3주 뒤인 11월 28일에는 대통령 직속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결과가 발표된다. 위원회 역시 인촌 김성수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결정했다. 김성수가 벌인 일제강점기하 언론활동이 우리 동포의 징병, 학병 지원을 찬양하며 선동했고 일제의 태평양 전쟁에 가담해야 함을 선전했다는 것이다.


 민간단체에 이어 '국가'마저 인촌 김성수의 친일행위를 인정하자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는 당시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소송에 돌입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창업주의 친일행위를 덮겠다는 집요한 의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최종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좌절된다. 2017년 4월 13일,  대법원 제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인촌기념회 등이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제기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심 판단에 친일반민족행위 및 그 판단 기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없다"며 진상규명위 결정의 적법성을 인정했다.

대법원 전경, 사진출처: 대법원 홈페이지

 그리고 이어 올해(2018년) 2월 13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동아일보의 창립주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인촌 김성수의 서훈을 박탈했다. 1962년 김성수가 수여받은 건국공로훈장을 56년 만에 박탈한 것이다.


 이로써 김성수의 친일행적은 국민(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과 사법부(대법원 결정), 행정부(진상규명위 및 서훈 취소)에 의해 철저히 규명, 검증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를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수단(민의, 사법, 행정)을 거의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이른바 '정권의 성향'에 따라 김성수가 희생되었다는 말도 통할 수 없다. 김성수의 친일행적 관련 재판이 이루어진 1심(2011년 이명박 정부), 항소심(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법원의 판결은 한결같았다. 김성수는 친일행적은 이토록이나 명백한 것이다.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성수를 찬양하는 기념물은 여전히 우리 국토 곳곳에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서울대공원'은 우리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과 청소년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김성수 동상 철거가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동상 철거에 관한 제반 행정집행을 책임지는 서울시와 서울대공원 측의 의지는 매우 미약하다.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는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서울시와 대공원 측에 동상 철거를 요청해왔지만 돌아온 것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대답뿐이었다.

고려대학생 김성수 동상 철거 촉구,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러다가 대법원의 판결이 이루어진 오늘, 이제 서울시와 대공원 측은 동상 철거를 유보하는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 책임을 미루고 있다. 그 논리인즉슨 건립주체, 즉 인촌기념회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촌기념회가 철거에 대한 협의를 해줄 가능성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결국 독립운동 단체의 거센 항의와 민원에 마지못한 서울시는 올해 4월, 서울대공원은 동상 철거에 대한 판단을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에 의뢰했.


 뻔한 이야기지만,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는 동상이 순수 미술작품에 대한 철거와는 달리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핑계를 들어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공을 넘겼다. 속된 말로 '핑퐁'(서울대공원 - 대법원 - 서울대공원 - 시 공공미술위원회 - 서울대공원)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공원이 국사편찬위원회 등 5개 역사 관련 기관에 자문을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까지 왔다면 사실 서울대공원이 무엇인가를 주체적으로 조치하고 사안을 정리할 수준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서울시와 행정안전부, 국가보훈처 등 중앙정부가 나서야만 한다.


서울시청 전경, 사진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여전히 현실은 소원하다. 인촌기념회(동아일보)와의 협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가정 하에 절차적 타당성과 강제철거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철거가 어렵다면 최소한 그(김성수)의 과오를 알리는 안내판이라도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 2015년, 국립국악원 원 내에 이 국악인 동상 공원에 세워져 있는 친일 인사들의 동상 비문에 친일 행적을 적시한 사례가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동상을 우러르며 존경을 표하고 귀감을 삼는 아이러니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하물며 국가(서울시)에 귀속된 기관이자 아이들의 꿈터인 서울대공원이 그래서야.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곧, 서울대공원의 김성수 동상 철거에 관한 시민 여론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라 한다. 해당 조사 결과에 대해 서울시가 어떤 식의 접근을 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맹목적으로 '불가'함을 외치기보다는 국립국악원의 사례와 같이 현명한 절충안이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서울대공원 단재 신채호 동상, 사진출처: 두산백과

 '친일'은 하나의 프레임도, 정치논리도 아니다. 이런저런 업적과 공적으로 씻고 덮을 수 있는 성격의 개념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직, 반성으로 일관하고 교훈으로 승화되어야 할 민족의 상처다. 그리고 그 상처에 남을 흉터는 시대착오적 찬미 동상 따위가 아니라 미래세대의 올바른 평가와 비판이다.












작가의 이전글 1940? 1948? 건군(建軍)에 대한 작은 시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