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9.17. 광복군 창설과 국군의 뿌리
'제 70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 국민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지난 10월 1일, 제70주년 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국방부가 공개한 공식 초청 문구다. 특별히 어색하거나 문제시 할만한 소지도 없어보이지만 작년과 비교해 중요한 변화가 있다. 바로 국군의 날을 수식하는 공식 용어의 변경이다.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국군의 날 앞에는 군대를 처음 세운다는 뜻의 '건군(建軍)'이라는 단어가 따라 붙었었다.
별것 아닌것 같아 보이지만 건군의 연도를 정립하는 것은 그 의미가 상당히 깊다. 즉,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을 건군년도로 보느냐, 임시정부에 의해 창설된 광복군 창설일(1940년)을 건군년도로 보느냐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광복군이 국군의 시초라 본다면 올해 2018년은 건군 78주년이 되는 해라 할 수 있다.
'건군(建軍)'을 자축하자던 지난 국군의 날
작년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국군의 연혁과 전통에 디테일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2017년 10월 1일 '건군 69주년'을 모토로 내건 기념식이 개최되었지만 여론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무엇보다 역사를 대하는 국민들의 의식이 전에 비해 높아졌다. 전(前) 정권의 국정교과서 추진정책이 전면 부인됐고 건국절을 둘러싼 뉴라이트적 역사 인식은 비난에 직면했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영향요소에 더해 최근 인기리 방영중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기획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등 대중문화적 유행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국방부는 1962년 이후 써오던 '건군' 이라는 공식용어를 과감히 배제하기에 이른다.
만약 올해에도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이라는 문구를 생각없이 사용했다면 분명 논란이 발생했을 것이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은 이제 우리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1948년만으로 단절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이런 면에서 볼때 공식용어를 수정한 국방부의 세심한 조처는 칭찬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 어쨌든 미봉책에 불과하다. 어쩌다 요행으로 간판은 바꿔달았지만 내용물은 예전 그대로라는 뜻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국군의 정통성은 아직도 과거 친일 군인들이 자기들 이익에 맞게 재단한 역사 그대로 표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내용물을 새롭게 정립해가야 한다. 그 과정들 속에서야 독립전쟁과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광복군은 어디에?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국군의 정통성도 임시정부에 의해 창설된 대한민국 광복군에 있는 것이 타당하다. 지청천을 총사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에 창설되었으며 당시 임시정부의 수장인 김구 주석의 「광복군 선언문」을 통해 그 공식성이 인정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광복 이후 미 군정이 주도한 한국군 창설작전인 뱀부계획(Bamboo Plan)을 통해 불거진다. 해방 후 점령군 입장에서 남쪽에 진주한 미 군정은 광복군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통제가능한 군부를 출범시키고자 했다. 미군은 해방후 중국에서 귀국을 원하던 광복군의 대표성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자격으로만 남한에 입국할 수 있음을 공고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어 버린 광복군 인사들의 자리를 일본, 만주군 출신 군인들을 국방경비대, 군사영어학교 등의 군사조직에 대거 배치하면서 독립전쟁의 정신적 줄기마저 잘라냈다. 이런 탓에 오늘날 우리 군이 광복군의 정통성을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답은 썩 명쾌하지 못한 실정이다.
먼저 '이응준' 초대 참모총장을 비롯한 친일군인들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남아있는 육군은 자신들의 전신을 '해방 후 미 군정 주도로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대(1946.1.15.)'로 특정하고 1945년 ~ 1949년까지를 '건국기'로 칭하고 있다. 일본, 만주군 출신 장교들이 득세했던 창군초기의 특성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는 정의임을 알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심에서 개념을 정립해야할 국방부는 제대로 된 건군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 '건군시기 -창군시기(미군정)- 광복이전' 3단계로 나누어 공개한 연혁에는 그저 연도별 주요사건 정도만 명시되어 있다. 그 외 어떠한 설명도 정의도 없다. 만약 이렇게 분류를 하려면 대체 무엇이 건군이고 창군(創軍)인지에 대한 개념과 각각의 기준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명시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군 조직이 세워진 것을 창군(創軍)으로 본다면 광복군의 창설은 창군(創軍)으로 볼 수 없는 것인지?의문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 창설되었다는 한줄의 사건만 달랑 걸쳐져 있을 뿐이다.
이런 실정이니 국군의 뿌리를 찾겠다는 참다운 시도가 성립될 리 없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광복군이나 독립전쟁에 대한 역사를 심도있게 다루려는 연구와 대중적 접근이 활기를 띄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가기관에 의한 공식적인 개념정립 없이는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의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에게 부여된 역사적 정통성을 찾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당장 날짜만 뜯어고쳐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을 기념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의와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앞에는 선행되어야 할 상당히 예민하고 또 정치적인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대표적으로 친일군인들에 대한 색출과 청산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국방부에서, 군에서, 그리고 역사서에서 당당히 자신의 초상을 내걸고 있는 친일군인들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마주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걸려있는 수많은 명예와 알수없는 존경들을 박탈하기 위한 긴 논쟁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