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은행원이셨다. 그래서 나도 은행나무를 좋아했다. 특이할것 없다. 은행(銀行)과 은행(銀杏)의 차이를 모르는 초등학생의 단순한 언어세계에서는 가능한 유추일테니까.
25년 전, 하교길에는 수십그루의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 근린공원이 있었다. 매년 가을이 오면 노란 은행나뭇잎이 머리위에서 하늘거렸다. 가끔씩 비라도 오는날이면 그 노란 빛이 발하는 선명함이 침침한 빗길에 떨구어져 있는 다른 낙엽들과 뒤섞이며 은은한 색감을 자아낸다.
나는 그 은행나뭇잎 중, 잘생기고 깔끔한 녀석들을 가져다가
아빠 은행, 아빠 은행이다
라고 흥얼거리며 어머니에게 가져다 주곤 했다. 그렇게 은행나뭇잎을 가지고 있다보면 왜인지 모르지만 은행에서 일하고 계신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오셔서 나에게 칭찬을 해주실 것만 같았다. 한 소년의 상상에서 은행(銀行)과 은행나무는 하나의 매개로 이어진 긍정의 상징이고 벅찬 기쁨이었다.
세월이 조금 지나 그것들(은행과 은행나무)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사물에 감정을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천진했던 그 시절의 동심은 점차 사라져갔다. 은행(銀行)은 금융업의 현장일뿐이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현실과 문제점을 격렬히 비판하며
'은행원들은 다 도둑놈의 새끼들이야'
라고 소리지르던 사회선생도 있었다. 그 이후 아버지가 은행원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잘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고 내 안에 남아있던 은행과 은행나무에 대한 마지막 동심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설상가상으로 늦은 사춘기를 맞이했다. 아버지와 갈등이 조금 있었고 대화도 잘 하지않게 되었다.
물론 오래지않아 사소한 갈등들은 점차 정리가 되었지만, 은행나무를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던 소년은 찾기가 힘들어졌다.
특히, 한 가정을 꾸려야만 하는 나이가 점점 다가오면서 은행을 간다는 것이 마냥 반가운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개운치 못한 뒷맛'이 은행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버리는 느낌이다. 은행을 통하여 돈이 나가는 일이 전보다 잦아졌고 절차가 복잡해졌기 때문이겠지. 그렇다고는해도 자꾸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은행, 아니 아버지의 직업을 좋아해마지않던 그 시절의 순수(純粹)가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전셋집 계약문제로 동분서주하던 몇주 전의 일이다. 급한 금전업무가 생기는 바람에 무작정 근처 은행을 찾아 뛰어들어갔었다. 겨우겨우 업무를 해결하고 밖으로 나서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며 은행 주변의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종암동에 위치한 'K은행' 이었다. 13년전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 K은행 종암동 지점에 근무하셨었다. 문득 그 사실을 인식하고선 나도 몰래 잠시 멈춰섰다. 이 은행과 함께 얽히어 있는 아버지와의 어색한 추억이 생각났다. 은행로비를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던 스무살의 앳된 청년, 13년전 그날의 나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이 종암동 은행을 찾아왔었다.
서류따위를 회사에 계신 아버지께 전달해 드리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이었다. 할일없이 집에서 빈둥거릴바엔 기분이나 환기시키자는 생각으로 나섰다. 아버지는 내가 온다는 미리 연락을 받으셨던지 로비에서 어색하게 버벅거리고 있던 나의 손을 잡고 은행안으로 안내해주셨다.
때는 은행업무 마감시간이 임박한 오후 3시,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했고 직원들의 동선은 분주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는 동료직원 한분한분에게 말을 거시며 나를 소개시키셨고 몇몇분들은 '최과장님이 그렇게 자랑하시던 아들내미가 바로 너구나, 이름도 벌써 외웠다'며 친절히 대해주셨다. 나는 왠지 숙쓰러워져 전달하라는 서류만 아버지의 책상에 올리고 도망쳐나오다시피 하며 밖으로 나와버렸다.
내가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아버지는 좀 당황하셨던것 같다. 아버지는 은행정문까지 따라나오셔서
고생했다, 들어가서 재밌게 놀고 밥먹어라
라는 말씀과 함께 5000원을 쥐어주셨다. 그 말에 '이유를 알수없는 후회와 부끄러움'들이 밀려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마침 만발해있던 은행나무 가로수에서는 노란 은행나뭇잎이 머리위를 하늘거리며 길바닥에 내려앉고 있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은행나뭇잎 하나를 주웠었던 기억이 난다.
별안간의 과거회상에서 돌아왔을때, 그때의 '이유를 알수없는 후회와 부끄러움'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내 마음에 사무쳐지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가보았던 아버지의 직장,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아버지의 업무책상.. 그런 모습들이 떠오르며 아버지의 소박하고 진실한 마음이 밀려들어왔다. 좀 당당하고 살가운 태도로 인사하며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드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붙잡은채, 나는 아버지가 건네준 5000원을 마음속으로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아빠 은행, 아빠 은행이다'라고 외치던 어린아이도 함께 돌아와있었다.
은행(銀行)은 은행(銀杏)나무를 잊지않았다. 아이는 은행나무가 뿌려주는 선명한 색감을 만끽하며 언제든지 돌아오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가끔씩은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