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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Jun 08. 2016

인간적인 사람


우리는 자주 '인간적인 사람'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감이 좋아서 일까, 아니면 어디에 붙여도 크게 문제될만한 소지가 없는 표현이어서 그런것일까.


 특히 잡담의 주제가 대인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습관적으로 쓰게되는 말이다. 좀더 뜯어보면 약간 이상한 표현이기도 하다. 일종의 비문이랄까? 표현의 액면 그대로'인간'이란 단어와 '사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분리시켜 활용해야만 말이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굳이 철학적, 또는 생물,사회학적으로 따진다면 구분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미 하나의 인격체이자 생물로서의 인간을 일컬어 '당신은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 좀 이상하지 않는가? 인간으로서 존중해주기에는 약간 부족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반증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복잡한 의미를 대입시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그만큼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 표현에는 화자의 묘한 푸념과 그리움이 묻어있다. '어쨌든 인간적인 사람'이 주변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이 분명히 존재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훈기가 전해지는 화목난로처럼, 온몸으로 나를 반기는 반려동물의 눈빛처럼 공간자체가 나에게 따뜻하게 안기는 듯한 막연한 기쁨은 크진 않지만 '무의식적인' 희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주변의 인격체에서 이러한 따뜻함을 느낄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물론 부모님, 애인의 사랑, 오래된 우정, 연민의 감정은 강렬한 온도를 동반한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해서 '의식의 세계'로 표출되어 버린다. 이렇게 의식의 세계로 표출되어 버리면서 감정의 교환이 일어난다. 이 또한 때로는 피곤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 애인, 오래된 친구에게 '인간적인 사람' 이라는 표현을 자주 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는 마치 내리쬐는 햇살과도 같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듯한, 보고 있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강렬한 사랑과 연민은 마치 '형태가 있는 것 처럼' 표출되어 버린다

 처음보는 사람, 업무파트너 또는 상사, 소비자 또는 판매자로 만나게 되는 무수한 사람들과의 감정은 어떠한가? 아니, 감정이 오가지 않는편이 더 안정적일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과의 사이에서 감정이 오간다면 그것이 표현상 배려라는 단어로 격려라는 단어로, 때로는 감사라는 단어로 좋게 표현될 수 있겠지만 쉬이 믿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 표현들에 진심이 없을것이라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진실로 확정시켜 버린다. 붓다의 표현방법을 조금 빌리자면..



'나에게 베푸는 호의는 호의가 아니다 그 이름이 호의일 뿐'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라도 사무치는 감정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반면에 분노라든가 미움,무시의 표현은 마음에 절절히 사무치도록 절대적으로 믿어버린다. 그 순간 내 마음에 비추어지는 감정은 공한것이 아니라 실재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외면하기는 커녕, 휘둘리기 시작한다.


 이처럼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불신은 이미 상대방의 긍정적인 표현(감정)을 믿지 못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오가는 감정들을 바라보며 어느 감정에 매몰될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부정적인 생각에 먼저 관심을 보이는 마음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본성은 떨쳐버리기 쉽지않다. 아무리 본성이 그렇다해도 한쪽의 감정(부정적인 감정)에만 마음을 두고 '인간적인 사람이 좋아'라고 한다면 이는 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행위와 다를바 없다.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감정에 손을 흔들고 있지는 않은가?

 어렵지만, 이름뿐인 호의의 표현이라도 일단 그것을 있는그대로 믿는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반대로 내가 감정없이 던지는 감사의 인사라 할지라도  그 자체에 깃들어 있는 일말의 선의를 떠올려야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더 없이 분노하고 있으면서 '감사합니다','덕분입니다'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온적이 있는가?


 그렇기때문에 그저 말뿐 이라고 느껴지는 표현, 오고가는 소리일지라도 작은기쁨의 노래가 내포되어있다. 그 감정들은 마치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도 같은것이다. 잡을수도 없고 실체화할수도 없지만 우리가 공간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듯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미약하다고 해서 듣지도 믿지도 않는 '인간적이지 못한 사람', 바로 나 자신이 있을뿐이다.


 작은 불씨에 불어넣는 조심스러운 입김이 불길을 일으키고 그 불길이 장작이라는 실체를 마주하며 화로를 달굴수있는 열을 토해낸다. 옅지만 작은 기쁨의 노래를 듣기시작할때 비로소 그 따뜻함이 원천에서부터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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