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형, 생생정보통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과연 이 노래처럼 정말 좋을까?
이번엔 영화와 TV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
우리 형제의 사연을 들려드리려 한다.
형의 이야기
내가 20대 때의 일이다.
두 살 많은 형이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다녀오겠다고 한다.
"무슨 아르바이트?"
"응, 그게.... 영화 엑스트라 알바야.
친구가 원래 하던 건데, 이번에 못 가게 되었다고.
대신 가 볼 생각 있냐고 해서."
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나였지만
영화 엑스트라 알바는 풍문으로만 듣던 희귀한 일자리였다.
그날 밤, 다녀온 소감을 물어보니 원빈을 실제로 봤고
비율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형이 출연했던 영화가 드디어 개봉했다는 것이다.
모든 엑스트라의 기대에 가득 찬 소망.
'카메라 앵글에 내가 잡혔을까?
좀 자주 나올려나 어쩌려나.'
이윽고 우리 형제는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데,
"앗... 바로 저기에!! 저거!! 나야!!!!"라고
흥분해서 소리치는 우리 형.
계속 엎드려 자고 있어서 얼굴은 전혀 안 나왔지만,
원빈 대각선 앞자리에 앉아서 확실히 자주, 반복적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보통 영화 보면 1 분단 맨 끝자리에 짱이 앉거든.
그래서 내가 일부러 저기에 앉았지.
자리 잡고 있으니까 원빈 얼굴 나오게 엎드려 자라고 하더라."
본인의 선구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영화는 원빈, 신하균, 이보영 주연의 우리 형으로
네이버평점 8.40에 빛나는 명작이다.
공교롭게도 스토리가 형제의 우애를 메인으로 하고 있어서
남다른 감정으로 볼 수 있었고 재미와 감동이 있는 좋은 영화였다.
나의 이야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규모가 큰 기업의 경험이 대부분이지만,
퇴사 후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면서 소기업을 짧게 경험한 적도 있다.
무척이나 더웠던 한 여름 긴장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우르르 일어서면서 오늘은 다 같이 식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장소는 생뚱맞게도 회사 인근의 조개구이집이라는 것이다.
잠시 후 식당으로 이동하고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회사 대표님이 투잡으로 조개구이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고,
나의 첫 출근날은 생생정보통 방송이 촬영 오는 날이기도 하다는 것을.
식사 전 무더운 날씨에 정장을 입은 채로 땀을 흘려가며,
트럭으로 도착한 조개 포대기 망을 계단으로 들고 날랐다.
첫 출근의 긴장감에 생각지도 않은 육체노동을 하니 입맛도 싹 사라졌는데,
이윽고 방송 카메라와 활발한 성격의 여자 리포터가 들이닥친다.
이 바닥이 다 그런 거겠지만,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회사 직원들이었다.
이제 겨우 식사를 하고 있는데 테이블을 돌면서
어떻게 이 맛집을 알고 찾아왔는지, 맛은 어떤지 소감을 묻는 리포터.
말하는 내용에 대해선 아무런 대본도, 교육도 없었기에
첫 출근한 신입사원의 열정으로 난 회심의 파워멘트를 날려주었다.
제가 부산사람인데
해운대, 광안리에서 먹는 거보다
서울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신선해요!!
.......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강제 방송출연을 하게 되었다.
생생정보통이 공중파를 타고 방송되던 날,
부산의 친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어떻게 된 거예요?
TV 보는데 형이 갑자기 나와서...
보다가 뿜었어요."
"휴........ 잊고 싶다.
기억에서 지워줘."
이후 그 직장에서의 기억이 좋았다면 이것도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겠지만,
내가 겪어본 손에 꼽는 최악의 직장으로 최단기에 그만둔 곳이라 나름의 흑역사라면 흑역사이다.
이 글을 보신 분들도 다 보시고 나가실 땐,
기억에서 지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