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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싱가포르-조호르바루 여행기(1)

싱가포르에서 조호르바루로 넘어가다.

by 전영웅


오전 6시 반,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빠져나왔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고, 여느 도시가 그러하듯 도로엔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차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조호르바루에서 마중나온 처남의 차 조수석엔 내가 앉았고, 뒷자리에는 아내와 아들이 앉았다. 아내와 아들과는 한 달만에 조우했다. 나의 휴가의 시작, 그러니까 나의 휴가는 조호르바루에 와 있던 가족들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휴가라는 여유보다는 본업과는 또다른 업무를 위한 일정의 시작으로 다가왔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와야만 한다는 당위때문이었을 것이다. 휴가지에 대한 선택권없이 일정에 대한 계획조차도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제주에서 인천으로 한 시간, 인천에서 싱가포르까지 6시간, 밤 시간을 비행하여 낯선 도시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눈가에 부유하는 피곤함에는 공항 대기시간 내내 들었던 Beirut의 Rip Tide앨범의 선율이 남아 있었다. 계획하지 않은 휴가일정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식사를 위해 싱가포르 시내의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니콜 하이웨이를 달리는 좌측으로 싱가포르 플라이어의 야간조명이 보였고,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의 모습도 보였다. 싱가포르 시내의 첫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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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안쪽은 아직 고요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그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을 찾기가 어렵겠다 싶은 찰나에 발견한 식당은 이제 막 문을 열고 준비 중에 있었으며, 우리가 두 번째 손님이었다. 중국식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에서 우리는 아침메뉴를 골라 주문하여 싱가포르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이 날은 우리나라의 광복절이었다. 싱가포르 뉴스 한국소식에는 광복절을 주제로 한 꼭지가 방송되었고, 영화 ‘군함도’가 꽤 오랜 시간 소개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 날은 일본의 항복으로 자유를 되찾은 날이었다. 역사적 경험과 사건을 비행기로 6시간이나 떨어진 이국에서 공감하는 일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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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며 식당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찍 먹고 일어나 아우트램 지역으로 나섰다. 날은 밝았고 도로의 차들도 더욱 많아졌다. 도시의 분위기는 서울의 종로나 강남 빌딩지역과 흡사했다. 다만 가로수가 다르고 비둘기대신 이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특이한 모양의 새들이 겁도 없이 도로와 인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차들이 한국과는 반대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이 달랐다. 유명하다는 까야토스트집에 앉아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앞으로의 일정을 대략 논의하고 몇가지 할 일을 마쳤다. 마무리한 일 중에는 다음날 센토사 섬에 들어가 탈 케이블카 탑승권과 룻지 탑승권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싱가포르 여행을 더 이어보려 했으나 막상 어떻게 다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집이 있는 조호르바루 쪽으로 이동하면서 주롱 버드파크에 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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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즈음이 되자 하늘은 흐리더니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새들이 모여있다는 공원에 왔는데 비라니, 세찬 비를 맞으며 돌아다닐 수는 없어서 가까운 쇼핑몰에 들러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때웠다. 쇼핑몰 안에는 다양한 문화권의 모습들이 혼재되어 있었는데 그 중엔 한국의 것들도 어렵지 않게 보였다. 한국의 화장품샾, 한국의 남성이발소, 헤어샾, 한국음식, 그리고 한국노래.. 특히 이곳 사람들에게 최근의 한국노래는 나름의 이슈인듯 했다. 한국 아이돌들의 노래가 곳곳에서 들렸고, 심지어는 노래방도 있는데 바깥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한국 아이돌그룹의 최신곡 뮤직비디오와 드라마가 같이 방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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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조금 줄었다. 주롱 버드파크에 입장하니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열국의 숲이 자아내는 이국의 풍경과 수많은 한국말의 뒤섞임은, 외국인들이 많은 한국의 어느 이국적 놀이공원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공원내를 수시로 순환하는 열차를 타고 한 바퀴를 돌며 새들과 풍경을 구경했고, 다시 도보로 한 바퀴를 돌며 좀 더 자세하게 새들을 관찰했다. 열국의 새들은 화려하고 커다랗고 다양했다. 한국어 안내도 있어 돌아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는데, 알고보니 얼마 전 한국의 예능프로에서 이 곳을 소개하면서 한국인 방문객도 많아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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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롱 버드파크를 나왔을 때엔 비가 완전히 그쳐 있었다. 우리는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는 투아스 국경을 향해 달렸다. 국경으로 향하는 길엔 재미있는 표지판이 있었다. 말레이시아를 넘어가는 싱가포르 차량은 연료를 4분지 3 이상 채우고 있어야 한다는 경고였다. 위반시 벌금은 어마어마했다. 모든 것이 국가통제하에서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는 나라다운 모습이었다. 싱가포르 가솔린 값이 말레이시아에 비해 3배 이상 비싸니 국가차원에서의 통제도 이해할 만은 했다. 국경도시 조호르바루에서 3배 이상의 임금을 받기 위해 싱가포르로 날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주말이면 물가가 저렴한 조호르바루로 쇼핑하러 국경을 넘는 싱가포르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국경은 존재하고 통제도 존재하지만 인간의 심리와 자본의 흐름은 국경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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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스 국경에 다다르자 도로를 막는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고, 그 아래로 차들이 들어가 검문 칸마다 줄을 서서 검문을 대기하고 있었다. 생소함이 밀려왔다. 육로로는 국경을 넘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뭔가 복잡하고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것은 가만히 앉아서 다가온 물리적 장벽을 체감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여권과 얼굴확인을 거치고 나서 검문을 통과하는데, 그 기분은 다가온 물리적 장벽을 온 몸으로 느끼며 묵직하게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별 일없이 검문을 통과했고 조호르 해협 위로 있는 다리를 건너 말레이시아 땅으로 들어가자 다시 검문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입국신고서가 필요했다. 역시 별 일없이 검문을 통과했지만, 기분은 별일 없지 않았다. 뭔가 단단한 물리적 경계를 묵직하게 넘은 느낌, 단지 경계선에 불과한 국경을 넘는 일이 이렇게 번거롭고 무게감있는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집집마다 입국신고서를 넉넉하게 준비해두고 산다고 했다. 국경을 넘어다닐 일이 잦다보니 때마다 집에서 미리 작성해서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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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부킷 인다지역 부근의 호라이즌 힐이었지만, 우리는 바로 향하지 않고 반대측의 포레스트 시티를 들렀다. 말레이시아 국왕들 중 조호르바루에 거주하는 왕이 허락하여 얕은 바다를 모래로 메우고 거기에 거대한 정원과 아파트와 상가와 전원주택단지를 만드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었고, 일부 지역은 이미 상권이 형성되고 있었다. 중국과 화교자본들을 위시해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자본까지 유입된 개발이었다. 상가 내 넓다랗게 만들어진 조감모형 안에는 아직 땅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거나, 아직 공사시작도 안 된 아파트들이 sold out 팻말을 매달고 서 있었다. 자본의 유입은 과감했고 규모가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자본에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유입이 유발하는 막강한 파괴력 앞에 자연은 무기력하다는 점과, 자본의 유입과 순환으로 표현되는 발전은 필연적으로 빈부와 분배의 커다란 불균형을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느꼈다. 막대한 자본의 순환은 가진자들의 잔치이고 이득과 손해 역시 그들만의 사정이기에, 가지지 못한 이들은 그 아래에서 쫓겨나거나 눈치를 보며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넉넉치 않은 삶을 꾸려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과감성과 규모가 한국에서 느꼈던 것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투자규모면이나 적극성이 남다르니 프로젝트 역시 남다른 규모였다. 자그마한 건물 하나 소유하여 임대료나 챙기며 사는 것이 꿈인 남한은 이 곳의 자본 투자나 순환규모에 비하면 너무도 소박해 보이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투자나 자본운영은 이런 곳에서 하는 것이 여러모로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많아졌지만, 나는 오늘 처음 이 곳에 들른 이방인이자, 자본이랄 것도 없는 소소한 삶을 꾸리는 전쟁위기지역에 사는 일개 인간일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곳 상가에 있는 면세점에서 조금 저렴해보이는 싱글몰트와 와인 그리고 맥주 몇 캔을 사는 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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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힐에 있는 처남의 집으로 향했다. 프로골퍼 최경주도 다녀가고, 겨울이면 한국골퍼들의 동계훈련지로 특별기가 날아온다는 호라이즌 골프클럽의 바로 옆 타운하우스 지역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주거환경이 좋은 이유들 중 몇몇은 일단 경비 운영체제가 잘 되어 있어 주거지역 내에서는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넓고 시설이 잘 구비된 주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의 쿠알라룸푸르에서도 그러했고, 이곳 조호르바루에서도 그랬다. 처남댁과 조카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처남의 부탁으로 가져온 자전거 장비들을 부린 다음, 처남의 자전거를 손보아 주었다. 늦은 오후시간, 피로가 몰려왔다. 두가족이 온전히 모인 저녁시간,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 저녁으로 딤섬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이후엔 해가 완전히 저물었고, 우리는 그 길로 판단시장으로 가서 시장 안 농수산물을 구경하고 두리안 가게에 들러 적당한 크기의 두리안을 골라 그 자리에서 해치웠다. 가장 맛있다는 무상킹 품종은 작년에 비해서 가격이 조금 올라 있었다. 상인은 술탄킹이라는 설명과 함께 조금 저렴한 다른 품종을 권했고 우리는 그것을 골랐다. 달콤새콤하면서 크리미한 그 맛, 특유의 은은한 냄새가 풍미를 북돋았다. 손으로 집어 씨앗을 둘러싼 부드러운 살을 열심히 먹고 씨앗과 껍질은 버린다. 일 년만의 재회는 그렇게 황홀했다.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하나를 더 골라 속살을 포장했고, 용안과 리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의 마무리는 포장해온 두리안과 용안과 리치와 포레스트 시티에서 사 온 맥주였다. 이 곳에서 아쉬운 단 한가지를 고르라면 맥주맛이 별로인데다 술값이 한국만큼 비싸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는 현지의 사정.. 여행의 첫 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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