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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여행기 : 3일 차

by 전영웅

아침 일찍 길을 나설 이유는 없었다. 여행은 느긋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동시에, 뒷골목 구석구석이나 시장 같은, 로컬의 풍경을 한껏 담을 수 있는 걷기가 여행의 진면목이라 생각한다. 나의 이런 생각들을 온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걷기보다는 차로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곳도 있고, 뒷골목이란 여행자에게는 위험부담을 안아야만 하는 곳일 수도 있다. 생각과 다른 아쉬움을, 그저 아쉬움대로 안는 것도 여행의 바른 모습이라 생각한다.

일찍 나설 이유가 없었던 건, 일단 조호르바루는 덥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는 햇볕이 머리를 내리쪼이기 전에 바깥 움직임을 마치던지, 아니면 아예 느지막이 해질녘에 나와 돌아다니던지 하는 것이 상책이다. 말라카로 하루 동안의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200킬로가 조금 넘는 거리를 운전으로 다녀와야 한다. 대략 두 시간의 운전거리이고, 무더운 낮에 도착해서 할 거라곤 별로 없기도 해서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처남의 차를 빌렸고, 아들을 포함한 총 네 명의 조카들을 모두 데리고 가는, 짧고 규모있는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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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장거리 운전을 할 일이 아예 없다. 일부러 섬을 돌고 비집고 다니며 거리를 만들 수는 있어도, 목적지를 정하고 운전을 하는데 장거리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8년이다. 나의 운전 체력은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곳의 운전은 우측 운전석에 좌측 주행이다. 한국과는 정 반대의 운전환경인 것이다. 그런 거리를 조카들을 모두 데리고, 그것도 아이들 학교를 모두 하루 쉬게 하고 가는 여정..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유로운 척했다. 오래간만에 온 고모부가 조카들을 챙기고 싶은 욕심도 있고 해서였다. 이 곳에서 운전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니 말이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아이들에게 짐을 챙기라 해서 10시 반 경 출발했다. 차 안에서는 조카들이 듣고 싶어하는 한국 아이돌 음반을 틀어주었다. 아빠가 목사라 날마다 복음성가를 들어야 했던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기분전환이 되었으면 했다. 생각대로, 조카들은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멤버들의 근황과 나름의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한류는 생각보다 동남아 곳곳에 깊이 파고들어 있었으며, 그것에 가장 민감한 10대 여자아이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그들을 좋아하고 동경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내비게이션은 waze라는 앱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화면 운용이나 보기에도 매우 편리한 데다가 실시간으로 공사나 고장차량, 정체 구간을 알려주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다.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유용한 앱인 듯했다. 싱가포르에서도 유용했고, 미국에 사는 아내의 언니 역시 현지에서도 많이 사용한다고 했으니 그런 듯하다. 나 역시 waze를 실행시켜두고 안내대로 운전해서 말라카에 무사히 도착했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jonker walk로 길을 안내하는 바람에 일방통행으로 밀리는 골목길을 다시 나와 하루 내내 6링깃 하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일정을 시작했다. 시작은 점심이었는데, jonker walk내의 중식당에 들어가서 이 동네의 유명한 음식인 치킨라이스를 주문했다. 양념을 해서 차갑게 익힌 닭고기 슬라이스와 경단처럼 만 밥을 소스에 찍어 같이 먹는 음식이었다. 130년 동안 운영했다는 식당은 문을 닫아서 옆의 조금 큰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안에서는 영어와 중국어와 말레이어가 뒤섞여 있었고, 거기에 우리 한국어가 가세했다. 영어로 화장실이 어디냐는 나의 질문에 직원인지 주인인지 모를 깡마른 할머니는 중국어로 대답했다. 내가 계속 못 알아듣겠다고 중국어 못한다고 했더니, 성질을 확 내면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치킨라이스는 생각보다는 차분하고 단순한 맛의 음식이었고, 오후 늦게 시작될 야시장을 기대하며 배를 적당히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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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여전히 더웠다. 나도 아이들도 더워해서 우리는 부근의 쇼핑몰로 피신했다. 버블티를 마시며, 우리는 오후 4시까지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시원한 실내에 앉아 있다가 느지막이 움직이는 것이 역시 합리적이었다. 오후 4시가 되면서 밖으로 나왔다. 아직 더웠지만, 너무 늦어지면 간단한 여행마저도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적들을 거쳐 언덕으로 올라가 세인트 폴 교회를 둘러보고 자비에르 신부의 석상을 거쳐 정화 장군의 석상을 보고 시계탑 공원으로 내려와 2년 전 가이드를 따라다니던 기억을 되살렸다. 기억 속의 말라카의 모습은 여전했다. 시계탑 앞에서 무더위에는 아랑곳없이 정장을 차려입고 마임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까지도 그대로였다. 시계탑 앞에서 잠시 쉰 다음 아이들을 데리고 오랑우탄 하우스를 거쳐 골목 안의 동네를 2년 전 가이드 안내 그대로 따라 걸으면서 다시 구경했다. 1753년에 세워진 말라카 교회, 1500년대에 포르투갈에 의해 세워진 세인트 폴 성당과 네덜란드 인들이 귀족들의 무덤으로 사용하며 세워진 석판들, 오랑우탄 하우스의 벽화, 이슬람과 불교와 가톨릭이 뒤섞이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동네 곳곳의 종교유적지들.. 그대로여서 더욱 반가웠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는 한인 관광객들의 무리들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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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기는 했지만 아쉬웠다. 사실 jonker walk 말고도 좀 더 깊숙한 곳들을 찬찬히 돌아다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했고, 낮시간의 더위는 2년 전의 경로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말라카는 가이드의 설명에 친근함이 생긴 도시였고, 나는 친근함에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날은 그럴 수가 없는 날이었다. 별 수 없이, 조카들을 챙긴다는 다른 목적에 집중하는 것으로 일정을 이어나갔다. 늦은 오후의 더위는 나와 아이들을 지치게 했고, 우리는 별 수 없이 시원한 카페에 들어가 다시 시간을 보냈다. Jonker walk 입구 부근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야시장이 시작되는지 살피면서 다시 길에 나섰다. 오후 6시가 되자 야시장은 차에서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볶음국수와 굴튀김 등등을 사서 한쪽에 있는 간이 테이블에 놓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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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주말 야시장은 금토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열린다. 그리고, 확실히 상업화되었다. 그렇지만, 먹거리가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하며, 각각의 손맛이 있었다. 먹거리 외에 파는 물품들은 액세서리류나 조잡한 물품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먹거리만으로 따지자면, 나는 말라카 주말 야시장을 매우 좋아한다. 볶음국수를 먹고, 꼬치를 먹고, 갓 쪄낸 딤섬을 몇 개 골라 먹고, 수박주스를 통째로 들고 다니며 마시고, 특색 있는 맛의 소시지도 하나 먹고, 아이스크림을 얹은 코코넛 밀크를 먹으면 배도 부르고 야시장 구경도 마무리된다. 사실 따지자면 먹거리도 천편일률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먹을 것들이 다양하면서도 안정된 맛을 구사한다. 상업적이고 천편일률성에 식상해지지 않는 것은, jonker walk를 둘러싼 동네 분위기 역시 한 몫 한다. 동서양의 모습이 뒤섞인 오랜 건물들 아래의 좁은 골목에서 나름 다양하고 안정된 먹거리들을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보기만 하거나 먹기만 하는 행위의 아쉬움을 사라지게 한다. 알코올이 생각나면, 골목 중간쯤의 geographic cafe에서 맥주를 마시면 된다. 2년 전 방문 때에는 이 카페 앞에서 얼굴에 화사한 웃음을 가진 서양인의 요가를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엔 볼 수가 없었다. 어쨌든, 말라카 주말 야시장은 건물들이 보여주는 오랜 시간 속의 다양성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언어들과 음식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어도 아쉽지 않게 들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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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채웠고, 아이들은 주말 야시장을 다니다가 선물을 사겠다며 쇼핑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얹은 코코넛 밀크를 마시고 있으니, 2년 전 줄을 서서 탔던 야간 보트도 생각나고 옆에서는 인력거꾼들의 호객도 받았지만, 아이 넷의 행렬은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야 처남 네가 걱정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말라카에 다시 와야겠다 했던 다짐은 실천했지만, 조카들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에 말라카를 좀 더 깊이 즐겨보고 싶은 마음은 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날은 어둑해졌고, 우리는 강변을 잠깐 걸은 뒤에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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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를 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도 꽤 길었다. 고속도로를 진입하면 집까지는 바로 이어졌다. 길이 어려울 것은 없으니 야간 운전도 어려울 일은 없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빅뱅 대표곡들을 틀어줬더니, 한참을 따라 하다가 하나 둘 잠들기 시작했다. 왕복 500킬로가 안 되는 길을 운전하는 날이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마치 계속하던 운전을 해 나가듯, 나는 자연스러웠다. 처남의 차는 2000cc급의 7인승 차량이었다. 가솔린을 가득 채우는데, 100링깃이 조금 안 들었으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7000원을 채우지 못하는 정도로 기름값이 저렴했다. 여행자는 여행에 집중하는 것으로 경험과 시야를 집중할 수 있지만, 나는 여행자이면서 이곳 생활자의 일부를 빌려 삶을 경험해야 했다. 이곳의 주유법은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리나라같이 직원이 대기했다가 얼마를 부르면 그만큼 채워주고 돈을 받는 방식도 있지만, 편의점을 동반하는 주유소 카운터에 가서 몇 번 주유구에 얼마를 부르면 계산을 하고, 찍힌 가격대로 운전자가 직접 주유를 하기도 한다.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해 내가 조금 허둥대자, 조카가 나와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주었다. 이건, 영어보다는 중국어를 더 많이 쓰는 이 곳 생활방식을, 이 곳 생활을 하며 부모보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조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카 덕분에 수월하게 때마다의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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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의 통행료를 계산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는 touch n go라는 카드에 미리 금액을 충전해서 고속도로 통행을 할 때마다 단말기에 찍고 가는데, 잔액이 부족하면 앞의 차단기가 열리지 않는다. 그럴 때엔 난감해지는데, 상황에 따른 언어가 익숙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당황스러워진다. 단말기에 있는 인터폰 버튼을 누르고 나름의 영어로 설명하지만, 상대방은 스피커로 영어인지 중국어 인지도 모를 거친 음성으로 대답을 한다. 인터폰을 통해 나오는 상대방의 말이란, 현지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럴 때 조카가 옆으로 다가와 ‘차를 뒤로 빼서 수금원이 있는 칸으로 오래요.’라고 통역해주었다. 그렇게 오라는 이곳 도로 시스템의 위험함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조카 덕에 다시 또 위기를 넘기는구나 하는 다행감이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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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였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모두 내려놓고, 나와 아내는 다시 길을 나섰다. 하루의 마무리를 푸테리 하버에서 맥주로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푸테리 하버는 싱가포르를 마주한 해협의 작은 만인데, 최근 급부상하는 개발지역이다. 그곳은 늦은 밤까지도 왁자한 분위기의 펍들이 곳곳에 있었다. 우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맥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그다지 맛은 없었던 그것들을 먹고 마시며, 옆으로 보이는 항구의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둘 만의 마무리를 했다. 이 날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축구 대결을 벌인 날이었다. 경기를 보지 못했지만 말레이시아가 이겼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그러나, 이 곳은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자국이 이겼다는 소식에도 다들 각자의 이야기만 하는 걸 보면, 축구에 관심 없거나 아니면 거의가 외국인들이거나 했을 것이다. 펍에서 틀어놓은 대형 스크린은 유럽축구리그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축구에서 이겼는데도 분위기는 전혀 상관없이 흐르는 이 곳이 독특해 보이면서도 이제는 조금 정겨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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