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검도 공인 3단 단증을 받았다. 제주에 와서 검도를 시작했으니, 9년 만에 획득한 3단이다. 도장이 엎어지고 새로운 도장에 등록하는 사이 몇 년간의 낭인 시절이 있어, 단 획득 시기가 조금 늦었다. 단에 집착한 것은 아니다. 사실 단 획득보다는 꾸준한 수련에 무게를 두려 했다. 시기가 되자마자 단을 따야 한다고 관장님은 적극적으로 나를 종용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심정으로 지난겨울에 심사에 임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단을 획득한다는 건 적지 않은 크기의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다. 검도를 꾸준히 하는 과정의 어느 순간에 일정 단계를 거쳐 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이것은, 실력을 인정받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실력에 비해 단을 너무 쉽게 받는 기분이라는 내 말에 관장님과 사범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정도 고단 대열에 이르기 전에는, 단 획득은 그만큼 더 수련을 쌓으라는 의미라고 말이다. 단을 획득하고 나면 그만큼의 의무감이 더해져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거라 말했다.
그 말은 정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2단 획득 후 지난 2년 동안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이 없었다. 언제나 몸은 나아가지 않았고 팔도 잘 뻗어지지 않았으며, 턱은 항상 들려 있었다. 죽도가 문제일까 라는 생각에 이런저런 조언을 받아 나름 좋다는 죽도로 바꾸어보기도 했다. 죽도를 바꾼다고 실력이 나아질 리도 없었다.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는 아파오며, 양쪽 무릎도 좋지 않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고민만 안고 있었다. 해답도, 답이 될 만한 기회나 힌트도 접할 새 없이, 꾸준히 수련만 해 오고 있었다. 꾸준하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실력은 나아질 수 없었다.
그런 실력으로 3단을 획득한다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3단을 우선 획득하고 나니 내 수련을 둘러싼 주변이 직간접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나 자신부터가 약간의 초조함을 안고 수련에 좀 더 집중했다. 단에 걸맞은 실력이라는 부담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좀 더 많은 조언들이 건네 졌다. 그리고, 대련 연습을 하는 상대의 칼 역시 조금 달라졌다. 자세와 죽도를 운용하는 방법 등에 있어 이런저런 변화를 줘 보라는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조언과 유도였다. 수련시간에 내가 자리하는 위치 역시 조금 위쪽으로 올랐다. 자리가 위로 바뀌었다는 것, 그것은 내가 실력이 되어서 오른 자리가 아니라 변한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과 어울리도록 내가 노력하고 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현재 나는 중단 자세에 변화를 주고 있다. 팔자걸음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발 앞이 벌어지는 자세라 뒤의 오른발의 도약력이 조금 떨어진다. 5단 사범의 조언을 받아, 오른발이 잘 고쳐지지 않으면 앞에 자리하는 왼발을 같은 방향으로 몸의 중심 쪽으로 기울이는 것이 도움된다 해서 발의 자세를 다시 잡고 있다. 기존 중단 자세를 다시 점검했더니 나의 오른 팔꿈치가 너무 펴져 있었음을 확인했다. 죽도 끝을 잡은 왼손을 약간 몸의 왼쪽으로 기울여 붙이고, 오른 팔꿈치를 약간 굽혀 죽도가 나갈 때 거리와 속도를 늘릴 수 있도록 고쳤다. 항상 들려있는 턱은 무의식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히게 만들고 있었다. 턱을 몸에 붙이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죽도를 살짝 몸에 안듯 중단세를 취한다. 죽도는 단타에 걸맞은 고도병단형으로 바꾸었다. 손은 죽도를 좀 더 그러모으듯이 쥐고, 스텝은 조금 더 나누어 간결하게 움직인다. 몸을 믿고 힘과 탄력으로 대련하던 젊은 사람들의 검도와는 달리, 이제는 몸을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한다. 그러기에 몸을 운용하는 방법도 조금 달라지는데, ‘세메’라는 개념을 연습하고 있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왼 발의 탄력으로 치고 나가는 방법과는 달리, 몸의 중심을 앞으로 이동하면서 오른발을 낮고 자연스럽게 앞으로 밀며 죽도를 운용한다. 그것이 점점 쌓이는 나이에 걸맞은 수련방법이라 이해하고 있다.
수련 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진료시간이 오후 야간 진료로 변경된 이후부터는 정규 수련시간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진료를 마친 후 아무리 빨리 가도 마지막 수련이 끝나고 십여 분이 지난 시간에 도착한다. 할 수 없이 일주일에 이틀 정도 늦은 시간에 도장에 가서 여건이 닿는 대로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수련할 사람이 거의 없을 듯했으나, 마지막 수련시간에 참석 후 나를 기다려 함께 해 주는 검우들이 한 둘 생겨났다. 시간이 맞지 않아 정규수련에 참석하기 힘든 검우들이 마침 잘 되었다며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오는 검우들도 생겼다. 종종 관장님도 기다렸다가 함께 해 주신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 때문에 그 시간에 있어준다는 생각에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의 정해진 시간을 의무감에 어떻게든 수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수련 때마다 한두 명의 적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사람이 적으니 자세나 문제점을 교정하는 데엔 아주 좋은 여건이 조성되고 있었다. 이는, 내가 따로 수련을 계획하면서 설정했던 방향이라 더없이 좋은 상황이 되고 있다.
꾸준히 수련한다는 것은 여전히 나의 가장 큰 장점이다. 조금 지루하다 싶을 만큼의 답보상태가 지속되어 고민이 많았지만, 3단을 획득한 이후에는 조금씩 진전을 느끼고 있다. 자세를 교정하고 교정한 자세의 장단을 내가 느껴가며 내 스타일의 검도를 쌓아가는 중이다. 수련여건에 유리와 불리가 작용하면서 여러 변화도 생겼지만, 그것 그대로 나름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중이다. 저녁식사 시간을 활용한 잠깐의 헬스장 운동과 더불어 검도는 나의 진료에도 도움이 된다. 중년을 넘은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건강관리법을 설명할 때, 운동을 권유하면서 나는 꾸준히 검도와 헬스를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운동을 해서 30대 후반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혈압을 이제껏 혈압약 복용 없이 정상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3단 획득 후 어쩌다 보니 가검을 구입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조선세법도 조만간 시작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승단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앞으로의 수련은 내가 따라야 할 모델도 필요하다. 자세를 잡고 기본적인 설정이 마무리되면, 내가 따라 하고 싶은 검사를 모델로 세워야 한다. 개인의 기본과 도장의 스타일이 만나고, 개인으로서 따라 하고 싶은 검을 모델 삼아 다가가면 어느 정도 나의 칼이라는 것이 정립되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깨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오른 무릎의 통증과 불안은 여전하다. 이는 내가 아직도 넘어야 할 기본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의미한다. 불리한 여건대로 꾸준하게 이어나가고 있고, 그것은 조금 천천히 돌아보며 나아가는 기회가 되고 있다. 뒤늦게 시작한 검도가 나에게 주는 몸과 마음의 긍정은 무척 크다. 순간순간 힘들고 조금 귀찮아도,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죽도를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