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권력과 자본이라는 체제의 가장 강력한 두 가지 힘이 있다. ‘권력은 자본에 넘어갔다’는 선언 이후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그런지, 국가권력에 반하거나 공감하는 일은 어쩐지 쉬워 보인다. 아베가 대한 수출규제를 통해 한국을 고립시키려 하자, 정부는 정부대로 강력한 의지로 대응하고 있고,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벌인다. 이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다. 때로는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한다. 한국의 국민성이 이 정도라는 자부심까지 든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권력은 인민에게 봉사하는 존재인가, 인민을 통제하는 것은 국가권력과 자본 중 어느 것이 더 심한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의 100여년간, 국가권력에 희생된 전 세계인이 대략 2억명이라고 말한다. 그 중 자국의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숫자가 1억 2천만이라고 이야기한다. 굳이 이런 통계를 들지 않아도, 우리의 근현대사와 촛불을 들게했던 최근의 정권들의 경험에서 국가권력의 본질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권력을 거머쥔 이들의 정치갈등 사이에서 우리는 국민이 아닌 인민으로서 좀 더 냉정하고 독립적인 고민과 판단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반일감정, 불매운동 자체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주의의 함정안에 있다는 사실을 고민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인민을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이나 국가권력에 비판은 당연하되, 국민이 아닌 인민의 입장으로 좀 더 독립적인 의지와 행보는 좀처럼 상상이 쉽지 않다. 국가라는 것, 날 때부터 부여받는 하나의 낙인, 인간이 스스로 걸어들어간 함정이거나 처음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덫 같은 것이라는 점이 상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인민의 삶을 옥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국가권력이라기 보다는 자본이다. 자본의 본성이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고 그 이상으로 자라 우리의 숨통을 거머쥔다. 자본 앞에서 국가권력은 오히려 힘을 쓰지 않아 문제다. 국가권력이 자본을 통제해 주어야 자본의 성장을 조절하고 인민은 숨을 쉴 수 있는데, 권력은 이제 그럴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본을 거부하기가 힘들다. 대기업의 소비구조와 이익에 봉사하는 구조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대형마트에서 물질의 풍요를 누리기를 마다하지 않고, 프렌차이즈 유통구조 안에서 내 한몸 편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건물주의 갑질 앞에서 우리는 저항하기 보다는 건물주가 꿈임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자본의 유혹과 편리앞에서 그것들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 국가권력의 갈등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반일 불매운동을 벌이는 국민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 정도 인식이면 자본에 반대하는 인민의 반자본운동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반자본운동이라는 거창한 운동보다도, 국가권력의 자본통제를 요구하는 좀 더 적극적인 싸움을 하고, 현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싸움들에 인민적/국민적 지지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반일감정이라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반일 불매운동이라는 스스로 감당할 만한 불편이 있다. 반자본이라는 쉽게 생각하지 못할 주제와, 반자본운동이라는 감내하기 조금 버거운 불편도 있다. 이 둘의 차이 안에서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억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힘들다. 이 사실은, 인간 자체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생각이 깊지 않은 존재임을 증명한다.
2.
유승준의 입국불허에 나는 이해가 쉽지 않다. 국민적 분노의 타겟이 된 이가 국내에 들어와 활동한들 일말의 호응도 어려울 것인데, 굳이 입국부터 불허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무대에서 날고 기던 유승준이 허리수술이란 것을 하고 환자용 침대에 실려나오는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때, 나는 군의관이었다. 그 신문을 같이 보던 병사는 사업을 하다 망한 집의 아이였다. 부모는 합의이혼하고 자신과 미국에서 유학하던 형은 경제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 병사도 허리가 아파 입실한 상태였는데, 유학을 포기하고 군대에 들어간 형은 훈련 중 허리를 심각하게 다쳐 통합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화천에서 복무하는 동기 군의관은 전화로, 심근경색의 경력이 있는 병사가 현역으로 입대했다며 불안을 토로했고, 가까운 훈련소에 현역입대한 어느 병사는 건강문제로 치아가 모두 썩어 으스러져 제대로 된 식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모두, 집안이 어려운 아이들이었다. 고 리영희 선생이 ‘역정’에서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복무할 때, 강원도 동부 최전선에 차출되어 투입되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가 오는 최전선의 후방에서 전투에 투입 전 병사들을 모아놓고, ‘여기에서 중학교 이상 학교에 다녀 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봐!’ 하자 수십명의 병사들 중 손을 든 사람은 서넛에 불과했다고 한다. 내가 군의관 복무 시점이 2000년도 초반이었는데,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이 반세기를 넘어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그래서 유승준에 분노했다. 절대로 한국땅엔 발을 들이게 해서는 안된다고, 사람들의 분노에 공감했다. 그런데, 그런 이유라면, 우리는 같은 분노를 던져야 하는 사람들을 이미 많이 알고 있다. 담마진이나 공황장애를 이유로 군면제를 받은 사람들, 무대에서는 날고 기다가 어느날 공익근무복을 입고 세상착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정치의 최전선에서 우리를 통제하려 들고, 텔레비전 화면에서 다시 날고 기며 호화롭게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이들에게 분노를 던지지 않는다. 그들의 군 면제가 정당했는지 아니었는지를 제대로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유승준과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유승준이 국내에 한 발도 들일 수 없는 이유와, 현역의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군면제를 받은 이들이 한국사회의 최상위 구조에서 권력과 자본을 누리고 있는데도 비난받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인식은 도대체 어떠한 것을 기준삼아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