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들

포퓰리즘 : 20190805

by 전영웅

짜증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직업적 입장에서 노련하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기분은 피할 수 없다. 자한당류의 양아치들은 좀 더 가볍게 무시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왠지 이명박근혜 시절보다 더 답답하고 무력해지는 기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의료보장 확대 정책을 보면서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의 방향성은 옳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한국적 의료환경 안에서 그렇게 시행을 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가 없음에 나는 포퓰리즘의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우려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보험 견제 없는 보장 확대는 건보료 상승을 불러일으킨다. 좀 더 확대된 보장은 사람들을 3차 종합병원으로 몰리게 하는 현상을 낳았다. 위중한 병에 걸렸을 경우 국가보장의 혜택을 받아 경제적 부담을 덜겠다는 기본의 취지는, 어딘가 조금만 이상해도 종합병원에서 비싼 검사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이기심과 보상심리로 변질되었다. 이것을 통제할 만한 적절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책 없이, 정부는 보장 확대만을 홍보하며 사람들을 부추긴다.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확신이 좀 더 강하게 드는 건, 이번 강원도 화상 원격진료 허가였다. 문제는 포퓰리즘을 정책에서 느꼈다는 것이 아니라, 정책 발표 이후의 사람들의 반응에서 느꼈다는 것이다. 이건 참 다이내믹한 심리 변화로도 보였다. 과거 박근혜 시절의 이 정책은 사람들에게 진료의 질 저하 비판을 받으며 보류되었던 정책인데, 같은 정책이 문재인 정권에서 시행되자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판의 화살은 이를 반대하는 의사들에게 쏟아지고 있다. 확신 같은 것이 들었다. 이 정권은 분명 포퓰리즘을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대북협력을 통해 경제의 파이를 넓혀 가라앉은 경제를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이, 북미 간 신경전 사이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아마도 지지도를 유지할 만한 내부적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의료였고, 제일 콩가루같은 의사 집단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밀고 나가는 정책으로 지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포퓰리즘은 이번 반일 정책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시작은 아베가 했고, 이 정부의 반응은 일단 괜찮았다. 그렇지만, 정부의 방식은 국민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반일 자체도 강력한 포퓰리즘의 도구였다. 이 정부는 한 술 더 떠, 반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국민들을 싸움의 사지로 몰아넣었다. 정부의 역할은 정책으로 대응하고 협상으로 설득하며 난국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불매운동이야 자생하는 반응이니 뭐라 할 건 없지만, 그것을 정부가 부추기고 일본 전체를 적으로 만들어 싸우자는 행위는 본인들의 정권유지와 지지를 의식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파시스트적 선동이다. 권력 위에 자본이 군림하는 세상임을 분명하게 의식하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선동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음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경을 의식하지 않는 자본이 세상을 뒤덮었는데, 일본 제품 불매 운동한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의 자본이 홍해 갈라지듯 갈라지고, 분리장벽 세워지듯 벽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불매운동 피해자들은 아군의 내부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해 왔던 사람들일 뿐이다.


노동환경이 열악한 한국의 상황에서 반일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정책들은 대부분 친기업 정책들이다. 주 52시간 근무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고, 일본산 부품이나 재료에 의존이 높은 산업들에 규제를 유연하게 풀어준다. 그게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는 분명하다. 착취 아니면 해고의 형태일 것이다. 정부는 다시 열악한 환경에 처할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반일감정의 영향을 받는 소상공인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반일감정의 분위기가 그런 것쯤은 일시적이고 소소한 현상으로 치부해도 된다고 허락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이 무서운 것은, 앞에 선 선동자의 카리스마나 권력이 아니다. 선동자를 지지하는 세력의 편협함이다. 편협함이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고, 설득을 폭압으로 만든다. 문제는 선동자는 그것을 십분 활용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부가 그러한 모습이다. 견고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되, 발생하는 부작용은 소소한 현상으로 치부하고 그것의 책임을 지지세력들에 전가할 수 있다. 굳이 문빠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될 시기이다. 반일은 굳이 문빠가 아니라도, 한반도의 전체의 내면의 앙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정부는 반일의 거대한 파도를 타고 아슬하지만 신나고 거친 파도타기를 즐기는 중인지 모른다. 요즘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 붙어있는, 숨어있는 애국심을 다 끌어모으자 종용하는 민주당의 플래카드를 볼 수 있다. 파도타기를 신나게 즐기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명박근혜의 짜증이 사라지자 더 짜증 나고 두려운 건, 앞으로의 미래가 왠지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짜증의 대상이 사라지자, 짜증은 과정에서 유발되고 있고 과정의 결말은 뭔가 두려운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크다. 직업적으로는 포퓰리즘 의료정책에 대응하는 의사 집단이 똘끼와 무식으로만 무장한 콩가루 집단이라는 점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명박근혜의 그 이상했던 시절을 동경하는 꼰대들이 아직 건재하며, 현 정부를 지지하는 집단은 점점 맹목이 되어가며 파시즘의 작은 핵을 키워간다. 시야는 민주당과 현 정부에 고정된 채로, 우리가 찾아야 할 대안을 좀 더 진보적인 정치세력에서 찾지 않는다. 그럴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에 있는지 모른다. 그들의 맹목이, 현 정부를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도록 놔두었다. 알맹이도 분명한 대책도 없는 포퓰리즘이 탄생한 배경이다. 정권은 바뀌었는데 이상하게도 합리성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모든 건, 좀 더 어려운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확신하고 싶은 것 하나와, 확신한 것 하나가 있다. 전자는, 이 정권이 오랜 시간을 두고 보았을 때 다시 권력을 거머쥐고 수습과 정비를 하느라 아직 좀 더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힘들어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후자는, 이 정권의 활약 안에서 느낀 점인데, 우리는 국제정세 안에서 취약한 지리와 연약한 힘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 인민의 입장에서, 모든 게 점점 어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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