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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Oct 03. 2019

[독후감] 내 마음의 낯섦

  어두운 밤, 화려하게 빛나는 시내 한복판의 어딘가로 사라지는 그의 등은 투박하고 무채색이었다.  들뜬 화려함 안으로 들어가지만, 절대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무게를 안고 있었다.  낮과 밤을 젊어서부터 하던 대로 열심히 일하며 소박한 삶을 꿈꾸었다.  고단한 삶을 이어 얻은 것은 그의 바람대로 소박한 가정과 살림이었지만, 세상에 점점 파묻혀가는 것만 같은 기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은 그러했다.  


  살고 싶은 곳에서 로망이나 추구하며 살았던 길지 않은 시간이, 실은 현실의 파고와 변화 앞에서는 적지 않은 실수이자 독이었음을 깨달았던 때가 있었다.  깨달음의 여파는 여전해서, 앞으로의 현실에 어떤 수정과 변화를 주어야 할지 고민이다.  누리고자 하는 행복과 옳다고 믿어오던 일과 삶의 방식들이, 시간에 따라 흐르는 현실의 파도 위에서 점점 휴지가 되어 녹아 부수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 아팠다.  내 삶의 방식에 입을 다물고 더 이상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사람들, 너는 이렇게 변해야 한다고 나직이 조언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려함 안으로 무채색이 되어 조용히 가라앉던 내 아버지의 뒷모습이 내 모습과 겹쳐졌다.

  소시민적 삶과,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지키는 일은 틀림에 가까운 세상이 되었다.  아니, 가깝지 않은 과거 어느 시대에서부터 그런 것들은 변화에 녹아 사라져야 하는 신념이 되었다.  경제발전과 자본의 급격한 부풀림 안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과 판단의 기준을 삼아야 하는 것은 분명해지면서 단순해졌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풀려지고 드높아진 세상의 화려함 안으로 파묻혔다.  이색적인 과거의 모습이 되거나, 사다리의 맨 아래에서 분주해져야 했다.  힘들고 버거움은 당연한 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같은 시간을 살았다.  누군가는 부풀고 드높아진 세상의 높이에 서서 기름진 얼굴로 내려다볼 때, 그들은 마르고 굽은 등으로 가려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는 변화한 세상에의 적응에 만족스러워했지만, 그들은 너무도 변해버린 세상의 모습에 낯설어했다.  과거를 추억하던 장소가 사라지고, 감정의 어느 지점에서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던 풍경과 하늘이 사라진 모습에 슬퍼했다.  익숙했던 자리에서 낯섦을 느끼는 그들은 옳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그런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독자는, 어째서 적절한 존중과 아련한 추억이 아닌 나직한 슬픔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요구르트 장수의 아들이자 보자를 팔면서 삶의 위안을 찾았던 소시민 메블루트, 그를 둘러싼 이스탄불의 수많은 모습들과 터키의 여러 관습들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변화한다.  그가 늙어가는 시간과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화하는 시간은 같지만 속도는 달랐다.  보자를 팔러 다니던 골목은 무섭도록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보자를 팔러 골목을 다니는 일에 만족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만족과 위안 안에서 머무른다.  그는 그의 마음을 낯설게 만든 변해버린 골목 안에서 그의 죽은 아내 라이하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그 낯선 마음과 신념 같은 답답함이 내게 낯설지 않음은, 나와 내가 바라본 내 아버지의 모습이 메블루트와 비슷해서였다.  그리고, 메블루트가 살아온 이스탄불의 시간이, 나와 내 아버지가 살아온 이 곳 한국의 시간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메블루트의 어깨가 내려앉은 이유는 비단 보자 바구니가 걸린 나무막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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