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3. 20180722

by 전영웅

우리 가족이 제주로 이사 온 때가 네가 4살이 되던 해였다. 남쪽이지만 추위가 만만치 않았던 2월에 너는 걱정과 달리 참 빠르게 적응해주었다. 너는 앉은자리에서 귤을 손이 노래질 때까지 먹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니 우리 집에서 제주어를 제일 먼저 배우고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한 사람이 너였다. 엄마와 아빠는 그 모습이 참 신기했어. 말은, 내가 사는 곳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배워지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빠는 고향이 전라도이고 엄마는 고향이 서울이니, 아빠는 어릴 적부터 전라도 사투리로 말했고, 엄마는 서울말을 했지. 아빠는 집을 나와 춘천 남해 서울을 거쳐 제주로 왔으니, 강원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를 경험했고 서울에 살면서 서울말에 가깝게 말을 하게 되었다. 말이라는 것은 지워지지 않게 새겨 넣는 것 같아서, 아빠의 말엔 서울말에 가까우면서 전라도 사투리의 흔적이 섞여있다.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한다. 아마 지금 아빠의 말엔 서울말에 가까우면서 전라도 사투리의 흔적이 섞여있고, 말의 높낮이는 제주어를 따라가고 있을지 모른다. 아, 참고로 서울말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육지 말은 각자의 다른 모습을 사투리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말은 조금 다르지만 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육지의 말을 똑같은 언어로 묶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말은 제주어라는 육지 말과는 다른 말로 구분한다. 아마도 사용하는 단어나 말의 높낮이가 육지와는 현격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에도 사투리가 있다. 사투리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 하듯, 미국이나 영국의 어느 지역과 어느 지역의 말투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어는 전 세계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언어이다. 그래서, 세계 각 지역이나 나라마다의 구분으로 치자면 같은 영어라도 발음과 높낮이가 다양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영어는 영국에서 사용되던 말이다. 먼 옛날 영국 사람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곳곳을 침략하고 점령해서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절에 영어는 같이 퍼져 나갔다. 미국은 영국에서 건너간 청교도들이 정착하며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호주 역시 마찬가지로 영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어는 곳곳에 퍼지면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발음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미국식 영어, 호주식 영어, 필리핀 영어라는 식으로 굳어졌다. 말하자면 영어는 전 세계적으로 사투리가 있는 셈이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는 식민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인도였고, 미얀마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가 있었다. 홍콩도 있었지.. 영국에 해가 뜰 때면 인도네시아나 홍콩 같은 곳은 해가 질 것이고, 다시 지구가 돌면 반대가 될 것이기에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에서 독립했으니 그 전엔 영국 식민 영토였다. 말레이시아를 지배하던 영국인들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말레이반도에 영어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네가 있는 그곳은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땅이다. 그리고, 영어가 말레이시아라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조금 변하게 되는데, 말레이시아식 영어 사투리가 된 셈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망글리시라고도 한다고 한다. 한국식 영어를 콩글리시하듯 말이다. 네가 머물며 공부하는 그곳은 말레이시아식 영어를 사용하는 곳이다.


물론 네가 다니게 될 학교에서는 영국 표준에 가까운 영어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아빠가 직접 참관을 해 본 것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말이다. 중국어와 말레이어를 사용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다 보면 영국 영어는 억양이나 발음이 조금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혹시, 말레이식 영어 사투리에 조금 물들어 간다 하더라도 싫어하거나 우울해하지는 말아라. 말은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뜻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이며, 그것을 잘 사용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고 유연하고 세밀한 표현을 구사하는 것이다. 사투리가 뜻을 전달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듯, 네가 조금은 변한 영국식 영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너와 대화하는 사람이 뜻을 알아듣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네가 말레이시아에서 배운 영국식 영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널 무시한다면, 그것은 상대의 인격이 모자란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얼굴이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같이 생기지 않았다고 놀리고 무시하는 것과 같은 유치한 행동이다.


어떤 언어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말을 쓰는 사람이 사는 사회의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말이다. 그 뜻은 내가 사는 환경이 말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아빠가 전라도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라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지, 전라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전라도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경상도로 이사를 갔다면 아마 아빠는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네가 제주에 와서 자연스레 제주어를 말했듯이 말이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영어가 전 세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는 각 지역마다의 문화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식 영어가 사용된다. 문화적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게 된다면 필리핀식 영어에 가깝게 사용할 것이라고, 그 언어학자는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미국식 영어를 배운다. 뉴욕에서 사용되는 미국식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를 똑똑하고 멋지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허영이다. 미국 영어도 따지고 보면 영어의 사투리 격이고, 미국 안에서도 수많은 사투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식 영어를 동경하는 것은 미국은 좋은 나라라는 환상에서 비롯된 것뿐이다. 너는 네게 주어진 이 기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열심히 배워라. 앞서 말했듯, 말은 어떤 지역의 어떤 말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네가 뜻을 전달하는 데 단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사용하는지,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표현력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는 네가 영어를 그런 수준까지 구사할 수 있길 바란다. 네가 하늘을 날려면 네 등에 붙을 날개는 크고 유연하며 풍부한 깃털을 담고 있어야 하듯 말이다.


네가 있는 조호바루보다 제주가 더 덥다고 한다. 너무 더워서 아빠도 조금 힘들다. 아빠는 더워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실내에서 하던 일 하며 오가고 있으니 견딜 만 하지만, 너는 더위와 함께 낯섦이 있으니 마음에 작은 부담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사촌 누나와 영어 말하기 연습 열심히 하고, 수영 많이 하고, 많이 먹어라. 지금 주어진 기회를 즐기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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