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8. 20180901

by 전영웅

드디어 제주에도 비가 오는구나. 제주는 너무 더웠다. 육지는 폭우가 내려 여기저기 물에 잠기고 땅이 무너지고 그랬다는데, 제주는 비는커녕 뜨거운 바람만 불고 있었다. 큰 태풍이 지나가고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침 일찍부터 라이가 나무 그늘로 숨어 들어갈 정도로 무척 더웠다. 퇴근하려 차에 들어가면 차 안이 더운 공기로 가득했고, 그 열기에 차 앞유리에 단단히 붙여둔 블랙박스가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비가 너무도 간절한 나날이었어. 너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 토요일 이른 아침,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엄마가 보내 준 사진 속의 너는 살이 좀 빠진 듯 보였다. 아침 먹는 모습을 자연스레 찍어 그렇게 보인 건가 싶었지만, 먼 곳에서 새로운 학교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는 네가 적응하느라 나름의 스트레스도 받고 있겠지 싶었다. 학교는 어떤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간간히 듣고는 있지만 아빠는 너에게 직접 듣고 싶다. 조금 빠져 보이는 살이, 즐거워서 그런 건지 힘들어서 그런 건지 궁금하고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외삼촌의 집에서 남매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아빠는 조금 안심이 된다. 잘 지내길 바란다.


얼마 전, 엄마가 너의 이야기를 하더구나. 꿈에서 라이를 만났다고.. 너는 라이를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다시 엄마에게 전해 듣기로는 너는 라이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울었다는 이야기는 아빠한테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던데, 아빠가 알게 되어서 그 부분은 먼저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다. 그렇지만, 아빠는 아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궁금하다. 그리고, 너를 응원하면서도 네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고 싶다. 그러니, 아빠에게도, 아빠가 조금 어렵다면 엄마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서 그것이 아빠에게도 전달되도록 해주렴.


네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라이뿐만 아니라 집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말이다. 너무 먼 나라에서 이른 나이에 공부를 한다는 것을, 엄마 아빠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부담스러워했다. 너의 동의도 구하긴 했지만, 정작 직접 겪어나가야 할 것은 너 자신이니 네가 보이는 행동이나 기분, 감정 같은 것들에 엄마 아빠는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아빠는 네가 라이를 생각보다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어 더 마음 아프고 고마웠다.


그런데, 아들아. 상대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를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상대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방법은 상대가 좋아할 일을 내가 하는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하는 나만의 생각으로 상대를 대하면, 그 사람은 너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예전에 너는 자꾸 라이를 목욕시키자고 했었다. 너는 라이를 생각해서 하는 제안이었겠지만, 라이는 물을 싫어하는 개다. 바깥에서 사는 녀석이고 스스로 알아서 몸 관리를 하는 야생성을 가진 개를 억지로 목욕을 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너는 라이를 좋아해서, 라이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해 주고 싶었겠지만, 라이는 그것을 배려로 생각하지 않고 괴롭힘으로 생각할 것이다. 라이는 항상 너를 주인으로 대하고 복종하겠지만, 네가 자꾸 라이를 목욕시켰다면 너를 온전히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을 뿌리며 라이와 장난을 치고 싶은 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라이는 이미 자신에 물을 뿌리던 마당 호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아빠가 물을 주려 마당 호스만 잡아도 저만치 멀리 떨어져 피해버린다. 라이가 정말 너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적어도 라이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경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까지 적용할 수 있다. 네가 정말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생기거나, 나중에 사귀고 싶은 여자 친구가 생길 때, 너만의 생각으로 상대를 대하면 십중팔구 상대는 부담을 느끼고 널 멀리할 것이다. 물론 사람은 동물보다 이해력이 뛰어나니 네가 사귀고 싶은 상대는 너의 호감을 잘 헤아려 받아 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상대가 싫어하는 것은 피해야 하고, 너의 생각만이 담긴 일방적인 호감 표현은 부담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 아빠가 말했던 눈치와도 상관이 있다. 사람을 사귀고 같이 지내는 일은 눈치가 필요하다. 눈치가 없다는 것은 네가 좋아하는 감정과 ‘이러면 좋아하겠지.’ 하는 너만의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자꾸 보내는 일이다. 적어도 상대방이 무얼 좋아할지, 무엇을 싫어할지 배려하고 살피는 일이 필요한데, 눈치가 없으면 그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자꾸 너에게 눈치를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아빠 역시 눈치가 없어서 이제껏 살아오는데 민망한 순간을 너무 많이 만들었었다. 아빠를 닮아 눈치가 없는 네게, 미안한 마음으로 건네는 조언이다.


비가 천장을 제대로 때리기 시작하는구나. 아침 일찍 잠이 조금 부족해서 피곤하지만, 맑은 정신으로 너에게 먼저 편지를 쓴다. 이것도, 어려운 것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할 너에게 아빠가 일방적으로 건네는 조언일까? 그렇다면 여전히 아빠는 눈치가 없다. 그래도, 한 번 쓱 읽어보고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이 무언 지는 가볍게 이해하고, 나중에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아빠가 무얼 이야기하는지 잘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덥지만, 바람 없는 그곳 동네길 늦은 밤의 배드민턴이 생각난다. 추석 때 가면 아빠랑 한 판 붙어보자. 그때까지 건강하게, 학교에 잘 적응하며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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