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가을 모종들을 심었다. 가을 텃밭은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 2월이 되면, 가까운 밭에만 돌아다녀도 버려졌지만 먹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무와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들을 주워 올 수 있으니까. 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밭에 들어가 무와 당근 등을 주워오는 일을 정말 재미있어 했지. 큼직한 무 두 개를 양 손에 쥐고 밭에서 걸어 나오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것들이, 아빠가 텃밭에서 게으르게 키워 낸 무나 양배추, 배추 같은 것들보다 훨씬 크고 좋으니, 가을 텃밭이 시시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빈 땅을 채우고 꾸준하게 돌보며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배추와 양배추 모종을 사서 심고, 무의 씨를 뿌렸다. 쪽파도 심었다. 모종들이 자리를 잡고 크기 시작할 때까지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숙제가 많더구나. 교과과정이 여기와는 조금 다르니, 너에겐 조금 생소한 원리나 개념의 과학 문제들이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문제와 답이 모두 영어이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네가 밤새 숙제를 부여잡고 힘들었을 것 같았다. 아직 시작이다. 그리고, 너는 어디서든 적응을 잘하니까 처음의 부담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급해하거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네가 그곳에 간 이유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게을러서는 안 되지만, 조급할 필요 없이 부지런히 따라가며 아빠가 말한 목적을 찬찬히 달성하면 된다.
꾸준함은 어디서나 필요한 덕목이다. 아직은 너에게 어려운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서 유명해진다는 것 또는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천재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던가, 세상의 흐름 안에서 기회를 잘 잡아 단숨에 그렇게 됨을 의미한다. 아들보다 조금은 오래 산 아빠의 눈으로 보면, 그런 성공이나 유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그다지 유익해 보이지는 않는다. 살아가는 데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거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꾸준하게 찾는 것이다. 아빠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빠는 네가 운영하는 블로그가 참 재밌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글도 잘 쓰고,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순수한 상상력으로 구성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모습도 대견하다. 그리고, 아빠가 생각하던 것보다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려 하는 모습도 새로웠다. 동시에, 초등학생다운 딱 그만큼의 모습이 블로그에 담겨서 앞으로 성장하고 변화하게 될 너의 모습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빠가 조금 간섭하고 싶은 몇 가지 중에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너무 조급하다는 것이다. 그게 초등학생다운 딱 그만큼의 모습일 수 있으나, 너에게 독이 될 수도 있기에 아빠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는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이고, 열심히 글을 쓰고 관리를 한다지만 글 올리는 간격이 불규칙하고 마인크래프트 소설 외에는 주제가 불분명하다. 네가 사람들의 관심에 목말라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그렇게 처음부터 확 불붙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주제가 불분명하다는 점 역시, 사람들이 쉽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이다. 네가 노골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하려 드는 건, 오히려 너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네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시간이 난다면 주기적으로 이야기를 써서 올리는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리고 블로그의 주제를 명확히 하고, 다른 주제들을 올리고 싶다면 카테고리를 구분하여 나누어 올려야 한다. 그리고, 블로그를 너의 개인 낙서장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올리는 글 하나하나 일관된 주제와 일정한 분량이 있어야 한다.
아빠는 블로그를 운영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글을 싫어하던 아빠가 글을 쓰는 것은 아빠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한 변화이다. 문득 쓰고 싶어진 글을 일정한 분량만큼은 꼭 채워서 쓰자고 다짐하며 쓴 것이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아직 유명해지거나, 이제껏 쓴 글로 책 한 권 내지 못했다. 아빠의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조금의 고정 독자층이 만들어졌고, 다양한 검색에 노출되면서 하루 평균 방문자수가 일정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블로그를 시작하는 너는 꾸준하게 글을 쓰면서 좀 더 멀리 바라보았으면 한다. 주제도 네 또래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글도 또래의 유행에 잘 어울리게 쓰고 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빠보다 훨씬 더 유명한 블로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급함을 경계하는 일은 굳이 블로그뿐만 아니다. 네가 하는 모든 것들, 빨리 하거나 이루고 싶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란 세상엔 없거나 있어도 아주 적단다. 아직은 그런 바람들에 조급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이임을 안다. 이제부터 너에게 필요한 것은, 무얼 바라거나 이루고 싶은 일이 생기면 조급해하고 답답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지금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는 것이다. 이 역시 훈련이 필요하고 엄마 아빠와 상의하며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앞으로 스스로의 삶을 위해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너에게 필요하고 훈련해야 하는 덕목 중 하나가 조급함을 누르고 노력하기이다. 그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차피 지금 그리고 앞으로 너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너를 그렇게 훈련시키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네가 그날 밤 힘들어하던 그 많은 숙제들 역시 그런 과정의 하나이다. 아들은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아주 조금씩, 때마다 스스로 깨달아 주기를 바란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