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최근 말레이시아에 관한 책 두 권과 싱가포르에 관한 책 한 권을 읽었다. 외삼촌이 사는 곳이 조호바루이고, 이전에는 쿠알라룸푸르에도 있었으니 말레이시아에의 관심은 당연하다. 그리고 싱가포르는 조호바루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니 세 번의 여행에 급 관심이 생겼다. 더구나, 네가 조호르바루에서 적어도 일 년은 머물며 공부할 예정이니 네가 머무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많이 비슷한 나라이지만, 영토가 너무 좁아 관심 자체가 넓어질 수가 없었다. 싱가포르의 역사를 공부하고, 지난번 같이 갔던 국립박물관에서 관람한 것을 보면 싱가포르의 지난 100여 년은 한국과 너무 닮은 모습이었다. 이전의 싱가포르는 말레이라고 불리던 땅에 속한 작은 섬이었다. 사자가 살았다고도 하고 호랑이는 분명히 살고 있었던 땅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색깔의 물결이 잔잔히 흐르는 느낌의 나라였다. 너와 아빠가 맛있게 먹은 그 수많은 음식들은 알고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오랜 시간 동안 만든 것들이었다. 원래 살던 말레이 사람들, 중국 남부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들, 그리고 영국 식민지 시기에 이주한 인도 노동자들, 그리고 네팔, 미얀마 사람 등등.. 말레이시아라는 지리적 위치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여러 이유로 불러 모았다. 그 사람들이 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들을 말레이시아에서 만들어 먹었고,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요리법도 뒤섞이면서 다양한 요리가 나왔다. 요리들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고급스럽지도 않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바쿠테든 딤섬이든, 또는 인도 음식들도 말이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차분한 느낌들이었어.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는 음식으로도 표현이 된단다. 말레이시아는 그런 잔잔하고 다양성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충분히 긴 시간을 머물며 살았던 분이 쓴 책에서는 도시의 곳곳마다 각각의 인종들이 모여 사는 구역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맛보았다고 쓰여 있었다. 인도인들이 모여 사는 구역, 중국 화교들이 모여사는 구역 같이 말이다. 다양하게 뒤섞여 사는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민족끼리의 공통점이 주는 편안함도 무시 못할 것이다. 말레이시아가 잔잔하게 흐르기만 한 나라는 아니었다. 말레이인들과 중국 화교들 간의 갈등이 폭발해서 한 때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친 일도 있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제1 구호가 ‘사뚜 말레이시아’이다. 하나의 말레이시아란 의미인데, 모두가 잘 화합해서 평화롭게 지내자는 목적에서 주창하는 구호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민족보다 말레이 민족에 대한 우대가 노골적인 나라이다. 구호와 맞지 않는 모습이지만, 적어도 말레이시아는 아직 조용하고 다양하게 잘 흘러가고 있는 나라로 보인다.
네가 있는 조호바루는 민족 간의 갈등이나 예민함에서 조금은 부담이 덜한 지역이다. 우선은 네가 아직 학생이고 학생들끼리는 민족 같은 건 상관없이 잘 어울릴 수 있는 또래의 친근함이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네가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도, 다양함과 친근함이 주는 자연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너의 무난한 성격이 자연스러움을 만나 좀 더 잘 적응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응이라는 건, 다시 말하지만 공부를 잘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그곳의 말을 하며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말을 배운다는 것은 그 말을 쓰는 나라나 동네의 문화를 배우고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처럼, 잘 적응해나간다면 너는 아빠가 기대하는 대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잘 적응하길 바란다. 아빠는 많은 걱정을 얹은 마음으로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 너는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정말 그곳에 혼자 있어야 한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잘 돌보아 주실 거고, 사촌 남매들이 너와 잘 어울려 줄 것이다. 그렇지만 네가 엄마 아빠 없이 긴 시간을 있어야 하는 경험은 처음이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는 걱정이 많다. 서울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네가 혼자 있어야 하는 사실에 걱정이 많으시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네가 잘 적응하고 혼자서도 잘 지내도록 기도하고 응원하는 일뿐이다. 모든 건 너 스스로 해 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깨달아야 할 당연한 진리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너에게는 조금 빨리 다가왔다는 사실에 아빠는 마음이 무겁다. 아들인 너만을 믿어야 한다는 이 막연한 기대에 아빠는 미안하고 무기력하다.
이번 추석에는 너를 만나러 다시 조호바루에 간다. 그리고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제주로 올 것이다. 너를 남겨놓고 와야 한다는 사실에 아빠는 이번 일정이 즐겁지가 않다. 그래도 머무는 동안 여기저기를 가봐야지 생각하면서도 공부하는 너를 떠올리면 마음이 많이 무겁고 미안하다. 역시, 아빠는 아들인 너만을 믿을 수밖에 없다. 잘 해내길 미리부터 바란다. 네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단련이 되고 양분이 될 거라 믿으며 잘 해내길 바란다. 아빠가 미안한 마음으로 너에게 당부한다. 네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은 온전히 너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