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12. 20181007

by 전영웅

제주는 날이 추워지고 있다. 이제는 밤이 되면 긴 팔 옷을 입어야 될 정도다. 태풍이 두 번 지나갔고, 다행히 별다른 피해 없이 가을의 중심을 보내고 있다. 아빠는 더운 날에 땀을 많이 흘리고 기운이 빠지는 체질이다만, 이렇게 추워지기 시작하면 그곳의 더운 날씨가 생각난다. 조금 그립기까지 하다. 몸은 좀 힘들어도, 더운 나라인 그곳에서는 가볍게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그곳에 가서 본 풍경에 아빠는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더 덥고 덜 덥고의 차이만 있는 그곳에도 계절의 변화 같은 풍경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두리안도 제 철이 있고, 과일들도 제철 따라 시장 가판대의 모습이 달라졌다. 일 년 중 한 철에만 피는 꽃이 있고, 비가 오는 횟수나 양도 차이가 있다는 것에 이 곳도 계절의 변화라는 것이 있구나 신기했다.


제주 집에는 날이 추워지니 텃밭의 모습도 달라졌다. 아빠는 올해도 별다르게 먹자 할 것이 없을 배추와 양배추를 심었다. 수세미 덩굴은 말라버려서 매달려 있던 수세미를 거두었다. 사과도 잘 익어 따서 먹었는데 참 맛있었다. 네 생각이 났다. 태풍 바람에 나무들이 한두 번씩 기울어서 바람을 덜 타게 가지치기를 과감하게 해 주었다. 고구마는 줄기가 무성해졌다. 두어 달 안에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그때에 맞추어 네가 제주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라이는 이제 다 커서 털도 고와지고 나름 얌전해졌다. 두 달 만에 집에 온 엄마가 라이를 보고 그러더구나.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라이 녀석은 태풍도 혼자 알아서 잘 견뎌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엄마는 널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엄마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널 향해 있다. 엄마의 아들사랑이야 어느 경우에든 의심할 이유 없는 당연한 사랑이지만, 아빠는 조금 놀랄 정도로 너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크고 깊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너의 카톡 답장 문자만 기다리고 있다. 학교는 잘 갔는지, 다녀와서 뭐하고 있는지, 별 일은 없는지 항상 너에 대한 생각뿐이다. 마치 몸만 제주에 있을 뿐, 너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마음은 네가 있는 그곳에 두고 온 사람 같다. 아빠는 생각보다도 빨리 혼자만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너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의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을 훌륭하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빠에게 말해주는 너의 모든 것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너는 잘하고 있다만, 한 가지만 부탁하자. 엄마의 카톡 문자에 되도록 빨리 그리고 자주 답해주길 바란다. 문자 할 상황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문자 확인하는 대로 바로바로 답을 해 드리거라. 가끔 엄마 안부도 물어주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다면 가끔은 먼저 걸어드려라. 그리고, 약속한 것들은 좀 더 철저히 지켰으면 한다. 예를 들어, 게임시간의 시작과 끝에 문자 하기로 한 거나, 숙제한 내용을 사진으로 보여주기로 한 것 말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물어보고 말이다.


혼자 남겨져서 외사촌 남매들과 함께 어울리다가 사촌형제나 또래 친구들끼리 문제가 생기거나, 혹은 너희들끼리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너 혼자만의 문제라 해결을 위해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어른들에게 물어보기엔 쑥스러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누나들에게 물어봐라. 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대개 너의 또래에서는 여자들이 좀 더 생각이 빠르게 자란다. 같은 나이라도 여자들의 생각이 남자보다 깊고 합리적이다. 그러니, 너희들만의 해결이나 스스로의 해결이 필요한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나들에게 먼저 부탁해 보는 것이 제일 나을 것이다.


아빠는 다시 너에게 고맙다 말하고 싶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부탁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일상을 조금 다르게 경험하고 있는 네가 이렇게 잘해주고 있으니 아빠는 고맙고 힘이 난다. 더운 나라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네가 아프지만 않다면 더더욱 고마울 것이다. 너를 보고 온 지 이제 열흘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많은 시간이 흐른 기분이다. 네가 없이 엄마 아빠만 있는 집을 적응하는 것도 아빠에겐 허전함을 이겨내야만 하는 일이다. 너만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는 일도 마음이 아프다. 너 혼자 그곳에 남겨두고 공부를 시키는 일이 정말 맞는 일일까.. 아빠는 항상 고민한다. 네가 보여주는 지금의 모습들에 아빠의 고민은 쓸데없는 일이구나 싶을 정도로 너는 잘하고 있다. 정말 잘하고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빨리 얼굴을 보자꾸나. 지금보다 더 추워지는 날에 보게 될 너의 모습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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