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15. 20181027

by 전영웅

아빠의 중학생 시절 이야기다. 체육시간이라 반 아이들 전체가 교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에 나와 공놀이를 했었다. 아빠 당시에는 체육시간이 있는 날엔 체육복을 준비해 가서 반에서 갈아입었다. 집에서부터 입고 가지 않았다. 어쨌든, 열심히 공놀이를 하다가 문득 우리 반 창문을 올려다보는데 누군가 우리를 지나가듯 한 번 쓱 내려다보고는 사라졌다. 우리 반에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우리를 내려다본 아이는 우리 반 아이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 아이는, 학년에서 불량하고 건들거리기로 유명한 친구였다. ‘저 녀석이 왜 우리 반에 들어온 거지?’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공놀이에 집중했다. 문제는 체육시간이 끝나고 나서였다. 다시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데 반 친구 하나가 주머니에 넣어 둔 돈이 없어졌다고 난감해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문득 아까의 일이 생각나서, 큰 소리로 반 친구들에게 ‘야, 아까 OOO 우리 반에 들어온 것 같던데, 걔 자기 반에 있는지 좀 봐봐!’라고 말해버렸다. 순간 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고, 그중 OOO와 친하게 지내던 반 아이 하나가 아빠한테, ‘너 그렇게 함부로 남을 의심하는 거 아니다.’라고 충고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그다음부터 아빠는 학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OOO와 마주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정도로 그 친구에게 찍혀버렸다.


그 OOO가 우리 반 친구의 돈을 훔쳐갔는지는 아직 모른다. 훔쳐갔을지도 아니었을지도 알 수 없다. 설령 강력히 의심이 된다고 해도 무조건 그 친구에 대한 의심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지는 말았어야 했다. 아빠는 그 부분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체육시간에 뛰어다니며 약간은 들뜬 기분과 감정에, 내 생각이 떠오르는 그대로 여과 없이 입을 통해 말해버렸다는 사실은 정말 위험하고 경솔한 일이었다. 그 덕에, OOO에 대한 의심을 구체적으로 파고들 수도 없었고, 돈을 잃어버린 친구를 더더욱 도울 수도 돈을 찾아 줄 수도 없었다. 아빠만 OOO의 무리에 찍혀 한동안 맘고생을 했다.


두 번 생각하라는 말은 이래서 중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나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기분이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주로 어떤 관계를 통해 또는 어떤 방식으로 고민을 말하고 나누는 것이 좋을까.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엄마에게서 너의 최근의 상황들을 전해 들었다. 아빠의 옛 모습처럼, 너도 소소한 난감함을 겪고 있어 보였다. 아직은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곳에서 혼자 있으며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고 마음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어디에서든 한두 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경험이다. 너 자신이자 아빠의 아들이기에, 겪어내야만 하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너의 지금의 난감함이 지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너를 난감하게 만든 사건이나 원인은 이미 지나갔다. 그것을 다시 곱씹을 필요는 없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내고, 불편한 기분은 마음에서 덜어내야 한다.


이런 상처들의 대부분은 시간이 흐르며 치유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너의 일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중심에는 언제나 너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아직은 어린 학생이지만, 아주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너의 일에 선생님이나 아빠 엄마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작다. 너를 둘러싼 어른들과 누나와 친구들에게서 조언을 구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사람은 너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마음속에 포기나 체념만 가지고 있지 않다면, 너의 노력이든 시간이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충분할 것이다.


멀리 너 혼자 두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고민과 걱정이 조금 늘었다. 그렇지만, 너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주체는 너 자신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빠는 흔들리지 않는다. 잘 이겨내고 잘 회복하길 바란다.


라이는 근육질 개가 되어 점프력이 엄청나졌다. 아빠와 공과 먹을 것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한다. 취향이 분홍색을 좋아하는지 날마다 분홍색 담요를 깔고 잠을 잔다. 오늘 오후에는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네가 없어 마음이 많이 아쉽다. 자전거를 타도, 아빠가 어젯밤 잡은 농어를 손질하는데도, 네가 없어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서울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너는, 아빠가 직접 잡아 끓인 농어 매운탕을 좋아하니 너 오기 전에 큰 놈으로 두어 마리 잡아둘 생각이다. 한 달 정도 남았구나. 마음이 훌쩍 자란 모습에 아빠의 마음이 좋을지 아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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