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16. 20181102

by 전영웅

글을 쓰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말을 배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고 무기이기도 하다. 말은 대화의 기본 수단이면서,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활용한다면 사람을 설득시키고 너의 삶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글을 써서 너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소중한 무언가를 네가 원하는 곳에 차곡차곡 쌓는 것과 같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조용히 두고 너 혼자 바라볼 수도 있다. 또는, 보기 좋은 자리에 잘 두어서 다른 사람들이 편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지, 글을 쓴다는 것은 너의 정리된 생각을 그때 그때의 모습으로 남겨두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쏟아내면 흩어져 사라지는 말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을 수 있다. 생각이 나거나 필요할 때, 꺼내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은 말과 글이 있다. 말은 조금씩 꾸준히 습득하며 훈련 중에 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멀리까지 가 공부하며 말이다. 너의 생각을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일은, 이제까지와 앞으로의 공부와 고민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훈련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글은 아직 훈련의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너는 여러 문장들을 써 왔다. 대부분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의 답으로 많은 문장들을 썼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글을 쓰는 일이다. 누군가가 시켜서 쓰는 글이 아닌, 네 스스로를 정리해서 쓰는 글 말이다. 네 스스로를 정리한다는 것은, 앞서 말했듯 너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쓰는 독후감은, 책을 읽고 느낀 네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어딘가를 여행하고 난 후 쓰는 여행기는, 네가 여행지를 다녀보며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한 글이다.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는, 하루 동안의 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이렇게, 글은 너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적당한 분량으로, 차분하게 너의 머리와 가슴으로 들어온 것들을 글로 정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말과 달리, 글은 너 자신과 직접적인, 또는 여러 사람들과의 간접적인 대화이다. 말은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즉흥적으로 꺼내야 하지만, 글은 상대방과 마주할 일 없이도 너를 스스로 바라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 글은 즉흥적이지 않아서, 좀 더 차분하고 자세하고 진지하게 너를 보여줄 수 있다. 아빠는 글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입시나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나 논술을 공부한다. 글마다 형식이라는 것이 있고, 쓰는 법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아빠는 그런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직장에 들어가려고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대학에 들어가려고 논술문을 작성했는데, 지원한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모습의 글을 써서 제출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글 뭉치들을 받은 사람은 참 기운 빠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형식이나 글 쓰는 법을 단기간에 숙제하듯이 배워서 쓴다는 점이다. 글은 그렇게 써서 좋게 쓸 수 없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그것은 일찍부터 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식을 배우고 쓰는 법을 익히라는 말이 아니다. 일찍부터 스스로 너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너를 표현하는 문장을 써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쓰다 보면, 너의 방식이라는 것이 생기고 너의 표현법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것이 너의 글이 되고, 그런 글들은 필요시에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너만의 참신하고 독특한 글로 빛날 수 있다. 형식과 표현의 방법은 네가 글을 꾸준히 써 가면서 필요하다면 조금씩 배워나가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이고,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너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은 실수를 줄이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그것은 진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생각을 정리하는 데엔 글만 써서도 안 된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글의 재료가 되어 글을 풍성하게 만들고, 생각을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너무 많은 부담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만, 사실 이런 것들은 앞으로 네가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조금 일찍, 조금씩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 된다. 짧은 문장으로 시작해서 글을 늘려보고, 요약해보는 훈련들이 너의 글을 만들어 줄 것이다. 아빠는 글에서 너의 모습과 향기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아주 오랜 후의 일이 될 것이다.


지난번 편지에도 그랬지만, 이번 편지 역시 글의 중심엔 네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네가 중심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네가 있어야 하고, 앞으로의 너의 삶은 네 스스로 중심이 되는 과정이라 생각해야 한다. 엄마 아빠는 너의 조력자일 뿐, 너를 대신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게 탄탄해지는 아들이 되기를 바란다. 요즘 아빠의 편지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것 같아 쓸수록 미안하다. 하지만, 너는 아빠의 편지들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성장할 때가 올 것이다. 당장은 부담스러워하거나 조급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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