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18. 20181116

by 전영웅

엄마를 만난 네가 무척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빠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를 이야기하는 엄마의 짧은 문자 하나는 아주 커다랗게 부풀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서울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함께 가셨으니, 너의 기쁨은 더더욱 컸을 것이다. 그 기쁨 안에는 안도와 긴장의 풀어짐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한 달이 조금 넘는 동안, 혼자서 잘 있어 주었다. 대견하다, 아들.


늦은 밤, 엄마를 만났냐는 문자를 남겨두고 아빠는 금방 잠들어버렸다. 아침이 되어서야 문자를 확인했는데, 엄마를 잘 만났고 엄마 역시 잘 도착해서 첫 밤을 잘 보냈다는 소식에 아빠도 안심이 되었다. 엄마가 아빠 옆을 떠난 건 아쉽지만, 네 옆에 엄마가 잘 도착했다는 소식은 아빠를 안도하게 했다. 혼자 있던 너의 옆에 원래 있어야 할 사람을 다시 되돌려놓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네가 지금 느끼고 즐기는 기쁨은 네게는 무척 당연한 감정이다. 그것은 다시 찾아 더 즐겁고 기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라져서 어딘가 허전했던 기분을 다시 채워서 평범한 감정을 되찾는 그런 것과 같다. 그러니, 한 달 만에 엄마를 다시 만나는 너에게 아빠는 미안해해야 함이 당연하다.


사실 아빠는 너의 그런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엄마를 다시 만나 느끼는 그 커다란 기쁨과 위안과 안도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너와 엄마의 문자를 확인하던 아침에 아빠는 문자를 들여다보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네 나이의 아빠에게 집이란 어딘가 불편하고 불안한 공간이었다. 집 안에 오래 머문다는 것은 점점 불안이 커지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어서는, 밤늦게까지 야간자습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며 집을 완전히 나오게 되었다. 아빠의 심리적 안정은 그때부터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유를 이 편지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아빠는 너의 지금의 그 기쁨이 부럽다. 너의 당연한 그것이 아빠는 잘 모르겠어서 아빠를 다시 돌아보게도 만든다. 지금은 그런 기쁨을 충분히 즐기고 누려야 한다. 너는 충분히 즐기고 누리면서, 그것이 네 또래들의 당연한 감정이자 권리임을 아빠에게 알려줘야 한다.


너의 당연한 기쁨과 즐거울 권리가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너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단촐한 한 가정을 이루고 있고, 엄마의 넘치는 사랑과 경제적 안정 속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하고 있다. 엄마 아빠와 잠깐의 헤어짐 끝에 너는 엄마를 만나 커다란 기쁨에 빠져 있다. 이 작은 사건이 네가 당연히 누려야 할 기쁨을 재확인시켜주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 친구들도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부모님이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은 친구들이나, 집안의 사정으로 우울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친구들이 있다. 원치 않는 이유나 슬픈 이유로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떨어져 살아야 하는 친구들도 있다. 저마다의 크기로 안고 있는 불행이나 우울로 상처를 만들 수밖에 없는 친구들은 생각보다 많다. 네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그런 기쁨을, 어쩔 수 없이 누리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엄마를 다시 만난 너의 기쁨이 큰 만큼, 반대편에는 그만큼 우울하고 슬픈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친구들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엄마가 너에게로 가고 나니, 욕실의 등 하나가 꺼졌다. 신기한 건, 엄마가 오랜 시간 집을 비우게 되면, 집의 어딘가에서 꼭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지난번에는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먹었었는데, 이번에는 욕실의 전등이 나갔다. 아빠는 혼자 집을 정리하면서 건담도 만들고 낚시도 하려 했는데, 갑자기 도장에서 3단 승단심사를 준비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거의 날마다 도장에 가서 연습을 해야 할 상황이다. 엄마가 가고 나니 아빠의 몸에도 살짝 문제가 생겨 두통과 소화불량이 생겼다. 이제 이틀이 지났는데 조금 불편할 정도로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 라이는 사람 없는 집이 심심한지, 마당에 여기저기 새로운 구멍을 파놓고 있었다. 겨울을 향하는 집안 공기는 점점 을씨년스러워져서, 아무래도 무언가로 채워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게 너와 엄마일 것이다. 3주 후면 제주에서 너를 만나겠구나.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집 정리, 그리고 네가 오면 함께 먹을 것들, 그리고 너와 나눌 이야기들.. 네가 집에 와서 화사하게 발산할 온기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오기 전, 우선은 그곳에서의 시간을 재밌게 즐기거라. 엄마와 서울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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