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23. 20190120

by 전영웅

아빠는 제주에 들어와 살게 된 일을 아빠의 삶에서 생긴 아주 커다란 변화라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제주에서 하고 싶은 것들, 느끼고 싶은 것들을 매우 다양하게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들은 아빠의 성격이나 성향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도 제주에서 살고 있는 것이 매우 좋다. 물론, 제주는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어 아쉽고, 이 섬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아픔도 많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아빠를 제주에서 살게 하는 힘의 하나로 존재한다.


아빠가 일하는 병원에서 아빠는 다시 새로운 진료를 준비하기 위해서 진료와 수술 참관을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 단 하루지만, 아빠가 해 왔던 수술과 진료라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어떤 새로운 방식의 수술이나 시술이 있는지, 달라진 것은 없는지 등등을 아빠가 잡아내기만 하면 된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고, 그것들은 워낙 빠르게 퍼지다 보니 서울이나 제주나 진료 수준의 차이가 크게 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떤 전문성을 좀 더 가다듬거나 학회 등의 모임이 있을 때면 가끔씩 서울을 다녀와야 한다. 아빠도, 선배가 운영하는 전문병원에 가서 참관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보고 배웠다. 이제는 아빠가 직접 진료와 수술환경을 갖추고, 하나하나 시작해야 한다.


페이스북에서 친구이자, 가끔 얼굴을 보기도 하는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삼촌이 너보다 두 살 정도 더 많은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유럽 여행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여정을 날마다 페이스북을 통해 보고 있다. 영국으로 프랑스로 독일로, 정해진 것 없이 가고 싶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보여주는 그들의 여정이 아빠는 많이 부러웠다. 아빠가 듣기로는 그 삼촌은 여행을 갑자기 생각하고 무작정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가 사는 반대편인 유럽을 돌아다니다 오겠다고 선언했다고 했다. 너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은 언젤까.. 아빠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는데, 사는 일에 얽매어버린 아빠의 모습이 느껴졌다. 아빠는 너와 함께 잠시의 그런 일탈을 위해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빠와 함께 여행에 나선 아이는 어떤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아빠도 너에게 그런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런 고민들을 했고, 그런 여행을 했다. 고민을 했다면, 실천을 하거나 하지 못하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빠는 실천을 하고 싶다. 조금 간절할 정도로 말이지.


아빠는 너에게 영어를 공부시키고자 그곳에 보냈지만, 몇 달간의 그곳 생활을 경험하며 변한 너의 모습을 보면, 이것이 꼭 언어만을 위해 보낸 건 아니었구나 깨닫게 된다. 네가 처한 환경에서 네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이, 너의 경험이자 성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조금은 힘들어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공부에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아빠가 이야기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여유롭게 네가 처한 상황들을 유연하게 즐겼으면 한다. 너무 잘할 것도, 너무 예민하게 신경을 쓸 것도 없다. 네가 서 있는 자리가 널 움직이게 할 테니 말이다. 약간의 긴장을 망각하지 않으며 네가 자연스레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너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제주에 산다는 것이 너에게는 어떤 것일지 모르겠다. 아직은 그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이 한 곳에 머무는 일은 뿌리를 내린다는 점에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과 행동을 한정된 범위 안에 가둘 수도 있다. 세상은 넓고 경험하거나 느껴야 할 일은 많다. 그런 면에서 네가 지금 그곳에 있는 경험은 너의 생각과 시야를 넓혀 줄 것이다. 아빠가 수시로 하는 여러 생각들과, 의사로서 정체되지 않으려는 노력은 한 자리에 고립되지 않겠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좀 더 많은 것들을 꾸준하게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너에게 그런 노력은 필수이자, 너의 자연스러운 열망일 수 있다. 아직은 한 곳에 머물며 안주하겠다는 게으름은 피우지 말길 당부한다. 세상은 이미 그래서는 안 될 정도로 변하기도 했다.


너를 다시 보게 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구나. 조금은 긴 시간 동안 홀로 집을 지킬 라이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대용량 급식기 급수기를 주문했다. 새로운 장난감이라고 오인해서 이빨로 물어뜯지만 않았으면 하는데 말이다. 올해 제주는 생각보다 춥지 않고 눈도 없다. 다행인 건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는 날들이다.

이전 22화아들에게 22. 2019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