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요즘 독서량이 좀 늘었다. 병원 진료시간이 오후에서 밤까지로 변경되면서, 이전과는 일상이 좀 달라지면서 시간 쓰기가 애매해졌다. 게을러지지 말자 싶어 아침 기상시간을 정해놓고 생활하다 보니, 6시경에 일어나자마자 책을 읽고 7시가 되면 현지시각으로 6 시인 그곳의 너를 깨우려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고 한 시간 정도 더 책을 읽는다. 야간진료도 환자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짬짬이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겼다. 텔레비전판 애니메이션도 하루 한 편씩 보고 있지. 아빠가 요즘 읽는 책은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언어학자인 파스칼 키냐르의 책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로마제국의 이야기와 그것을 기록한 말들의 어원을 연결시켜 의미를 해석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책이다. 얼핏 어려워 보이지만 어원을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다른 한 책은 영국의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책이다. 신기하고 다양한 인간의 신경병적 증상들을 재밌게 풀어나가는 책이다. 우리의 다양한 습성들이 실은 뇌의 기질적 문제에서 유발된 것일 수 있으며, 느끼지 못할 수준의 가벼운 신경병적 증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머릿속에서 자꾸 어떤 음악이 반복적으로 들리듯 떠오르는 현상도, 뇌의 인지영역이나 음악을 수용하는 영역의 가벼운 이상 때문일 수 있다고 말이다.
여행 중에 겪는 우연이었지만, 서점에 들르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일본에서도 대만에서도, 그리고 조호에서도 말이다. 일본과 대만 서점에서, 책을 좋아하는 아빠로서는 정말 아쉽고 한탄스러운 기분만 들었었다. 아빠가 일어나 중국어를 알았다면, 저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아빠가 관심을 가질 만한 책 두어 권은 집어 들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럴 때 언어라는 것은 참 중요하고 필요한 도구라고 절실하게 깨닫는다. 조호의 에온몰 서점은 서점이라기보다는 복합 문구점이었지만, 그래도 서점 코너에서 아빠는 재밌게 읽었던 책들의 원서들을 몇 권 발견할 수 있었다. 영어 공부한다고 조호에 머물 너를 생각하니 아빠도 공부 좀 해 볼까 싶어 재밌게 읽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원서를 집어 들었다. 지금 거실 한 켠에 읽어야 할 책으로 놓여 있는데,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네가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엔 영어를 쓸 것이다. 영어는 너를 친구들과 소통하게 해 주는 훌륭한 도구이다. 문자나 말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용하게 되는 훌륭한 도구이다. 그리고, 사용하는 도구로 다른 지역에서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요즘같이 세계 어디든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세상에서는 아주 훌륭한 능력이다. 아빠가 널 그곳에서 공부하게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도구가 도구만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언어에는 생각을 담을 때 말과 글이 된다. 망치에는 그럴 수 없어 그저 못을 박거나 빼는 도구에 머물지만, 언어에는 생각을 담아 너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말과 글이 된다. 그것은 일차로 공부하는 학생에게 필요한 과정이고, 이차로는 네가 어른으로 자란 후에 너를 정확하고 깊게 표현하는 수단으로 중요한 일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빠가 일본과 대만의 서점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단순하게 일어나 중국어를 알지 못한다는 수준에서 생기지 않았다. 일어와 중국어로 생각을 읽어낼 수 없다는 절망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어서 언어마다 생각을 표현하거나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한국어의 높임말 표현이 영어에는 거의 없어서 한국과 영어권 나라 사이에는 나이에 대한 존중 방식이 조금 다르듯 말이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의미이지만, 말과 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문화를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를 네가 말을 공부하는 내내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너는 자연스레 그 의미를 배워나가고 있을 것이다. 현지의 학교생활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영어학원보다 나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책을 같이 읽고 글을 같이 써 볼까 생각한다. 다른 세상의 말과 글을 사용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일은 내가 속한 세상의 언어와 문화의 정체성이 제대로 뿌리내리고, 표현 수단으로써의 말과 글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 아빠는 잘하는 언어는 유일하게 한국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다. 한국어로 번역된 프랑스 작곡가의 책과 영어권 신경과 의사의 책을 읽는다. 번역 과정에서 오류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언어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문화의 다름을 보게 된다. 그것이,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여행을 하며 다른 세계의 모습을 감상하고 느끼듯이, 말과 글에서 우리가 사는 이곳과는 다른 세계의 생각과 문화를 느끼고 깨닫는다. 아빠는 여전히 너에게 어려운 말들만 편지에 욱여넣고 있는 것 같다. 쓰다 보니 내용이 좀 어려워졌다. 아빠가 마음이 조금 급한 탓이겠지. 천천히 공부하다 보면, 아빠의 이 말들을 이해할 순간이 올 것이다. 더운 나라에서 건강하고, 게을러지지만 말거라. 무엇을 하던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