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27, 20200120

by 전영웅

어두운 밤, 발 밑의 파도는 사람을 홀리듯 거칠게 일렁였고, 긴장을 담아 디디고 선 한 밤의 갯바위 위에는 미친 듯 바람이 불었다. 해안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트인 공간이었지만, 바람은 마치 직경이 좁은 금속관을 통과하는 듯했다. 그 바람에 어둠 속에서 긴장한 눈이 시렸고, 발 밑 바위에 부딪힌 포말이 방수 바지를 적셨다. 루어를 던지는 것도 바람을 이겨야만 가능했다. 리듬을 타듯 거세어졌다 약해졌다 하는 맞바람 사이로 루어를 던졌다. 루어가 던져진 거리와 각도만큼의 파도 안에 농어가 들어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얀 포말과 파도에 난반사된 빛의 흔적 안에서, 파도의 두려움을 겨우 억누르고, 계속 루어를 던졌다. 아무도 없는 갯바위 위에는 어긋난 해금소리를 내는 바람과, 터지듯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가득했다. 그것들이 점점 버거워질 때 즈음, 파도 위를 거스르는 루어가 빛의 흔적 속에서 눈 가까이 보인다 싶더니 갑자기 퍽 하는 찰나의 소리와 함께 대가 휘어지고 릴에서는 찌이익 소리가 시작되었다.

C0A0A204-4F41-4272-8BCC-66D4573E094A_1_201_a.jpeg

20여 분을 싸웠다. 루어를 문 채 멀어지는 녀석과 그것을 당기려는 나 사이에서, 충분히 풀어둔 릴의 드랙과 루어대의 낭창함이 조율과 중재를 맡았다. 물이 빠진 갯바위에는 여가 곳곳에 드러났고, 나는 줄이 여에 걸리지 않도록 대를 끌거나 들었다. 녀석은 루어를 털어내려고 너울 같은 파도 사이에서 저만의 포말을 만들었다. 어둠을 유지하면서 조용히 끌어내려했지만, 녀석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고 넓게 돌아다니며 탈출을 시도했다. 어쩔 수 없이 헤드랜턴을 켜고 줄이 뻗은 수면을 체크하며, 나도 갯바위 사이를 다니며 녀석을 유도했다. 10여 미터의 갯바위 사이를 오가며 파도를 맞고 도망가려는 녀석을 조금씩 끌어들였다. 수면에 비친 랜턴 불빛 아래 은색의 몸통이 보이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긴장의 싸움을 벌이다 결국 녀석은 하얀 포말이 터지는 갯바위에 몸을 갖다 대고는 늘어졌다. 80센티 사이즈의 넙치농어였다. 녀석도 완전히 지쳤고, 나 역시 긴장이 풀어지면서 갯바위에 주저앉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사진과 손질의 마무리를 거쳐 조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49A61C1C-AA88-43A3-9426-4CB7F78A01EB_1_201_a.jpeg
891D998D-FDFA-4F07-9447-22843D4E1F74_1_201_a.jpeg

우리 집 텃밭과 마당의 것들은 이제부터 나름의 역할을 담당한다. 우선 잡아온 녀석은 필레를 떠서 냉장실에서 하루 정도 숙성하고, 머리와 등뼈는 매운탕 거리로 모아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숙성된 필레의 반은 옆가시를 제거하고 토치로 껍질을 충분히 익혀 얼음물에 열을 식히고 적당한 두께로 썰어서 회로 먹는다. 반쪽의 필레는 농어 스테이크용으로 적당한 간격으로 토막을 낸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 한겨울 바람에 살짝 마른 로즈마리와 타임을 넉넉하게 잘라 온다. 그리고, 거실의 화분에 열린 레몬나무의 레몬 하나를 따서 가져온다. 레몬은 알을 탁자에 두고 손으로 살짝 눌러 굴린다. 그다음 칼로 얇게 썬다. 로즈마리와 타임은 물에 한 번 씻은 다음, 초록의 이파리들을 훑어낸다. 봉투에 레몬과 허브 이파리들을 넣고 소금과 후추를 넣은 다음, 올리브 오일을 충분히 넣고 잘 섞는다. 거기에 토막 낸 스테이크용 농어필레를 넣은 뒤 다시 잘 섞어 밀봉해서 냉장고에 다시 하루 정도 숙성시킨다. 그렇게 보관한 농어는 3-4일 정도의 시간 안에 언제든 요리할 수 있다.

6426595A-D8F9-4D4B-AEE9-2DE6748FEF9F_1_201_a.jpeg

장인 장모님은 내가 끓여드린 생선매운탕을 좋아하신다. 나에게는 매운탕의 기본 원칙이 있다. 크기가 큰 자연산 생선 머리로 매운탕을 끓인다는 점이다. 이는 최상의 재료만이 최상의 맛을 낸다는 원칙과 일치한다. 그리고, 텃밭에서 바로 거둔 부재료들을 사용한다. 한겨울 텃밭에는 초가을 뿌린 무가 적당한 굵기로 하얗고 푸르게 땅에 박혀 있었다. 때마침 넙치농어가 잡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장인 장모님이 내려오시는 날이었다. 오시는 날 아침 출근 전, 나는 텃밭에서 적당한 크기의 무를 뽑았고, 냉동실의 매운탕거리를 꺼내어 녹였다. 커다란 냄비에 다시마 두 조각과 텃밭 무를 썰어 넣고 매운탕거리를 넣은 다음 자작하게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매운탕의 기본원칙 두 번째는 한 번 팔팔 끓이고 나면 불을 조금 줄여 오랜 시간 고아내듯 끓인다. 그러면, 커다란 골격에서 육수가 뽀얗고 진하게 우러난다. 간이나 야채는 간단히 마무리한다. 지리로도 좋지만, 얼큰한 맛을 좋아하시니 마늘 넉넉히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고춧가루와 텃밭에서 거두어 냉동실에 보관해 둔 매운 고추를 넣는다. 쑥갓 등으로 마무리하면 완성이다. 장인 장모님은 저녁으로 내가 끓여드린 매운탕을 드시고는, 남은 것을 하루 더 두어 끓여 드신다. 다음날이 되면 더 맛있다며 그러신다.

02746E6A-0C2B-419F-9C41-75A73AA8CB6D_1_201_a.jpeg
E1A83E0C-B44D-4C42-BEBF-3F99F28C0F18_1_201_a.jpeg

숙성된 농어 스테이크는 뜨거운 팬에 껍질과 살 표면을 노릇하게 익힌 다음, 그대로 오븐에 넣어 200도에서 20분 정도 익힌다. 소스는 아이올리 소스이다. 거실의 레몬 하나를 다시 따서 껍질을 필러로 벗기고, 즙을 내서 미리 보울에 조금 담아둔 마요네즈에 섞는다. 디종 머스터드도 조금 넣는다. 소금 약간과 후추 약간을 뿌리고 거품기로 잘 섞은 다음, 올리브 오일을 조금씩 넣어 양을 부풀린다. 약간 느끼한 듯 레몬의 상큼함이 살아있는 아이올리 소스는 농어 스테이크와 아주 잘 어울린다.


가끔 이렇게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나면 가슴속 어디선가 뿌듯한 기분이 올라온다. 낚시를 할 수 있는 장비와 감각이 있고, 그것으로 거둔 조과를 텃밭에서 거둔 것들과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음에 나는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바다에서의 조과가 특별함이라면, 우리 집 텃밭과 마당은 특별함을 넉넉하게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러고 보면, 텃밭의 노동으로 내가 생각의 생색을 내는 일은 멋쩍음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텃밭은 즐겁게 먹기 위함이다. 손이 호미를 오래도록 잡지 않는 한겨울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텃밭의 진정한 이유는 한겨울 제주에서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