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따뜻한 겨울이었다. 겨울이 끝나가는가 싶던 찰나에 잠깐의 한파가 불어닥쳤고, 그것 외에는 영등철이라는 이 시기에 바람도 잘 불지 않는다. 집 주변이 온통 파랗다. 까마귀 떼에 한동안 시달리던 옆 밭에도 보리 싹들이 키를 높여 땅을 푸르게 덮고 있다. 2월 끝자락의 지금 제주는, 3월이 미리 온 것 같은 청명한 봄이다.
텃밭은 마치 금단의 땅인 것처럼, 겨울을 보냈다. 텃밭에 몸을 담은 존재는 바람과, 마당의 반려견 녀석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음을 깨달은 참새들과 직박구리들 뿐이었다. 텃밭은 자체로 푸른색이 되었다. 작정하고 텃밭을 바라보지 않았던 새에, 텃밭은 풍성해졌다. 남겨둔 무와 배추들 사이로 푸른 잡초들이 키를 맞추어 땅을 뒤덮었다. 양파와 쪽파들의 줄기 끄트머리가 물에 빠져 고개만 내밀고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잡초들로 뒤덮였다. 한 달 만에 세세히 본 텃밭의 풍경이다. 그것은, 이제 곧 내가 몸을 쓸 일이 많아지겠구나 생각이 드는 풍경이었다. 나는 겨우내 뱃살이 좀 불었고, 지금까지 약간의 소화불량을 겪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텃밭에 발이 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큼직한 넙치농어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일 무를 어둠 속에서 두 번 뽑았다. 한 번은 주말에 친구들을 불러 고기를 굽는데 같이 먹으려고, 날이 가는 호미를 들고 쪼그려 앉아 잡초 사이의 고수들을 몇 뿌리 캤었다. 적당히 수분을 머금은 땅에서 이파리를 낮게 펼친 잡초들은 생기가 넘치고 아삭거리듯 줄기가 꺾였다. 그러지 않아도 춥지 않은 제주의 겨울인데 올해는 더더욱 춥지 않았으니, 녀석들에게는 최적의 생육조건이었을 것이다. 둘러보니, 그늘진 밭 구석에 퍼진 딸기가 벌써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텃밭의 무와 배추는 그대로 남았다.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심었던 것들인데, 해마다 이벤트같이 하던 김장도 작년에는 하지 못했다. 녀석들이 초겨울에 뽑히지 않고 이제까지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이삭 줍기 해 온 무와 양배추가 더 실하고 좋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식물의 격이 있다면, 이는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적어도 녀석들을 심은 주인으로서 나는, 약간의 아쉬움이 생긴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여파로 모든 것이 위축되었고, 나에게 남은 2월의 주말은 매번 바쁜 일정이 있었지만 모두 취소되었다. 갑자기 시간은 남아버렸고, 날은 봄처럼 청명하고 산뜻하다. 그간 쉬어둔 텃밭일기에 첨부하려고 텃밭에 나가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모든 풍경이 일거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삽과 호미를 들까, 잠시 생각하다가 2월은 철저하게 그대로 놓아두기로 다짐했다. 날이 더 풀리면 할 일은 어차피 산더미 같을 텐데, 한 두 주 미리 몸을 놀린다고 뭔가가 더 나아질 일도 없었다. 더구나 땅은 적절한 시기를 요하는 대상이니 말이다. 덩치가 커진 무와 배추에 꽃대가 생기기 전에 거두어서 겉절이를 해 볼까도 싶어 지고, 어차피 알이 생기지 않을 양파는 미리 거두어놓고 땅을 뒤집을까도 고민 중이다. 잡초 사이에 숨은 듯 뿌리내린, 겨우내 물을 알차게 머금은 고수들을 찾아 캐서 고기를 구울까 싶어 진다. 2월은 그저 그렇게, 불어난 뱃살과 더부룩한 속을 좀 더 느껴보는 시간으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