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에 없던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제주는 비가 와야 비가 오는, 예보보다는 실시간의 날씨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곳이다. 날이 가느다란 호미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텃밭에 들어갈까 말까.. 예보에 없던 비니 곧 그치겠지, 호미를 들고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3월의 첫날, 몸을 움직이기로 다짐한 날이었다.
따뜻했던 겨울을 만끽하며, 잡초들은 무성하게 자랐다. 그 사이에서, 양파와 쪽파가 간신히 줄기를 보이고 있었다. 가을에 뿌려주었던 거름은 잡초들이 다 먹고 자란 것 같았다. 호미 날을 땅에 얕게 박고, 한 꺼풀 벗겨내듯 잡초들을 걷어나갔다. 양파는 포기하고, 창백하게 웃자란 쪽파들은 따로 거두어 모았다. 부슬거리는 비는, 짧은 간격으로 내리다 말기를 반복했고, 덤불 같았던 이랑 두 줄을 걷어내니 허벅지가 뻐근해졌다.
텃밭 바깥쪽으로는 배추와 무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3일 전엔가, 배추를 보고 얼른 걷어서 겉절이 김치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새 꽃대가 올라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무도, 조금만 더 놔두면 꽃대가 올라올 것 같았다. 무를 얼른 뽑아서 쪽파와 함께 모아 두고, 배추는 뽑아서 텃밭 한쪽에 모아두었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잡초를 거두었다. 여기는 잡초 사이사이에 고수가 비집고 자리해 있었다. 늦여름에 누렇게 익은 고수 씨앗들을 거두어 텃밭에 아무렇게나 뿌렸었다. 그것들이 가을과 겨울 동안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것이었다. 천성이 잡초라서 그런지, 고수는 일부러 심은 것들과 달리 잡초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무성한 잡초 사이로 고수가 보일 때마다 조심스럽게 호미를 걸어 넣고, 고수를 뿌리째 거두어 모았다. 비를 맞은 고수는 짙푸름이 더해 생생했다.
음력 3월이 오기 전 까지는 천천히 조금씩 텃밭의 잡초를 거두려고 한다. 잡초가 거의 거두어지고 나면, 퇴비를 적당히 뿌리고 삽으로 땅을 뒤집을 생각이다. 텃밭은 작지만 한 사람이 다루기엔 조금 넓고, 작은 땅에서 자라난 잡초들은 생각보다 무성했다. 작정하고 덤벼들면, 사람만 골병 난다. 천천히, 조금씩, 재미 삼아하는 만큼 재미있고 간결하게 몸을 놀릴 것이다. 때마침, 멈출 줄 알았던 보슬비가 조금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네 이랑 정도를 작업한 나는 호미를 거두고 텃밭을 나왔다. 처마 밑에 의자를 놓고 라디오를 들으며 잠시 쉬었다. 사람이 마당에서 오가니 덩달아 신나다가 놀아주지 않아 시무룩하던 반려견 녀석은, 비가 많아지자 집 안으로 들어가 더 시무룩한 모습으로 누워버렸다.
앞 집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무들이 예전부터 신경 쓰였다. 사과나무 두 그루와 올리브 나무 하나, 나는 삽을 들고 올리브 나무의 뿌리 주변을 파냈다. 뿌리가 생각보다 깊지 않아 금방 파 냈지만, 삽날에 상처가 생기고 잔뿌리가 끊어지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올리브 나무를 집 입구의 적당한 자리에 옮겨 심었다. 그 자리는 하루 종일 해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다만 바람이 지나는 자리라서, 태풍이나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은 좀 되었다. 사과나무 한 그루도, 그렇게 해서 마당 돌담 앞쪽으로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옮겨 심었다.
마당의 호스를 틀어, 호미와 삽날과 흙이 잔뜩 묻은 장화를 씻었다. 비는 여전히 부슬거렸다. 이른 오후였다. 일을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해야 했지만,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은 부슬비에 이만하면 되었다는 만족이 생겼다. 아내가 김치전을 한다고 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우산이 없어도 괜찮겠지 싶어 편의점에 막걸리를 사러 집을 나섰다. 짧지만 산책 겸 해서 반려견 녀석을 데리고 갔다. 멈추지 않는 비에 시무룩하던 녀석이 리드줄을 보자마자 흥분해서 꼬리를 붕붕 휘둘렀다. 다녀오면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아내의 김치전에 막걸리 한 잔을 할 것이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으니 자고 나면 몸 여기저기가 아플 것임은 미리 각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