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36, 20200517

by 전영웅

텃밭일기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일 년 전, 나는 교토에 있었다. 교토역 부근의 어느 쇼핑몰 카페에서, 아내가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첫 텃밭일기를 써 내려갔다. 기억에, 아내와 단 둘의 교토 여행 동안, 텃밭을 주제로 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교토 여행은 때 이른 더위에 조금 힘들었고, 비슷하게 때 이른 더위를 맞은 내 텃밭과 반려견은 친한 동네 지인이 잠깐씩 들러 물을 뿌려주고 밥과 물을 챙겨주고 있었다.


어떻게 쓸 것인가.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이기에 어쩔 수 없이 어려운 고민이다. 여행에만 집중에도 아쉬운 시간들에 이 고민이 뒤섞였던 이유는 텃밭의 반복에 있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작은 텃밭은 글에 연속을 주기 어려워 보였다. 예상대로, 단지 일 년이 지났음에도 내 일기에는 일 년 전의 같은 모습들이 담기고 있다. 새롭지 않은 반복은 지루하고 의미가 없어 글을 더욱 고민스럽게 한다. 게다가 나는 농사지식이 거의 없다. 토마토와 고추의 곁순을 따 주는 정도의 수준에서 머무는 지식은, 방치해도 먹을 것은 나온다는 게으름에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마음은 급해서 절기만 넘기면 냉해를 입든 말든 간에 모종을 사다 맨 땅에 심었고, 잡초나 관리해 주는 선에서 내버려 두었다. 단순하고 게으른 텃밭에서 건져낼 글 거리는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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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의 일기는 텃밭에서 알아서 자란 초록들 덕분이었다. 뿌리만 내리면 알아서 키를 키우고 열매를 맺는 녀석들은 나를 심심하거나 게으르지 못하게 했다. 그것은 글이 되었고, 나는 기록했다. 성장은 때론 매우 빨라서, 일주일마다의 기록이 부족하기도 했다. 날씨의 변덕과 변화는 텃밭에 상처를 주고 내 마음을 답답하게 했지만, 그것은 그대로의 기록이 되었다. 10평 남짓한 텃밭은, 자체로 하나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인간의 손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고, 손이 닿아도 알아서 성장하는 것들에게는 크게 필요치 않은 정도였다. 그 모습은 경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저 원리를 내 텃밭의 작은 세계에서 깨달았다. 마당이 생기고 마당의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어 매년 한 자리에서 보게 되니, 원리는 더욱더 깊고 정교하게 다가왔다. 깨달은 원리는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것 그대로 기록이 되었다.


일 년을 채운 시점에서 나는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일 년 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이 기록은 의미를 가지는가. 의미를 가진다면 어떻게 의미를 만들 것인가.. 사실 내 텃밭은 실제로 작년과 별다르지 않다. 작년과 다른 점이라면 오이 지주대에 망을 씌웠다는 것, 이랑의 모양과 구조를 조금 다르게 해서 작물의 위치에 변화를 주었다는 것 정도다. 배움은 여전히 느리고 게을러서, 해충이나 살균 등의 목적으로 땅에 유황을 뿌린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지인의 조언을 통해서였다. 지식과 정보가 담긴 글을 쓰려고 하지는 않지만, 게으른 글은 지루하고 의미를 담기 어렵다. 나의 작은 노동과 알아서 순환하고 성장하는 텃밭은 여전히 다음 일 년의 글 거리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글은, 반복 속에서 의미를 간직할 것인지, 의미는 혹시 나 스스로 만들 수 있는지, 고민을 좀 더 얹는다. 고민 역시 일 년 전의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반복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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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적당한 비가 내렸다. 비를 맞은 작물들은 본격적으로 줄기와 키를 늘리기 시작했다. 오이의 덩굴손이 설치해 준 망에 닿으려 한다. 수박과 호박, 물외는 이랑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고추의 곁순을 따 주고 지주대에 묶은 끈을 조금 올려 주었다. 포트에서 발아한 바질을 남겨둔 이랑에 옮겨 심었다. 지인이 준 공심채 씨앗을 싹이 나지 않은 콩 자리에 파종했다. 텃밭은 벌써 잡초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나는 호미를 쥐고 이랑 사이를 앉아 다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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