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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Aug 03. 2020

202007 추자도 여행기

  추자는 안개의 섬이었다.  배가 속력을 줄이며 상추자 항구에 접근할 때까지, 창밖으로 짙은 안개 속 섬들과 방파제가 흔적같이 지나갔다.  추자여행 첫 날은 안개였다.  바다는 잔잔하고 하늘은 드높게 맑았던 제주에서부터, 추자의 안개는 뱃시간을 지연시켰다.  예약해 둔 후포의 민박집 주인 차를 타고 작은 언덕을 넘어 맞은편 바닷가로 건너가는 일도, 안개 속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날은 무척 더웠다.  안개가 좋았던 단 한가지는 햇볕을 가려준다는 점이었다.  그것 외엔, 오전부터 무척 덥고 후텁지근했다.  거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단층 민박집의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우리는 에어컨부터 작동시켰다. 


  코로나19의 시대에 휴가는 기대나 흥이 덜했다.  그래도 휴가는 가야 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일에 의미를 진득하게 붙이지 못하는 나에겐 어쨌든 필요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진 몸이 일상의 반복을 벗어나면 금세 피곤해짐을, 이제는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도 무언가는 필요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에서 그 무언가는 분명 해외로의 탈출같은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의 선택은 매우 좁아졌다.  육지를 나갈까 싶다가도 한국식 방역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낙인과 의심에의 불안을 안고 싶지 않아, 섬에서 보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제주에서 가 보지 못한 섬이 있었다.  추자도였다.  아내와 함께 일박 이일의 일정으로 추자도로 건너왔다.  아내는 짐을 챙기고, 나는 낚싯대를 챙겼다. 

  제주를 떠나 북쪽으로 배를 타고 만나는 섬들은 제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낚시할 때에도 느꼈지만, 제주와 제일 가까운 관탈섬만 보아도 화산섬과는 다른, 육지의 암반과 맥이 닿아있는 느낌의 섬이다.  추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산 위의 바위도, 길가의 돌들도, 황토빛의 육지암반을 바탕으로 다양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제주사투리가 아닌 전라도 사투리에 가까운 어투로 말했다.  행정구역 상으로 어떻게 제주에 편입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곳은 제주보다는 전라도에 가까웠다.  식사 잘 나오기로 유명한 민박집에서 받은 점심 첫 상 역시 전라도 음식이었다.  어린 참돔인 상사리구이와 돼지고기 편육을 중심으로 전라도식으로 양념을 넉넉하게 무친 겉절이 김치와 양념게장에 나는 첫 끼부터 과식을 하고 말았다.  


  여전히 밖은 안개속이었고, 날은 더웠다.  땀이 옷에 배이며 시간이 지나니 쉰 냄새를 풍겼다.  섬을 휘감는 올레길 코스와 산책길 코스가 지도 위로 어지럽게 표시되어 있었지만, 더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섬인데, 걷기를 포기하니 차 없이는 어딜 생각해도 부담스러웠다.  제주 역시 섬이지만, 충분한 생활권을 형성한 공간을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섬이라 규정하긴 어렵다.  그것은 제주와 추자의 차이를 예로 들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섬은, 인간의 편리와 자본이 일구어 낸 도구와 문명이, 원래였을 지 모를 삶의 모습과 충돌하거나 불일치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당장의 우리의 처지가 그러했다.  날씨를 핑계로 걷기를 포기하니 당장에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다.  바다가 움푹 들어온 후포 바닷가에는 갯바람에 녹이 슬고 도색이 들뜬 차가 서 있었다.  오토바이를 빌릴까 했지만, 3인승은 없었다.  항구 주변으로 왕복 2차선이 간신히 되는 도로 외에는 좁다랗고 울퉁불퉁한 시멘트 도로를 외제차부터 동네 녹슬고 낡은 트럭까지 아무렇지 않게 다녔다.  이 섬에 적응하여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아닌 우리는, 그 한복판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행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꺾이고 나니, 여기서 우리는 무얼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남았다.  그림자없이, 이 섬 바닷가 한자락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여행의 의미같은 것이 아니라, 섬 안에서의 존재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그러다, 작정하고 상추자항으로 걸어나갔다.  작정까지라야 할 것 없이 걸어서 십 분인데, 작은 언덕길을 넘는 그 하찮음이 무더위때문에 벅찼다.  

  항구의 작은 까페에 들어가서 우선 시원한 아이스커피부터 마셨다.  가만있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가 15분 후에 상추자 여객선 대합실 앞으로 온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면 웬만한 풍경은 구경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실제로 그러했지만, 걸으며 보는 것과 달리며 보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버스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섬은 상추자와 하추자를 오가며 종점에서 종점까지, 왕복을 했는데 한 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그 작음과 아담함이 무척 가볍게 느껴졌는데, 그것이 무더위 때문에 버거움으로 다가왔다.  습기 가득한 무더위는 나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안개가 낮게 깔린 섬에서, 숙소로 걸어 돌아와 가깝게 산책을 했다.  나바론 하늘길이 바로 옆이었다.  무기력에 빠졌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는 의지는 나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땀으로 상의가 다 젖어버렸다.  바다에서 수직암벽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지만, 안개와 습기가 한가득인 바람은 옷을 말리지는 못했다.  중학 1학년이지만 옷은 내 옷 사이즈를 같이 입는 아들녀석은 절벽 중턱에 주저앉아 울상을 지었다.  푸른 산등성이 맞은편이 바다위에 솟은 수직절벽일 거라는 상상이 힘들었다.  그 상상을 직접 확인하려는데, 짙은 안개는 확인을 어렴풋하게 훼방놓았다.  그럼에도 아담한 이 섬 안에 웅장함이 숨어있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 무기력을 이긴 무모함에 감사했다.  다리떨릴 때 말고 가슴떨릴 때 여행하라는 말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내려와서는 후표해변에 있는 후포갤러리의 에어컨 냉기에 몸을 말렸다.  사진작가 주인의 친절한 환대가 감사했다.

  추자엔 농어 시즌이 시작되었다.  식사 잘 나오기로 유명한 민박집 손님의 반 이상은 낚시손님이었다.  낚시에 광적으로 빠진 중년 이상의 남성들 특유의 화통삶아먹은 목소리는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릴 수 밖에 없다.  저녁상에는 낮에 주인아저씨가 잠깐 낚시해서 잡은 농어회가 굴비구이와 함께 올랐다.  다음날이면 횡간도로 들어가 낚시를 할 거라는 한 남자의 낚시이야기는 열 다섯여명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거실 전체를 압도했다.  나는 식사를 얼른 마친 뒤, 껄껄거리는 듯한 그 남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낚시장비를 챙겨서 후포바다로 나왔다.  농어 시즌의 시작이었지만, 무늬오징어도 슬슬 나온다는 민박집 주인 아저씨의 설명이 있었다.  나는 에깅대에 에기를 달아 갯바위 위에서 열심히 던졌다.  


  3년 만의 무늬오징어 낚시였다.  아니, 간간히 두어 번은 한 것 같은데, 무늬오징어를 낚은 건 3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추자는 낚시의 메카였지만, 처음 서 보는 포인트에서 오랜만에 던지는 에기에 무늬가 걸려 줄 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잘 나오는 것이 아닌,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는 주민의 이야기에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해 볼 뿐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마치 어둠을 따라 안개도 내리듯 눈 앞은 습한 안개가 깔려 시야를 급격하게 가렸다.  모기떼가 다리를 탐했고, 밀물에 갯바위를 오르는 파도를 의식했다.  만조가 밤 9시였다.  열심히 하던 중에, 만조 한 시간을 남겨두고 갑자기 대가 묵직했다.  해초에 걸린걸까 싶어 대를 당겼더니 무언가가 묵직하게 끌려왔다.  왔구나! 싶어 서서히 대를 당기니 녀석이 치고 나갔다.  몇 번의 기싸움을 하다가 수면 위로 허우적대는 다리를 보인 녀석은 먹물을 서너번 쏘면서 다가왔다.  포인트 옆의 완만한 갯바위까지 끌어내니 700-800 그램 정도의 적당한 크기의 무늬오징어였다.  그리고, 첫 포인트에서 3년 만에 낚아올린 무늬오징어였다.  기쁘기보다는 만족스러웠다.  계획했던 대로, 추자에서 무늬오징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갯바위 작게 물고인 곳에 녀석을 놓고 한 시간을 더 던졌지만, 더 이상 입질을 보여주지 않았다.  잡은 녀석은 손질해서 가져가니 주인아주머니가 먹기 좋게 썰어서 초장과 함께 내주셨다.  반은 우리 가족이 먹고, 반을 다시 내어드렸다.  농어보다 반기는 표정이었다.  결국 손질된 무늬오징어 반마리 분량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거실에서 주인집 가족들의 소주안주가 되었다.  그리고, 불콰해진 주인아저씨의 목청높은 수다가 자정넘어까지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손질된 무늬오징어를 먹고 나와 아내는 밖으로 나왔다.  밤마실겸 해서 항구로 걸어나왔다.  항구는 안개 속에서 고즈넉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낮은 산으로 감싸인 너른 공간에 안개가 뒤덮이니, 맞은편 작은 가게 앞에 모인 남자 몇의 술취한 목소리가 항구 전체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사람도 얼마 보이지 않고 가로등 불빛도 나지막한 항구를 둘이 걸어 편의점에서 맥주와 음료를 사들고 광장 한쪽 돌 테이블에 앉았다.  맞은편 남자들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하추자 쪽에서 다가오는 차 불빛은 안개 속에서 흐릿하다가 모퉁이를 돌아 안개 아래로 들어오며 빛이 분명해졌다.  바다는 장판처점 잔잔했고, 멀리 안개 아래로 깔린 몇 개의 찌불빛이 위아래로 오갔다.  득달같은 모기들을 쫓으며, 맥주를 마시며, 고즈넉한 풍경을 은근 자랑하고 싶어 그 시간에 자주 듣는 라디오 방송을 작게 틀고 사연을 보냈다.  시간을 조금 보내다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누워 잠들려니 그제서야 사연이 소개되고 있었다.  서울 사는 지인이 라디오를 같이 듣고 있었는지 바로 문자를 보내 추자도냐고 물어왔다.  마찬가지로 낚시 좋아하는 지인에게, 아까 밤에 잡은 무늬오징어 사진을 보내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바닥이 딱딱하여 쉽게 잠들지 못하는 잠을 피곤을 핑계로 억지로 청했다.  동이 틀 때까지 자다깨다 반복했다. 

  아침식사가 빨랐다.  아침 7시에, 상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푸짐했고, 숙박객 15명 정도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시작했다.  아침배로 횡간도로 건너간다는 어제의 낚시꾼 아저씨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면서도 목소리의 걸걸함은 변하지 않았다.  안개는 어제보다 걷혔고 더위는 아침부터 여전하니, 날은 어제보다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아침의 선선함을 기회삼아, 봉글레산 정상쪽으로 짧은 산책을 했다.  능선과 풍경의 색상은 완만한 남도의 어딘가였고, 어디든 약간 솟은 능선을 넘으면 바로 바다가 펼쳐졌다.  이 아담한 공간이 나는 살짝 답답하게 느껴졌다.  더위에 무기력해진 한 여행객의 길잃은 체념때문이 아니었다.  그림자를 둘 생각을 하니 곧바로 다가오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랬다.  여행을 여행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순간순간을 즐기되, 한 편으로는 즐기는 공간마다 그림자를 두는 상상을 했다.  5월의 화창한 어느날, 교토의 은각사 앞을 걸어나갈 때에도 한 달 살기라도 해 볼까 상상했었다.  조호르바루의 처남네에 머물며 돌아다닐 때에도, 내가 무더운 그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수시로 했었다.  평소에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역마살이 내 안에서 때마다 불쑥 튀어나오는 것일까?  여행자로서는 심각한 단점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정주의 개념으로 제주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고 있다.  그리고, 불편할 것 없이 많은 것들이 갖추어져 있지만 한정된 공간인 제주에, 삶의 어떤 기준마저 설정된 듯 하다.  나는 안개사이로 쏟아지기 시작한 햇살을 작은 소로길 나무그늘 아래로 피하며, 지금 내가 서 있는 공간에 답답함을 느꼈다.  올레길을 걷거나 낚시를 할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 섬에 마음을 주기 어렵겠구나..  나이들어 경직되고 좁아진 마음처럼 느껴져서 약간 서글픔도 묻어나왔다.

  민박집에 숙박비를 지불하고 주인아저씨의 차를 타고 항구로 나왔다.  추자면사무소 여행객 쉼터에 짐을 잠시 맡기고 항구를 돌아다녔다.  아침을 일찍 먹으니 점심생각이 나서 식당에 들어가 모듬물회를 주문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의 식사 수준이 웬만한 식당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둘째는, 물회의 스타일이 제주와 다르다는 점이었다.  제주는 육수 자체를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어 만드는데, 추자에서는 맑은 육수에 이런저런 야채를 많이 다져 넣고 횟감을 고추장 베이스로 직접 양념해서 올렸다.  들어가는 야채의 종류와 양념이 다르니 제주식 물회와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다.  

  예약했던 배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어졌다.  원래 성수기에는 오후 두 번의 배가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한 번으로 줄었다고 했다.  늘어난 한 시간은 그것 그대로 아무일 없이 추자항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까페에 들어가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앉아 이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바깥은 점점 화창해졌고 어제보다는 좀 덜 더운 느낌이었으나 여전히 더웠다.  창밖으로는 섬사람들의 분주함과 여행객들의 지침과 느긋함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보였다.  오후의 대부분을 까페에서 보내고 배시간이 다 되어 추자 우체국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면사무소에서 짐을 찾아 터미널로 향했다.  남은 한 시간은 아들에게 루어낚시를 가르쳐주었다.  줄 끝에 미노우를 달고 항구 안으로 던졌다.  물빠진 한낮 오후의 항구 안쪽에서 무언가가 잡힐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내심 기대했다.  나 역시 기대에 부응할 만한 눈먼 물고기 한 마리 나와주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터미널에서 땀을 식힌 후 우리는 막 도착한 제주행 배에 몸을 실었다.  안개가 걷힌 추자항이 왠지 포근해 보였다.  안개가 없었다면, 더위를 이겨가며 나는 이 섬에 마음을 좀 더 줄 수 있었을까?  습관같은 미련이 배에 오르는 발걸음 뒤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서 시간을 지켜 어김없이 멀어졌고, 나는 흘러내린 미련따위와는 상관없이 물리적으로 추자섬과 멀어졌다.  항구에 흔적처럼 남긴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을 지는, 날이 조금 선선해진 다음에 와서 확인해보려 한다.  트레킹화를 신고 오던지, 낚시 장비를 잔뜩 가지고 오던지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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