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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12. 2020

202001, 가오슝 타이중 여행기, 여섯 번째.

  2003년 번역 발간될 당시 대만 연구원 대만사연구소주비처 부연구원이었던 주완요의 책 ‘대만’은 대만의 역사를 한족과 대만 원주민과의 갈등과 교류로 설명한다.  그리고, 대만의 정체성의 근본은 한족과 원주민의 혼합으로 설명한다.  동시에, 대만의 현재를 정체성의 혼란으로 설명한다.  국제적 입지, 국내적 정치와 사상, 그 안에서 드러나는 대만인들의 사고..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서술이니 급변하는 현대사 안에서는 조금 오래된 이야기이며, 중립을 최대한 견지했다지만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사상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짧게 두어 번 대만을 다녀온 여행자의 느낌으로는, 그의 글의 많은 부분에 동의한다.  그리고, 중립적이고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는 그의 대만 역사는 일제에서 해방과 더불어 서둘러 마무리된다.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오면, 그곳의 역사를 여행 전이나 후로 책을 통해 공부한다.  대만으로 첫 여행을 떠나기 전, 아내는 여행 일정과 여행정보를 알아보았고, 나는 모른 척 대만의 역사를 공부했다.  검색창에 수없이 나열된 대만 여행정보서 사이에 거의 유일하다 싶은 책이었다.  대만에 대해 조금 알고 간다는 마음이었지만, 대만을 돌아다니면서 의문만 더 생겼다.  그 의문들은 대체로, 주완요가 말했던 정체성의 혼란과 맥이 닿아 있었다.  

  대만에 반일감정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해방 이후 장제스의 통치가 일제 강점기보다 훨씬 엄혹했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의견이 있다.  주완요는 해방을 대만인의 입장에서 승리도 패배도 아닌 애매모호한 심경의 발현이었다고 ‘애매모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후의 역사를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이라며 입을 닫는다.  해방 이후 대만의 역사는,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주의 4.3과 비슷하다 평가되는 2.28 사건과, 1979년 독재를 종식시킨 미려도 사건 정도가 내가 찾아볼 수 있는 그들의 역사였다.  그들에게 어째서 반일감정이 별로 없는가는, 내가 대만에 살면서 그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찾아서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감정의 파시즘에 쉽게 휘말리는 남한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타인의 의문이자 시선이다.  확실히, 대만 사회에서는 반일감정뿐만 아니라, 그들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어떤 반감도 볼 수 없었다.  반일감정만 두고 말하자면, 대만은 반일은커녕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이 커 보였다.  지하철 공익 안내 포스터에는 일본풍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한문과 뒤섞여 있었다.  공공기관의 한문체나 디자인은 고즈넉한 중국의 느낌보다는 깔끔하고 귀여운 일본의 느낌이 더 배어 있었다.  일본 제품과 음식점은 성황이었고, 바이크 헬멧에는 욱일승천기의 문양이 버젓이 각인되어 있었다.  한류의 영향 때문인지, 곳곳에 한국 상품점이나 음식점이 어렵지 않게 보였다.  그러나, 느낌은 오래도록 뿌리 박힌 일본 문물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겨우 자리 잡은 틈새시장의 신선함이었다. 

  미려도 사건이라는 역사적 한 획을 그을만한 현대사의 굴곡을 경험하고도, 가오슝의 중심역인 미려도 역의 영문명이 Formosa Boulevard라는 사실은 반일감정의 희박함 만큼 생소한 모습이었다.  ‘메이리따오’ 대신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절의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식민지 시절의 과거를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서인지, 아니면 여전한 정치적 의도 때문인 지는 알 수 없다.  아니면, 사상적으로 예민한 제삼자의 호들갑스러운 생각 때문이거나..  동시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의 청산이 현재의 관광자원과 문화유산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했다.  곳곳에 남은 과거 식민 통치 시절의 잔재들이, 나의 대만 여행의 많은 부분에 기여했다.  세상은 변하고 여전한 것들은 변한 세상만큼 의미를 달리했다.  생각해보면, 새마을 운동과 역사적 민족적 자존심으로 사라진 우리의 수많은 과거들, 그리고 적산가옥같이 그저 현재의 가난의 상징이 되어버린 우리의 시간의 잔재들은 의미가 변한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고민하게 된다.  여행이 대세가 된 세상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대만의 현재와 남한의 현재는 실리와 자존의 관점에서 어떻게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여행의 관점을 제외하고 바라보자면, 대만은 정체성의 문제에서 언제나 의문을 주는 나라였다.  장제스의 장물들로 가득 채우고 그것이 그네들의 역사라 말하는 것 같은 대만 고궁박물원, 한족의 문화와 언제나 별개로 존재하는 원주민의 역사관, 폴리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 인도네시아까지 이어지는 해양 문화권 원주민 역사는 생소하다.  큰 도시마다 있는 2.28 평화공원이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장제스 통치 시절의 근현대사는 우리나라 개발독재의 역사를 연상케 하는 어떤 의문을 품게 한다.  가려진 역사는, 공산정권에 대항한 자유세력의 어쩔 수 없는 폭압성, 다르지만 결국 같은 정치권력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대만을 한 인간의 삶으로 비유하자면, 사춘기 시절의 혼란과 방황에 휩싸인 정체성에의 몸부림, 나는 그들을 그렇게 느꼈다.  

  오전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타이중 고속철도역으로 갔다.  한 시간이 채 안되어 타오위안 역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있는 글로리아 아웃렛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동생네를 먼저 공항으로 보냈다.  우리에게 주어진 3시간 남짓의 여유를 공항에서 보내기는 싫었다.  커피 한 잔을 하고, 하릴없이 아웃렛을 돌아다녔다.  꽤 넓은 공간에서는 설명절의 분위기와 작은 행사들이 넘치고 있었다.  불가항력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 소식에 저마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우리는 분무용 손소독제를 수시로 뿌리고 다녔다.  공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로 넘치는 공항은 마스크와 직원들의 긴장이 교차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 우리는 타오위안 공항에서 이륙하여 제주로 향했다.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아내는 대만에 다시 여행 올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나 역시, 큰 아쉬움이 없는 만큼,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크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여행 내내 간직했던 의문들을 풀고 이해하게 된다면, 그땐 내가 대만에 정을 두고 오랜 시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전에, 혹여 대만에 다시 온다면, 그땐 타이난을 제대로 돌아보며 대만의 역사를 다시 공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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