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이 조금 허름한 정도겠지 생각했다. 택시의 조수석 문을 여는 순간 몸이 자동으로 멈칫했다. 운전석의 젊은 얼굴의 기사는 무심한 표정으로 탈 것인지 말 것인지 바라보았다. 할 수 없이 택시에 올랐다. 조금 지저분한 것 정도는 무심하게 받아넘기는 내가, 지금 조수석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등받이에 등을 살짝 떼고 달리는 택시 안에서 버티고 있다. 실내에는 쿰쿰하고 매캐한 향 냄새가 났고, 조수석 바닥 안쪽으로는 검은 비닐봉지가 손잡이 한쪽이 기어봉에 걸린 채로 입구가 열려 있었는데, 그 안으로는 지저분한 쓰레기가 가득했다. 바닥에도 더러운 천조각 같은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차 내부의 전면은 부식된 것처럼 코팅이 벗겨지고 먼지가 가득했다. 전면 유리 아래 공간으로는 융모 카펫이 깔려 있는데, 먼지를 뒤집어쓴 지 오래되어 검었다. 한 번 쓰다듬으면 먼지가 부옇게 오를 것 같았다. 그 위로, 역시 먼지를 뒤집어쓴 관우가 정면을 바라보며 곧바로 칼을 꺼내들 것 같이 서 있었다.
기사는 젊은 친구였다. 우리나라 개량한복 같은 그네들의 개량 옷을 입었는데, 두어 달은 빨지 않은 것 같았다. 실내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유선 이어폰을 두 귀에 꽂은 기사가 운전하면서 몸을 그루비(?)하게 흔들었다. 그런데, 몸짓과 내 귀에 들어오는 팝송의 박자가 안 맞는 걸로 봐서는, 그 뻔뻔한 기사는 다른 노래를 듣고 있는 듯했다. 타이중 기차역에서 춘수당까지, 다행히 먼 거리는 아니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잔돈도 꺼림칙한 기분으로 받아 들고는 탈출하듯 택시에서 내렸다. 타이중 기차역 앞의 낡고 어두운 풍경과 더불어,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각인된 타이중의 첫인상이었다.
가오슝에서 아침 일찍 고속철을 타고 타이중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타이중 기차역에서 내렸다. 예약한 호텔은 기차역 바로 앞에 있었는데, 한국의 서울역 뒤편의 낡고 어두운 모습보다 좀 더 낡아 보이는 거리 풍경과 더불어 낡고 오래된 호텔이었다. 여정과 체크인을 마친 아내는 오전에 벌어진 일련의 인상 끝에 ‘타이중에 하루 머물기를 잘한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돌아다녀 본 것은 아니니 타이중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말자’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는데, 흐리고 찬바람과 비가 흩뿌리는 날씨 속에서 잡아 탄 택시는, 타이중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내 인생에서 경험한 가장 지저분한 택시였다.
타이중은 일단 먹거리 투어로 시작했다. 조카가 생각해 둔 장소들이 걸어서 부담 없을 정도로 몰려 있었다. 춘수당의 버블티와 우육면을 먹었고, 궁원안과를 둘러본 다음 제4신용합작사에서 와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홍루이젠 샌드위치의 본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모여있기에 단출했던 점심시간의 맛집 투어는 일찍 마무리되었다.
천천히 걸어 타이중 문화창의산업단지에 갔다. 도시마다 있는 문화특구는 대만 여행에서 반드시 가보게 되는 곳인데, 타이중은 조금 색달랐다. 우리가 가는 그 날은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입구부터 옛날 인형과 장난감, 필름 카메라, 그리고 음반과 문방용품들이 부스마다 종류별로 열렸다. 부스마다 진열된 제품들의 모습은 자체만으로도 깊이와 시간이 느껴졌다. 뭔가 제대로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음반 부스에 가서 혹시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CD가 있나 싶어 둘러보았는데 Queen의 A Night At The Opera 앨범이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우리나라 돈으로 4만 원 정도를 부른다. 살까 싶다가 아내의 제지로 내려놓아야만 했다. 아들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릴 적 쓰던 오래된 샤프들이 빼곡히 진열된 부스에서 금색의 오래되어 보이는 샤프를 하나 집어 들더니 사 달란다. 하나 사 줄까 싶어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주인은 대뜸 ‘Are you pencil collector?’라고 되묻는다. 아니라고 했더니 가격표를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8만 원이란다. 30년 전에 오백 원 정도 했을 법한 물건이었다. 그러니까, 이 벼룩시장은 마니아나 덕질을 위한 알뜰 공간이었던 것이다.
먹거리도 있었고, 경극 공연도 있었고, 코스프레 마니아들의 촬영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특이한 건 북한군의 물건을 수집해서 그것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적당한 규모의 공간 안에 나름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많았다. 타이중의 유일한 호감이라면 문화산업단지였다.
다시 숙소로 걸어 들어와 다음 일정을 상의했다. 구글 지도에도 선명한 토토로 버스정류장을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날은 점점 저물고 있었고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숙소에서 토토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는 일본 음식점이 많이 보였고, 타이중 역에서 멀어질수록 도로 풍경은 허름하고 한산해졌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도 없고 건널목도 통제되지 않는 길을 20여 분 걸어가니 해는 완전히 저물었다. 나는 토토로 버스정류장이라 해서, 시내버스정류장 하나를 지브리 캐릭터로 꾸며놓은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은 골목 같은 소로 한편에 벽화 전시물처럼 꾸며놓은 곳이었고, 실제 버스정류장은 아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 자리 옆에 토토로가 같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옆에는 정체불명의 가게 같은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유추해보니 이 가게 주인의 마니아적 취미로 토토로 버스정류장이 만들어진 듯했다. 공간은 열려있어서 들어가 보니, 역시 지브리 스타일의 약간 음산한 마니아적 공간이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딘타이펑으로 향하는 여정 역시 택시에 대한 불만을 쌓는 과정이었다. 과속과 난폭운전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기사 옆에서, 나는 가만히 있어야 했다. 말이 통한다면 좀 천천히 가라고 해 주고 싶을 정도로 택시는 거칠었다. 풍경도 거칠게 바뀌었다. 높은 현대식 빌딩이 많고, 예술작품 같은 버스정류장이 곳곳에 보이는 신시가지였다. 해 있을 때 돌아본 타이중과 해질 때 돌아보는 타이중이 같은 타이중인가 싶을 정도로 풍경은 급격하게 변했다. 명품관이 즐비한 호텔 지하의 딘타이펑은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 했고, 그 옆의 팀호완은 20분 정도라 했다. 우리는 팀호완에서 딤섬을 먹고 나왔다. 다시 택시를 타고 펑지아 야시장.. 팀호완에서 채우지 못한 아쉬움을 펑지아 야시장에서 채우려고 갔지만, 택시로 가는 길은 밀렸고, 내려서 바라본 풍경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시장 진입조차도 생각할 수 없었다. 뭐하나 마음 가는 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만 가득해졌다. 간신히 한 블록 정도 밀려다니며 구경하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옆의 까르푸와 편의점에서 맥주와 먹을 것들을 사서는 숙소에서 밤 시간을 보냈다. 동생네와 방을 붙여 편하게 오가며 술 한 잔 하니, 타이중 여정의 제일 편안한 시간이었다.
단 하루의 일정이었다. 그리고, 타이중의 인상은 단 하루의 일정 안에서 단정에 가깝게 결론지어졌는데, 그것은 여행자의 단 하루로 그 도시를 알 수 없다는 진리를 넘어서는 화학반응이었다. 우리에게 타이중은 그렇게 좋지 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래서, 다음날 동생네와 4시간 정도의 비행기 탑승 시간차를 타이중에서 보내려 했던 계획을 변경했다. 그냥, 오전 일찍 다 같이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인상의 변화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가졌던 나도 이 계획에 토를 달지 않았다. 타이중은 좋지 않은 인상을 넘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