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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07. 2020

202001, 가오슝 타이중 여행기, 네 번째.

  부쩍 잠이 많아진 아들 녀석은 아침 내내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조식을 먹고 와도,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해도,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깨워도 잠에서 취한 녀석은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동생네에게 좀 늦겠다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아들 녀석이 일어날 때까지 여유를 가졌고, 동생네는 어제 우리가 다녀온 영국 영사관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겨우 일어난 녀석을 준비시키고 호텔에서 나와 경전철로 두 정거장인 시쯔완 역으로 가서 다시 걸었다.  오늘은 치진 섬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선착장까지 천천히 걸으며, 영국 영사관을 구경 중인 동생네가 선착장으로 올 적당한 시간을 맞추었다.  정오에 가까운 늦은 오전, 우리는 선착장에서 만나 치진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다. 

  치진 섬은 가오슝의 동쪽 면을 길게 가로막는 섬이다.  남쪽으로 가오슝 공항과 가까운 곳에서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섬이 남북으로 길어서 여행자들은 주로 배로 드나들 수 있는 북쪽 항구를 이용한다.  배는 두 세대가 쉴 새 없이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 날랐고, 배마다 가득 찰 만큼 엄청난 사람들이 섬으로 드나들었다.  도선 시간은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들어오는 풍경은 너무도 익숙했다.  한자 간판과 중국말이 뒤섞인 것 말고는, 영락없는 한국 해변 관광지였다.  여기저기서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었고, 자전거를 빌린 사람들은 둘에서 네 명씩 타고 돌아다녔다.  자전거와 차와 인파가 뒤섞인 그 북적이는 길로 들어서려니 익숙하면서도 부담스러운 기분을 이길 수가 없었다.  선착장에서 해변까지 이어지는 시장길을 뚫고 들어가 해변을 구경하고, 다시 인파로 들어가 자전거 두 대를 빌린 다음, 우리도 여느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드라이브를 즐겼다.  치친 섬은 자전거 드라이브, 거의 공식이었다.  설명도 중국어와 한글로 병용이 되어 있을 만큼 한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자전거는 전기자전거였다.  

  유명 포인트들을 지나는  좁다란 자전거길을 달리고 돌아와 해변에서 과자와 게 튀김, 오징어튀김 등을 먹었다.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곳곳에 포진한 방어 진지 와 터널 등등을 구경하고 나니, 두어 시간이 지나 있었다.  더 이상 섬 안에서 할 만한 것을 떠올리지 못했고, 우리는 좀 더 시간을 보낸 뒤 예약한 두 시간에 맞춰 자전거를 반납했다.  해변의 바에서 비싼 맥주 한 병을 마시며 시간을 좀 더 보낸 뒤, 우리는 이른 오후에 섬에서 나왔다.  명절 연휴의 인파를 생각하면 조금 덜 붐빌 때 서둘러 나오는 방법도 괜찮아 보였다.  


  여유를 가지고 섬 안에 더 머물다 나올 수도 있었다.  해변에는 모래사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이 든 여행자의 소소한 귀차니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는 곳마다 익숙한 풍경과 방식들에 무료함을 느낀 것일까..  익숙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행지에서 느끼는 보편적이고 통상적인 인상은 한국이나 대만이나 같았다.  단지, 새로운 곳에 대한 작은 기대로 가서, 풍경의 다름 말고는 ‘아, 여기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일종의 확인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었다.  ‘확인 절차의 과정’은 여행의 한 트렌드가 되었다.  수많은 사이트에서 습득한 정보를 가지고, ‘나도 직접 가서 보고 경험했다’며 자기만족을 공유한다.  관광지로의 여행은 대부분 이렇다.  오랜 시간 진득하게 머물며, 깊은 공감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을 해 보지 못한 나는, 확인 절차 같은 여행에 빠르게 물려가고 있었다.    

  섬에서 나와 선착장 앞 빙수 거리에서 빙수를 먹고, 다시 항원 우육면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애매했다.  예정대로라면 치진 섬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허 강변을 하릴없이 산책하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풍경을 보면서, 거리는 좀 멀어도 용호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여느 여행자들처럼, 용의 입으로 들어가서 호랑이의 입으로 나왔고, 시장통 같은 주변 거리를 걷다가 택시를 타고 다시 루이허 야시장으로 갔다.  세상은 온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끄러웠고, 휴가 중이지만 병원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실장에게 문자로 상황을 물어보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이 뒤섞이고, 사람이 몰리는 곳은 대책 없이 몰리는 대만에서, 휴가를 보내면서도 나를 걱정해야 했고, 병원의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개인위생에 신경 쓰고 안내문을 병원 문 앞에 붙이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게 튀김과 작은 새우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사람이 더욱 많아진 루이허 야시장의 도로 중앙에 놓인 작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우리는 노점에서 사 온 것들을 놓고 먹었다.  석과를 먹었고, 만두를 먹었다.  나는 며칠 전 노점과 다른 집에서 취두부를 사서 먹었다.  덩치 좋은 새우튀김을 다시 먹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같이 마신 타이완 맥주는 가벼운 듯하면서도 음식과 잘 어울렸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젊디 젊은 조카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제 나와 매제는 하루 동안의 여행 피로를 이른 밤부터 이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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