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대만에서의 1월의 비는, 어제의 늦봄 같던 더위를 비 오는 늦가을의 을씨년스러움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비 속에서 우리는 숙소를 옮겼다. 보얼 예술특구 내의 한 호텔까지 택시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보얼 예술 특구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쓰이던 부두 창고들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면서 황폐해지자,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고, 예술 창작과 실생활의 접목이라는 목표를 두고 공간을 조성했다고 한다. 실제 분위기도 낡고 거대한 건물들이 모던한 방식으로 개조되고 꾸며지면서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줄지어 서 있는 창고와, 부두의 널따란 공터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창고들 사이로 최신식의 경전철이 20세기 초반의 기차 경종 소리를 내면서 지나다녔다. 가오슝 시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자체는 낡았지만, 좀 더 젊고 좀 더 밝은 무언가가 어수선하지 않게 살포시 덮인 느낌이었다. 우리는 체크인을 마치고, 문화특구의 일부를 돌아보았다. 상업적인 공간도 많았지만, 곳곳에 예술 작품 전시 공간도 있었다. 전시는 메인 부스에서 티켓을 끊고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비가 조금 줄었지만 조금씩 흩뿌리다 말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핸드드립을 하는 커피숖에 들어가 아침 커피 한 잔을 즐겼다. 가격은 조금 비쌌다.
대만의 특징 중 하나라면, 도시마다 문화예술특구가 있다는 점이다. 타이베이에는 송산문창원구와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가 있고, 어제의 타이난에는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공원이 있다. 가오슝에는 이 곳 보얼 예술특구가 있고, 앞으로 가게 될 타이중에는 문화창의산업단지가 있다. 대만의 문화예술정책을 모르지만, 여행자의 느낌으로 보기에 대만은 문화예술과 그것의 실용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공간을 조성하고, 그것이 단지 예술창작만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구성한다. 서점이 있고, 체험이 있고, 공연이 있었다. 쇼핑공간과 다양한 먹거리, 포토존들이 가득하다. 이 풍경은 어색하지 않다. 한국에도 이런 요소들은 있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대만은 이런 공간을 오래되어 낡은 공간이나 스러져가는 산업단지 등등에 집약적이고 정책적으로 조성하여 사람을 모은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런 움직임은 주로 민간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부가 유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은 민간이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여행자가 대만의 예술특구들의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한국처럼 예술가들이나 민간의 노력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얼 예술특구를 다니다 보니, 이제 단지 이전을 고민한다는 제주의 화북산업단지가 떠올랐다. 그곳에 도정 주도의 이런 단지를 만든다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이내 내 생각의 용렬함을 깨달았다. 제주도정의 문화예술에 대한 시각은 그들의 무능한 행정력보다도 처참한 수준이고,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휘몰아간 제주에서 그런 공간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젠트리피케이션의 싸움터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예술과 실용의 의미 있는 접목으로 이어질까? 여행자로서의 공간은 무척 흥미롭고 즐길만했다. 그러나, 체험과 소소한 쇼핑들은, 만일 한국에서 이런 공간을 만난다면 쉽게 집어 들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취향과 감성이 회색에 가까운 인간이라 이런 박한 평을 하는지도 모른다. 창의적 디자인으로 실생활에 필요한 소품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소비자에게 있어 크게 두 가지의 판단을 가지게 한다. 기발하거나 취향저격의 소품이라 사지 않을 수 없다거나, 그저 구경하기 좋은 예쁜 쓰레기 거나..
늦은 점심으로 항원 우육면을 먹었다.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의 특징 중 하나는 맛이 차분하고 적당히 묵직하다는 점이다. 항원 우육면은 그런 맛집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집이었다. 요란하지 않은 맛을 좋은데, 면이 많아서 그런지 배가 너무 불렀다. 이 집은 육수가 많은 우육면도 좋지만, 다진 마늘과 매운 고추 소스를 넣어 비벼 먹는 우육면도 맛있다. 소스에 비벼먹는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그렇게 먹어 더 좋은 맛이 난다는 사실은 더욱 특이했다.
경전철을 타고 시쯔완 역에서 내렸다. 하마싱 철도 문화원구에서는 사람들이 하늘 높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며 날은 다시 해가 나오며 늦봄의 무더위로 변했다. 걸어서, 다거우의 영국 영사관으로 갔다. 가는 길에 빙수 거리도 미리 봐 두고, 치진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도 봐 두었다. 다리를 건너 영사관의 아래쪽 입구를 지나는데, 걷기 힘들다며 불평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바로 앞의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어갔다. 통창으로 내다보이는 시쯔완 바다와 가오슝 항구의 풍경이 맑고 아름다웠다. 그 풍경은 영국 영사관 위에서 더욱 아름다워졌다. 1865년에 언덕에 세워진 영국 영사관 건물은 타이완 최초의 영국인 건물이라는데, 식민통치자들은 한결같이 식민지의 풍경이 좋은 높은 언덕에 건물을 세웠다. 일본 고베의 키타노이진칸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그 건물은 그대로 후대의 유명 관광지가 된다. 역사의 굴곡과 후대의 즐거움은, 그저 그대로 자연스러워 보이면서도 신발 속으로 들어간 모래알처럼 껄끄럽고 불편한 여지를 남긴다. 우리는 국립 중산대학 쪽으로 좀 더 걸어, 유명하다는 교차 계단을 통해 올라가, 시쯔완쪽 영사관 입구로 내려왔다. 영사관 관람 티켓에는 음료 할인권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할인을 해도 영사관내 음식은 무척 비쌌다.
시쯔완역에서 동생네를 만났다. 두 명의 조카까지 네 가족이 방금 가오슝에 도착했다. 2년 전 타이베이 여행도 중간에 합류해서 같이 했었는데, 이번 가오슝 여행도 중간에 합류해서 같이 하게 되었다. 늦은 오후, 다시 보얼 예술특구로 들어가 구경했는데, 사람들은 오전에 비해 엄청 많아진 상태였다. 공터였던 곳은 푸드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공연장에는 밤 공연 리허설이 진행 중이었다. 그냥 서 있어도 밀려다닐 것 같은 그 엄청난 인파 속에서 우리 일곱 명은 서로를 챙기느라 정신없었고, 푸드트럭에서 무얼 파는지 둘러볼 겨를도 없었다. 그나마 먹어볼 만하다 싶은 푸드트럭엔 줄이 이미 엄청 길었고, 그 와중에도 대만 사람들은 반려견들을 데리고 다녔다. 종종 마주치는 반려견들끼리 신경전을 벌이거나,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에게 짖어댔다. 우리는 그 번잡한 공간을 벗어나 지하철을 타고 시내의 훠궈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루이펑 야시장을 갔는데, 시장 역시 이미 엄청난 인파에 파묻혀 있었다. 그 인파에 이미 질려버린 우리는 ’그래도 왔으니’ 하고 야시장의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단 한 블록만 둘러보고 그대로 다시 질려버려 야시장을 빠져나왔다. 다시 보얼 특구, 맨 마지막 창고에 있는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가오슝에서의 만남을 자축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