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은 과거 타이완의 수도였다. 16세기 이전 원주민인 펑포족의 땅이었는데, 16세기 중국 푸젠성의 한족들이 건너와 타이완의 근대사가 시작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식민 정책의 본거지였다가 이후 명의 정성공이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내고 약 200년 동안 타이완의 수도로서 역할했다.
타이난은 일본의 교토와 닮았다. 접근법도 비슷했다. 교토를 간사이 공항에서 하루카 열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들어가야 하듯, 타이난도 가오슝에서 MRT와 전철을 타고 한 시간 남짓 이동해야 한다. 교토가 고도로서의 유적이 많다는 점과 타이난이 과거 외부 침략의 흔적들이 많다는 점이 다르지만, 오랜 시간의 흔적들로 가득한 역사적인 도시임은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타이난을 겨우 하루 머문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준비 없이 다가간 여행자의 운명 같은 후회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가오슝 메인 역에서 기차로 40분 정도 이동하여 타이난 역에 도착했다. 설 명절이라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앉을자리는 없었다. 대신,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정보로는, 설 전날이었던 어제보다 설 당일 문을 여는 식당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설 명절에 문을 여는 식당이 많다는 사실은 명절 연휴에 같은 명절을 지내는 나라에 온 여행자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명절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여는 그들에게, 작은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절 연휴에 같은 명절을 지내는 나라를 여행하는 일은, 이래도 저래도 마음 편안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다닐 것인가. 고민하다가 여행안내소에 가니 안내 팸플릿을 주면서 88번과 99번 버스를 적절히 활용하라고 알려주었다. 작은 도시라 택시를 탈까도 싶었지만, 도로가 밀릴 수도 있고, 다닐 곳이 여러 군데인 상황에서 택시는 부담이었다.
시작은 하야시 백화점이었다. 1932년 설립된 대만 최초의 백화점이고, 1998년 타이난 도시 유산이 되며 2013년 다시 백화점으로 개장되면서, 차와 수제 소품들이 진열된 상업공간이 되었다. 외관과 실내는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되어 있었다. 옥상에는 과거 하야시 일가가 모신 신사가 그대로 있고, 패망 당시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벽면에 남아 있었다. 소소한 구경거리는 특별한 관심이나 감각이 있지 않으면 사고자 하는 마음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아내는 여기서 대만 차를 샀지만, 나는 구경으로 만족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층마다 이어지는 돌계단의 모습이었다. 90도로 꺾이는 완만함과 계단마다 돌 표면의 반질함에서 느껴지는 오랜 시간이, 어릴 적 어딘가에서 본 듯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도소월의 단짜이멘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새우살 튀김과 두부튀김은 맛있었고, 냄새가 많이 나긴 했지만 대창볶음 역시 괜찮았다. 우리는 걸어서 적감루로 향했다. 걸으며 보이는 도시의 풍경들은 그대로 시간이었다. 대만이나 중국 거리 특유의 지저분하고 낡은 건물에서 느껴지는 시간이 아닌, 오랜 건물들 자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물씬했다. 거기에 오가는 차들과 바이크들이 어수선했다. 야자수와 1월의 푸른 활엽수, 그리고 남쪽나라의 오랜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인도를 그늘지게 하는 아케이드 같은 건축양식들.. 타이난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과, 아시아 곳곳에 사는 사람들 삶의 미세한 차이들과, 위도 차가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의 차이들이 복잡하게 혼재된 독특한 도시였다.
네덜란드의 행정센터였던 적감루를 보고 나서,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99번 버스를 한 대 보내니 다음 버스는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도 설 명절은 대단한 휴일이라, 차와 사람들은 모두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정거장을 거슬러 올라가 자리 없는 99번 버스에 올라 서니, 적감루 앞에서 타는 사람들 중 몇몇은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한국도 아닌 대만에서 경험하며 우리는 안핑으로 향했다. 안핑도 사람으로 넘쳐나기로는 마찬가지..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덕기양행과 트리하우스로 향했다. 덕기양행은 1867년 영국의 무역상이 만든 건물로, 수입 수출을 담당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타이완 개척 역사 자료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네덜란드인들이 지은 건물들과는 색상이나 양식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안핑수옥은 덕기양행의 창고 건물이었는데, 버려진 뒤 용수나무가 건물 곳곳에서 자라며 벽과 지붕들이 나무의 줄기에 뒤덮였다. 지금은 적절하게 리모델링하여 산책과 문화예술구역으로 단장했다.
안핑 거리는 무역의 본거지가 되며 과거 가장 먼저 번화한 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딜 가든 오랜 과거의 흔적이 많이 보였고, 네덜란드 요새 등의 유적이 있으며, 지붕에 용이나 영물들을 요란하게 올린 사찰들이 있었다. 그리고, 차량통행을 막은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곳곳에서는 직접 만든 새우과자를 시식해보라고 나누어주며 열심히 소리 지르고 있었다. 특이한 유적 사이로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의 북적임과 눈에 익숙한 어수선하고 흥미롭지 않은 좌판들이 보였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대만인들은 그 복잡한 거리에서도 자신들의 반려견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개의치 않았다. 개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딱 반나절의 산책이면 좋을 동네에서, 북적이는 좁은 도로에 겨우 줄을 서 버스를 기다리니, 돌아가는 99번 버스는 가득 찬 사람들을 보여주며 문을 열지 않고 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모든 것에 지친 우리는 그냥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우선 안핑을 벗어나자는 마음에 목적지를 블루프린트 창의문화공원으로 했다. 아담하고 독특한 벽화와 소품들이 넘치는 거리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안핑 거리나 적감루처럼 사람들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기는 매한가지였고, 소소한 구경은 역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구매의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의 션농제 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심 한 구석에 남은 오래된 거리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사람들과 새로이 들어와 적절하게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게가 섞여 그대로 남겨져 만들어진 시간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거리는 구경에 머물 뿐이었다. 포인트를 찍고 다니는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적당한 크기의 아쉬움을 남겼다.
션농제 부근의 만두집이 괜찮아 보이길래 들어갔더니, 예약이 아니면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몇 개 없는 집이었다. 그냥 일어서려니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는 젊고 친절한 점원이 서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영어로 식사를 하고 가라고 권했다. 한국에 대단한 관심과 호의가 있어 보였다. 그냥 들어온 집인데 만두는 맛있었고, 타이난 식 미트볼 요리라며 권한 음식은, 타이난 식은 좀 다른가 싶게 독특하고 맛있었다.
택시를 타고 타이난역에 돌아와 오래된 타이난역의 내부를 한번 둘러보고 다시 기차로 가오슝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와는 같이 다니려 하지 않는 아들 녀석은 숙소로 바로 가겠다고 했다. 별 수 없이 녀석을 숙소에 내려주고, 아내와 나는 다시 루이허 야시장으로 걸어갔다. 간단한 우육면과, 중짜이지만 덩치가 꽤 좋은 생새우 구이를 먹었다. 우육면은 그럭저럭이었지만, 생새우 구이는 만족스러웠다. 중짜 다섯 마리에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었다. 타이난을 하루 만에 본 것은 너무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일이었다. 동시에, 아쉬움만큼 한국인으로는 뭔가 콕 짚어 설명할 수 없는 의아함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넉넉한 시간을 두고 여행하고 공부해야 하는 짐을 짊어지는 일이었다. 대만, 타이난을 여행은 디테일의 범주에 속하는 그들만의 특징을 경험하는 일이지만, 동아시아 여행의 어떤 공통분모 안에서 흥미가 더 이상 부풀지는 않음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