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바비를 이어 두 개의 태풍이 지나갔다. 마이삭은 대단한 위력이었다. 마이삭보다 더 강력하다는 하이선은 다행히 동쪽으로 기울어 제주와 멀게 지나며 피해가 덜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들과 마음에 담긴 부담은 너덜거렸다. 제주에 살면서 자주 겪으니 익숙해질 듯하면서도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태풍이다.
마이삭이 제주에 거의 근접한 시간에 나는 서둘러 퇴근했다. 갈색의 거친 토사물에 침수된 평화로를 간신히 지나고, 격하게 움직이는 와이퍼에도 앞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폭풍우를 힘겹게 지나 집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집도 난리가 나 있었다. 차문을 여는 것도 버거운 비바람이었다. 그 비바람에 아내와 아들 녀석이 나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남쪽으로 우리 집 마당을 가린 앞집의 벽이 바람에 무너져 우리 집 남쪽 경계와 텃밭을 덮쳤다. 그 벽 바로 옆에 있는 반려견의 집도 살짝 밀렸는데, 그 충격에 반려견이 놀라서 마당으로 뛰쳐나와 비바람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나는 목줄을 얼른 풀어 녀석을 현관 안으로 피신시켰다. 태풍의 위력은 점점 거세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버티는 수밖에..
북풍 위주의 거센 바람에 비가 실렸다. 북쪽으로 난 창과 창틀 사이에서는 바람에 실린 빗물이 역류해서 창틀을 타고 안으로 흘렀다. 시간이 지나며 미세하게 틈이 벌어졌는지, 몇 군데서 실금이 점점 짙어지더니 물방울을 만들고 벽을 따라 흘렀다. 마치, 바람이 빗물을 벽에 밀어 넣는 느낌이었다. 창틀 곳곳과 비가 새는 곳에 수건과 양동이를 대었다. 다시 버티는 시간.. 현관에 피신한 반려견에게 간식을 주며 나도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곳곳을 돌아보았다. 태풍의 절정이라는 시간에 평소에는 새지 않았던 천정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떨어지는 자리에 수건을 깔았다. 다시 버티는 시간.. 그렇게 늦은 오후와 밤을 지나 자정이 가까워지며 바람이 약해짐을 느꼈다. 밀려들어오듯 수건을 적시던 빗물도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밖을 나가보니 태풍 전 미리 눕혀둔 마당의 테이블이 바람에 밀려 있었고, 반려견 집은 옆으로 기울어 있었다. 필로티 위에 제비들이 만들어놓은 집과 내가 만들어 준 받침이 모두 떨어져 날아갔다. 덕분에 그 아래 세워둔 차는 제비집 진흙과 똥범벅이 되었다. 자정이 가까운 밤에 볼 수 있었던 피해의 일부였다. 바람이 약해지자, 현관에서 답답해하는 반려견 녀석을 리드줄에 연결해서 바람이 들지 않는 마당 구석에 매어주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마이삭에 제 모습을 제대로 보존한 채 버틴 것은 거의 없었다. 바람을 맞은 나무들은 초겨울 추위에 이파리를 떨구듯 가지만 남았다. 텃밭의 사과나무와 살구나무와 대추나무가 기울었다. 고추와 가지 등의 텃밭 것들은 바람 방향으로 모두 넘어졌다. 나무들을 다시 세우고 뿌리에 흙을 채워 다져주었고, 가지가 너무 많은 살구나무는 가지치기까지 해 주었다. 고추와 바질, 가지들은 지주대를 다시 세워 묶어주고 뿌리를 흙으로 단단히 덮어주었다. 앞집 주인이 와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무너진 담을 서둘러 복구하겠다 했다. 무너진 담에 로즈마리와 레몬밤 애플민트 덤불, 그리고 백리향 나무가 피해를 보았다. 마음이 아프지만, 크게 상심할 정도는 아니어서 마음 좋게 별 말없이 그러시라 했다. 담이 무너지니, 앞집의 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 집 마당으로 건너와 우리 집 강아지와 친구가 되었다.
뒤이은 태풍 하이선은 생각보다 거세지 않았다. 같은 북풍이 불었지만, 창틀을 넘어 빗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른 오전이 최대 고비라 해서 마이삭 때와 같이 수건을 창틀에 미리 대어주고, 빗물 떨어지는 곳에 양동이를 미리 대고 잠이 들었다. 고질적으로 빗물이 새는 곳을 제외하고는 창틀에서 빗물이 역류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태풍이 지나간 오전 시간, 마당은 생각보다 온전했고, 거센 태풍에 한 번 데인 반려견 녀석은 이 정도쯤이라는 여유로운 자세로 바람을 피해 누워 있었다. 이른 복구를 약속했던 앞집의 무너진 담은 연이어 불어오는 태풍 소식 때문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여유롭게 기다리기로 했다.
반려견의 집을 바람을 덜 타는 마당 안쪽으로 옮겨주고 리드줄을 활용해서 임시 활동공간을 정해주었다. 거센 비바람에도 무 싹과 쪽파 싹은 열심히 올라왔다. 미리 흙을 북돋아주어 그런지, 가냘픈 무싹 줄기가 꺾이는 일 없이 잘 버텼다. 반면, 배추는 거센 비바람과 계속되는 습기에 이파리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유황으로 방제를 했지만 그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심고 남은 배추 모종을 사라진 자리에 마저 심어 줄 예정이다. 가을 텃밭 준비는 태풍과 잦아진 폭우에 매번 힘들다. 봄 텃밭보다 예측도 힘든 데다 시기를 놓칠 수도 없으니 매번 마음만 불안하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작업이라는 마음으로 묵묵히 준비한다.
세 번의 강력한 태풍에도 마당 겹담 앞의 마지막 사과는 꿋꿋이 매달려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은근 바람을 피하는 자리여서 그랬던 듯하다. 색도 초록에서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고 있다. 좀 더 익으면 거두어서, 수험생 조카에게 보낼 생각이다. 강력한 태풍을 이겨낸 사과라는 타이틀을 부여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