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이선이 지나간 뒤 이틀 후, 앞집은 그제야 담장을 복구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이삭에 무너진 담장을 보며 복구를 가늠하던 중에 태풍이 하나 더 올라온다니 손대기가 애매했을 것이다. 덕분에 담장 아래 자리하던 로즈마리 레몬밤과 백리향, 아가펜서스는 무너진 벽돌아래 좀 더 깔려 있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괜찮다고 앞집 주인에게 말했던 나는 살짝 부아가 오르고 있었다. 꺼내놓은 말이 있으니, 언제 복구하려나 예의주시만 하고 있었다.
앞집은 담장 복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언뜻 보아도 십여 년은 되어 보이는 무너진 블록을 그대로 사용했다. 중간에 벽돌로 기둥을 세우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남의 집 재산관리이니 내가 무어라 할 말도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복구하며 떨어진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채 짓눌린 로즈마리와 레몬밤 덤불들은 이파리부터 상해가고 있었다. 넘어진 백리향은 뿌리 부분이 꺾여서 회생불가의 상황이었다. 덤불을 치우고, 굵은 줄기들은 톱을 잘라낸 뒤, 삽으로 뿌리를 캐내었다. 아가펜서스는 이파리가 녹아내렸다. 뿌리만 남기고 이파리를 잘라주었다.
담장 아래 공간이 휑하게 비워지며 쓸쓸해졌다. 그늘진 남쪽이라 더욱 그래 보였다. 무성해진 덤불을 때마다 정리해가며 구석 공터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만드느라 번거롭던 공간이었는데, 태풍 이후로 우여곡절과 대대적인 정리를 거치고 나니 너무 쓸쓸해져서 고민되었다. 3층 높이의 앞집 때문에 낮시간 내내 그늘진 자리라 나무나 화초를 심기에도 부적절했다. 그렇다고 공간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늘에서도 적당히 잘 자라면서도 경계수로 심을 만한 나무를 물어보니 광나무라는 나무가 있어, 나무 농장에서 두 그루를 샀다. 그리고 대추나무와 비파나무도 구입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그늘이 항상 지는 자리로는 광나무를 심었고, 해가 기울며 빛을 조금이라도 비추는 자리에는 비파나무와 대추나무를 심었다. 백리향이 있던 자리로는, 이전에 자리가 애매했던 배롱나무를 옮겨 심었다. 심고나니 나무들이 아직은 작아서 휑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렇지만, 나무가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자란 후에, 그리고 담장과 나무 아래 남은 허브 뿌리들과 씨앗에서 싹이 트고 공간을 채우면 괜찮은 풍경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2주 정도를 임시공간에 머물렀던 반려견의 집도 원위치시켰다. 임시공간에 머물면서, 녀석은 익숙하던 공간을 그리워했고, 이전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배변 자리를 다시 정하느라 힘들어했다. 그래도 항상 있던 마당이었고, 볕이 좋을 때 현관 앞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즐기며 익숙해지던 찰나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배롱나무 바로 옆의 공간에서 녀석은 다시 로즈마리 덤불 아래 익숙하던 흙바닥에 자리하기 시작했고, 배변도 하던 자리를 잘 찾아 누었다. 녀석이 돌아다녔던 마당 자리는 잔디나 풀들을 발톱으로 긁어대서 맨 흙이 드러나곤 했다. 태풍 이후로 임시공간으로 옮긴 후 2주가 지나니, 녀석이 만들어놓고 떠난 흙바닥은 잡초들로 빠르게 뒤덮였다. 그것을 복원력이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 빠르고 대단한 변화였고, 그것은 그대로 마당 일거리가 되었다. 조만간 호미를 쥐고 쪼그려 앉아 다니며 손을 놀려야 할 것이다.
배추와 무 모종은 태풍을 잘 견뎌내었다. 벌레는 좀 먹었어도 싹은 열심히 크기를 키우며 올라왔다. 초기 방제로 저독성 살충제를 가볍게 뿌려주었다. 무 싹은 간격을 두고 속아주었다. 쪽파는 심은 곳곳으로 줄기를 올리고 있었다. 바질은 씨앗을 넉넉히 뿌렸는데도 발아된 싹이 얼마 되지 않았다. 지주대 덕분에 마지막 태풍을 잘 견딘 텃밭 것들은 가을바람과 비에 마지막 결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호박 줄기가 너저분할 정도로 여기저기 뻗어 있었고, 중간중간 연황토색의 큼직한 호박들을 땅에 널브러뜨렸다. 손댈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고구마는 진녹색으로 이파리가 무성했다.
지난 주말 사이에 작업하고 둘러본 풍경들이다. 일요일 이른 오전, 한창을 작업하던 중에 반려견 녀석의 옆으로 무언가 익숙한 것이 마당에 굴러다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과였다. 그것도 3분의 일 정도 녀석이 갉아먹어버린 모습이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세 번의 강력한 태풍을 견뎌낸 사과였다. 내일이면 잘 거두어서 수험생 조카에게 보내야지 생각하고 있던 사과였다. 임시공간에서 녀석의 행동반경과 닿아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건들지는 않겠구나 했었다. 실제로 2주간의 임시공간에서 녀석은 매달린 사과에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마지막 날, 녀석은 어느새 사과를 따서는 그렇게 혼자 먹어버린 것이었다. 이런 허무한 결말이라니..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탄식했고, 녀석은 뭔지는 모르겠는데 주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눈치를 보며 슬슬 피했다. 녀석을 혼내봤자 모를 일.. 나의 소소한 계획은 나의 안일함과 녀석의 급작스런 관심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