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은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있었다. 세 번의 태풍이 지나가고, 잠시 사람의 손이 흐트러진 모습을 정리했을 뿐이다. 변하는 것 없이 모습 그대로 10월을 맞이했다. 아니, 차가워지는 공기에 방치된 고추들은 빨갛게 익기를 넘어 살짝 말랐고, 공간을 채우던 짙푸른 존재감은 힘을 잃고 바스라졌다. 손대지 않아 변함이 없었고, 손대지 않아도 스스로 변해갔다.
추석과 개천절과 주말이 만난 긴 연휴였다. 움직이지 않기로 한 이번 연휴는 섬 안에서도 돌아다니지 않는, 일종의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다. 고립도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연휴 전부터 연휴기간 동안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했고,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했다. 연휴 첫날 아침에는 마당에 그늘막을 치고 옆으로 텐트를 설치했다. 필로티 아래 주차장을 비워서 작업 공간으로 준비했다. 작업공간에서 나는, 반려견의 새 집을 만들었고, 우체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창고를 정리하고 낚시 거치대를 만들었다. 하루에 하나씩, 익숙치 않은 손과 감각으로, 잦은 실수와 적당한 만족으로 완성했다. 날카로운 기계소리와 바람에 날리는 톱밥과 나무 조각들은 복잡하고 어두운 머릿속을 상쾌하게 환기시켜 주었다.
손대지 않았던 텃밭으로 들어갔다. 여름이 지난 가을텃밭은 상대적으로 덜 분주하지만, 이번 가을에는 거의 방치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차가워진 공기에 바래고 기운없어진 줄기들 사이로 가을 잡초들이 듬성하게 자리했다. 녀석들도 고개를 쑥 올리고는 조금이라도 햇볕을 받으려 안간힘이었다. 나는 무심하게 녀석들의 줄기를 쥐고 뽑아 올렸다. 바랭이 명아주 달개비 꿀풀, 그리고 이름을 잊어버린 녀석인데 지네같이 초록 이파리달린 줄기를 땅에 붙이고 뻗는 것까지.. 고랑을 듬성하게 차지한 잡초들을 거두어 나갔다. 가을볕을 직접 맞으니, 몸에서는 땀이 흘렀다.
고추는 매달린 것 모두가 빨갛게 익어버렸다. 전부 거두었다. 줄기 끝에서는 고추꽃들이 적지 않게 피어 있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번식하려는 몸부림 같았다. 결국 사람의 양식이 될 것들..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늦게 많이 열려주면 좋을 뿐이다. 거의 시들어버린 가지 줄기로 매달린 몇 개의 가지를 거두었다. 일본가지라는 품종이 있어 심어보았는데, 녀석들은 추위에 좀 더 강했다. 자줏빛 줄기와 이파리를 여전히 유지했고, 꽃도 피워냈다. 가지도 시들지 않고 싱싱한 상태로 거둘 수 있었다.
뒤뜰에는 루꼴라 줄기가 마른 채 덤불이 되어 있었다. 떨어진 씨앗이 다시 발아하고, 생기가 아직 남은 줄기에서는 새 이파리가 나는 자체 생태순환의 풍경이었다. 미련없이 거두었다. 땅에 떨어진 씨앗들이 해를 넘기면 알아서 싹을 틔우겠지 생각했다. 주변으로 곳곳에서 땅 위로 줄기를 올리는 가시 돋친 두릅들을 잘라내고, 낮은 돌담을 아무렇게나 점령하고는 꽃을 피우는 환삼덩굴을 뜯어냈다.
뒤뜰에는 입주 때 심은 은목서 한 그루가 있다.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나무인데, 뒤뜰에서 알아서 잘 자랐다. 너무 잘 자라서 땅 위부터 여러 줄기가 기둥이 되었고, 잎이 무성했다. 나는 톱을 들고, 맨 아래 둥치 중에 적당한 굵기 하나를 잡고 톱질했다. 땀과 먼지 범벅이 되며 어렵사리 둥치 하나를 잘라내자, 이파리 잔가지 사이로 적당한 공간이 드러났다. 그 공간으로 톱을 넣어, 안으로 파고든 줄기를 잘라내고, 옆으로 뻗은 줄기들도 잘라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답답하게 뭉친 듯했던 나무의 모습이 시원하고 가벼워졌다. 그 뭉친듯한 줄기들 사이에서 짓다 만 새집이 발견되었다.
손을 댄 텃밭은 빨간 점들이 사라졌을 뿐,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뒤뜰 공간과 은목서의 모습이 시원해졌다는 것 정도다. 배추와 무는 열심히 자라고 있고, 쪽파도 빠른 속도로 줄기를 올리고 있다. 연휴라는 작은 휴식 안에서, 나는 텃밭을 손보았지만, 텃밭은 내가 손 본 것과는 별개로 알아서 모습을 달리할 것이다. 가을 텃밭의 여유는 여기서 비롯된다. 마당의 그늘막과 텐트는 훌륭하고 재미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다. 비가 오지 않아 더욱 그러했다. 텃밭을 오가며, 잠시 쉴 때엔 그늘막 아래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쉬는 동안, 나는 두 번의 낚시를 했고, 한 번의 라이딩을 했다. 간간히 손님들이 방문해서 나의 훌륭한 공간에 앉아 먹고 마시고 즐겼다. 올해의 마지막 무화과를 따서 그들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