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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장들

[동네의원 진료실] 아침과 저녁이 뒤바뀐 삶.

by 전영웅

내 진료는 오후에 시작된다. 오후에 시작하여 밤 9시에 마감한다. 진료시간을 그렇게 운영한 기간이 2년을 훌쩍 넘겼다. 병원 진료시간을 연장하면서, 의사 세 사람이 각각의 진료시간을 설정하고 번갈아가면서 담당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처음에 정해진 진료시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고정이 되어 버려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오후에서 야간으로 이어지는 진료시간이 조금 어색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어 아무렇지 않다. 나는 일정하고 고정된 일과를 좋아한다.


보통의 진료시간은 오전에 시작하여 저녁 즈음에 마감된다. 해 있을 때 일과를 마무리하고, 저녁식사와 잠들기 전까지의 자기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앞뒤가 뒤바뀐 셈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으니, 아침 늦잠은 불가능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 시간과 집에서 할 일들을 챙긴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출근하여 야간까지 일한다. 집에 돌아오면 약간의 출출함을 해결하고 잠시의 시간을 보내다 잠을 잔다.


뒤바뀐 일상은 삶의 모습도 뒤바꿔 놓았다. 말하자면, ‘저녁이 있는 삶’은 사라졌다. 대신, ‘아침이 있는 삶’이 되었다. 저녁에 퇴근하던 예전에는 진료를 마치고 지역 의사회 모임이나, 동문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가끔 일과 관련된 미팅도 있었다. 집에 일찍 퇴근하면, 해가 아직 남아서 퇴근하자마자 골갱이를 들고 텃밭에 들어가 잠깐씩 필요한 작업을 했다. 해가 저물어 빛이 거의 사라지는 때가 집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하루가 마무리되었구나’ 하는 안도가 있었다. 그러면 많이 먹어서 약간은 더부룩한 속을 느끼며 음악을 틀고 책을 집어들었다. 날이 선선하면 어둔 밤 동네로 마당에 키우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때때로 가볍게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날도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안도와 편안함이 있었고, 나름의 사회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진료시간이 바뀌자, 저녁은 사라졌다. 사회성이 별로인 내가 그나마 유지했던 사회적 관계는 전부 사라졌다. 참석할 수 있냐는 지역 의사회 총무의 문자에, 참석은 못해도 모임공지 문자는 잊지 말고 보내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 모임이 사라지니 시간을 온전히 내 중심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지만,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은 약간의 불안을 느끼게 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지인들이 종종 ‘언제 한 번 저녁이나 술 한 잔 합시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이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면 만나자는, 일종의 인사성 제안임을 알면서도, 거의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닿으면 조금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제일 큰 손실은 검도수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수련 마지막 시간이 8시 반인데, 9시 마감을 하고 제주로 넘어오면 빨라야 9시 40분이다. 그 시간은 마지막 수련시간에 참석한 이들이 수련을 마치고 정리하는 때였다. 정해진 근무일정 때문에 정규 수련시간에 참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약간의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다행히, 친한 검우이자 사범급인 형님이 시간을 맞추어서 도장에 도착하는 대로 같이 수련지도를 해 주셔서 일주일에 두 번은 검도수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소외감 그 자체였고, 출근은 오후에 하더라도 일과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니, 예전에 느끼던 안도나 편안함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아침이 있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일과를 시작하고 동시에 일과를 마무리해서 가 닿을 수 없었던 면들을, 아침 시간에 잠시 마주하고 닿아 볼 수 있었다. 주택을 관리하다 보면 여기저기 자잘한 수리나 관리가 필요한데, 아침일찍 문을 열고 저녁일찍 문을 닫는 건축자재상에 여유롭게 들를 수 있었다. 올해엔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는데, 인부들의 작업 전후로 나도 신경쓸 일이 많아 건축자재상을 자주 들나들었다. 자동차 정비나 수리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시간을 활용하여 다녀올 수 있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었다. 텃밭 역시 그러했다. 퇴근해서는 해에 쫓기듯 작업했지만, 오전시간에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한여름에는 더위와 햇볕에 쫓기고 출근시간도 의식해야 하지만, 작업에 여유가 생기니 텃밭관리가 꽤 수월해졌음은 사실이었다.


진료시간이 바뀌니 시선도 조금 이동했다. 진료시간에 따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달랐다. 정확하게는 환자들의 일상과 삶이 달랐다. 많은 경우,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을 얻어 병원에 들르는 환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변 식당에서 일하는, 점심 장사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들르는 식당주인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당뇨나 혈압같은 만성질환 약을 처방받으러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마도 조리시 발생하는 증기와, 덥고 습한 주방공기 때문인 듯 했다. 그리고 서서 팔을 많이 쓰다보니 손이 아프고 팔이 아프고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한 두시간의 쉬는 시간에 잠시라도 드러누워 쉬거나 잠을 청하면 좋을 것을 통증때문에 일부러 병원에 방문한다. 대부분은 진료를 받고 약처방이나 물리치료를 받고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그러나 가끔씩 환자가 몰릴 때가 있다. 그러면 진료가 밀리고 물리치료가 밀린다. 쉬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진료는 받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물리치료는 받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환자에게 많이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나보다 더 뒤바뀐 일상을 살아가는 환자들도 자주 만난다. 밤샘근무를 하고, 해가 있을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하다보면 오후가 되었다. 그렇게 몽롱하고 피곤한 몸으로 병원에 들러 약처방을 받거나, 피곤하니 수액을 맞고 싶다는 환자들도 있다. 야간근무는 발암 2급의 위험을 가진다. 그러나, 일의 특성상 밤에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일상은 해가 있는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니, 그 시간에도 얼마간은 깨어있지 않을 수 없다. 발암의 위험을 무릅쓰고 생계를 이어나가며 타인의 일상과도 얼마간은 겹쳐야 하는 그 피곤함이 환자의 몸을 망치고 있음을, 종종 시행하는 혈액검사 결과가 말해주기도 한다. 일상의 전환은 고사하고 결과에 따라 약처방이나 해 주고 있는 동네의사의 입장에서는, 이 환자가 좀 더 건강해지도록 지지가 되고 있는지, 아니면 그 피곤함 안에서 어떻게든 견디고 버티라는 달달한 채찍을 주고 있는 것인지, 자주 혼란스러워진다.


어쩌다 야간진료를 혼자 담당하면서 만나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그 시간이 아니면 진료를 받기가 힘든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수가 많지는 않고, 야간진료를 운영하는 병원은 365병원같은 다른 병원들도 있다. 그러나, 해저문 늦은 시간에 방문하는 환자들이 종종 말한다. ‘이 시간에 병원이 진료하는 줄은 몰랐어요. 가까우니 무척 좋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야간진료는 병원 운영의 입장에서는 계륵에 가깝다. 야간진료에 필요한 인력운영과 시설운영에 비해 방문하는 환자수와 처치수가 적다. 병원경영의 합리를 생각하면 야간진료는 중단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시간에만 올 수 있는 환자들을 만나다보면, 계산에 밝지 못한 나는 마음이 매우 약해져서 ‘야간진료는 해야겠구나.’ 싶어진다. 물론 다수의 의사가 경영하는 병원이니 각자의 피로감을 덜 수 있고, 병원이 커진 만큼 야간진료가 가지는 어떤 이미지도 중요해졌다. 그래서, 야간진료는 실리적 불리함에도 이어지는 중이다. 생각을 달리해 보면 야간진료는 정말 해야하는가의 문제는, 어째서 야간진료를 해야하는가의 문제로 돌려볼 수 있다. 일상의 잠시동안, 아프거나 불편한 몸을 위해 병원에 들를 여유는 왜 없는 것인지, 우리는 다같이 일하고 다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아프고 불편한 몸을 스스로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우리에겐 어째서 아직도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 점점 좋아진다는 세상의 구조의 민낯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일도 많다. 사회구조의 유지를 위한 특수인력과 분야는 24시간 운영이 필수다. 민간병원의 야간진료가 그런 필수의 영역에 있는지는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1차로 응급실이 존재하고, 2차로 민간병원은 말 그대로 운영을 민간주체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사회적 필수임을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해가 저무는 시간에 조금은 지친 모습으로 병원을 찾은 몇몇 환자를 진료하고 나면 나에게도 약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날의 간략한 결산을 하고 궁금한 의학자료를 찾아 잠깐의 공부를 하기도 한다. 어둠이 완전히 깔린 창밖으로는 맞은편 호텔이 보이고, 그 앞으로 여행을 온 듯한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둘셋씩 모여 호텔을 드나든다. 그러다보면, 누군가들이 여행을 오는 이 섬에 산다는 것에 약간의 이질감을 느낀다. 그 이질감 속에 존재하는, 누구나에게 공통된 구조의 중압이 느껴진다. 우리는 왜 일상의 구조 안에서 여유를 느낄 수 없는 것인가. 여행이라는 형식으로 타인의 일상 안으로 들어온 저들처럼, 우리에게 여유란 이질감을 안아야만 하는, 특정한 시간의 특별한 방식으로서만 가능한 것인가. 가만히 앉아 잠깐의 생각에 잠기다 별 생각없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몇 번의 클릭질을 하다보면, 밖에서 간호사들이 마무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준비한다. 바깥의 공기는 낮보다 시원해졌고, 어둠 안에서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낮보다 가볍고 편안했다. 40여분의 운전을 하고 집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반려견의 저녁을 챙겨주고, 쓰레기 버리기같은 자잘한 일들을 해야 한다. 그러고나면 몸을 씻고 침대에 몸을 누운 채, 머리맡의 책을 펴고 잠들기 전 까지 읽는다. 그게, 나에게 남은 저녁이 있는 삶의 파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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