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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Oct 30. 2017

[독후감]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혁명 이전과 이후를 아우르는 변화의 씨앗은 지금 존재하는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던 시대의 마지막 끝을 잡고 올라 선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풍경은 확실하게 변했다.  모든 것을 저당 잡히고 비좁은 교실과 기숙사에서 3년을 보냈지만, 그래도 학교가 제시하는 희망을 바라보며 버텼고 나름의 희망을 잡고 올라설 수 있었다.  지금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그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개인의 환경, 주변의 물질적 지지가 없지 않고서는 이전과 비교해서 현실적 희망은 많이 희박해졌다.  희박해진 희망이란 대다수의 절망과 우울을 의미한다.  각자의 노력이 답을 주지 않는 세상에서 실패는 각자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울은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혁명이 아닌 세상의 절멸을 원한다.  리셋을 원하는 분노는 개별화된 채, 세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치기 어린 행위로 또다시 개인화되어 처리된다.

  세상에 대한 절망을 깊이 담게 된 계기는 세월호였다.  희박해진 희망이 다시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로, 나의 아이를 바라보며 공부하고 움직였었다.  그러다가, 아무도 구해주지 않은 채 차가운 물속으로 수장되어버린 300여 명의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희망 앞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내가 사는 세상은 비루해졌고, 내 앞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절망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아이에게 제시해주기보다는, 이 난파선 같은 사회를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인 곳에서 삶을 펼칠 수 있게 준비하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빠르게 보였다.  더 절망적인 상황은 참사 이후였다.  사람들은 근거 없는 소문과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비교하는 언론과 정부의 입에 의존하여 ‘세월호 벼슬’ 운운하며 본질을 망각했다.  구조도 수습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는 정부의 태도 앞에서 분노는커녕,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제 그만 하자’라고 했다.  모든 것이 너무 쉽고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끝까지 세월호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절망에 괴로워하는 일은 한갓진 사람들의 여흥쯤으로 비난받을 정도였다. 

  엄기호의 글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내면을 압축적이면서도 보기 쉽게 정렬하고, 간결하면서도 꼼꼼하게 설명한다.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 흐르는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의문에 명료하게 설명해 나간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의문, 나의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어째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며, 내가 보고 겪은 현상들과 내가 느낀 감정들의 변화가 어째서 그러한가에 대해 되돌아봄과 차분한 정리를 쌓아갈 수 있었다.  세상의 변화를 느끼고, 세월호의 절망 안에서도 먹고살기 위해 바등거리며 이제까지 살아온 나는 그랬다.  이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는 다시 절망에서 희박한 희망을 되찾아 그것을 더 키우기 위해 공부하고 움직일 수 있을까.  내가 이 사회에서 입가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찾으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사회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이 책이 쓰일 당시는 박근혜 퇴진의 촛불이 광장에 한창 모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은 시점은 박근혜는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우리는 좀 더 나아 보이는 권력자를 내세워 세상의 변화를 맛보고 있는 중이다.  세상은 정말 변할 것인가.  나는 아직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고, 엄기호는 혁명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광화문의 촛불이 혁명이라면, 혁명 이후의 변화는 혁명 이전부터 곳곳에서 형성된 작은 씨앗들이 받아 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혁명의 과정은 이전과 이후의 권력자가 바뀔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혁명 이전에 어떠한 씨앗들이 생겨나고 있었던가, 그리고 혁명 이후의 지금 그 씨앗들은 발아를 시작하였는가.  일개의 구성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협소한 나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을 일이다.  사실, 촛불은 혁명이었는가부터 고민하는 입장이다.  어쨌든, 이 책이 제시한 혁명의 과정을 대입하여 내가 선 자리는 혁명의 이전인지 이후인지, 나는 어디선가 서서히 자라나는 싹을 바라보고 있는지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우울과 소속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는 고민이었으면 한다.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세상을 풀어내는 이 책 안에서 내가 시작한 고민이,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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