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가지 서쪽 외곽의 집에서 서귀포 신시가지에 있는 병원까지, 편도 약 42킬로미터의 거리이다. 걸리는 시간은 약 45분, 하루에 84킬로미터와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출근과 퇴근에 투자한다. 일주일에 6일을 꾸준하게 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출퇴근한 지 6년을 넘겼다.
처음 제주에 입도했을 때는 이 섬의 넓이가 맘에 들었다. 어디든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시공간 개념은 마음을 가볍게 했다. 게다가 차량정체도 없으니 운전은 쾌적했다. 한 시간의 시공간은 조금 좁다는 느낌도 주긴 했지만 그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시공간에의 적응을 의미한다. 적응은 인간의 행동반경이 시공간에 맞춰진다는 의미인데, 나는 적응이 빠른 편이었다. 이 섬은 점점 넓어졌고,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이 구분했던 산남, 산북, 동쪽, 서쪽의 공간을 나 역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구분된 공간을 넘어서는 일은 점점 힘들어졌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공간을 넘는 일은 큰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일주일에 6일을 산북과 산남을 왕복한다는 사실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하고 피곤한 일로 보였다. 그 일은 수도권에 비유하자면 날마다 일산과 분당을 차로 왕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는 서울과 대전을 날마다 왕복하는 일에 비유되기도 했다. 지금 근무하는 병원으로 출퇴근을 시작했을 당시에도, 이 섬에 적응된 몸은 경계를 넘는 고단함을 각오한 상태였다. 체감하는 그 먼 거리를 반드시 다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그게 의무감을 부여잡고 버텨야 할 정도로 부담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며 적응은 자리를 잡고 뿌리까지 깊게 박아, 체감의 부담은 체력의 부담으로 점점 변하고 있다.
의무감을 부여잡아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 아닌 이유는, 제주에서 하는 출퇴근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도심을 통과하는 구간이 아니라, 중산간 구역을 관통하는 도로구간이라 한적했고 풍경은 아름다웠다. 평화로라는 차가 많은 도로를 이용해야 하지만, 달리면서 보이는 주변의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것이 장거리 출퇴근의 부담을 지워주는 유일한 이유였다. 사계절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변하고, 계절의 변화는 운전환경에도 영향을 주는데 나는 그 변화마저도 출퇴근하며 즐길 수 있는 행운아였다. 그리고, 누구나 출퇴근은 가장 빠른 구간을 선택해서 운전하기 마련이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집에서 조금 빨리 나와 약간 돌아가는 구간을 몇 선택해서 출근을 했다.
집 마당에서 출발하여 동네 소로길과 밭 주변 소로길을 따라 산쪽으로 올라가 광령으로 나오면, 예전에 유명했던 가수가 제주에 내려와 차렸다는 소소한 까페를 지나 좀 더 올라가 평화로에 진입한다. 유수암의 비탈진 풍경과 어음에서 멀리 보이는 비양도 풍경을 살짝 보며 좀 더 달리면 우측으로 새별오름이 나타난다.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줄지어 선 새별오름을 지나 좀 더 달리면, 낮게 굴곡진 초원과 정물오름 등의 오름풍경들이 보인다. 제2 산록도로를 연결하는 교량을 아래로 가로지르면 내리막이 시작되며 정면으로 산방산이 나타난다. 그 옆으로 형제섬이 보이고 뒤로는 가파도와 마라도가 반씩 가려진 채로 보인다. 상창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잠시 속도를 즐길 수 있는 구간을 지나 중문입구에 이른다. 회수를 지나 엉또폭포 입구를 거쳐 서귀포 신시가지에 이르면 출근은 마무리된다.
요즈음엔 경로를 좀 다양하게 즐긴다. 최단거리는 광령에서 평화로로 진입하는 구간이지만, 장전에서 유수암을 거치거나 소길을 거쳐 소길 교차로에서 평화로에 진입하기도 한다. 가을에는 어음으로 좀 더 돌아간다. 어음 2리를 거쳐 아르떼뮤지엄 앞을 지나 산쪽으로 계속 오르면 억새가 펼쳐진 능선이 넓어진다. 멀리 새별오름의 뒷모습이 보이는 구간이다. 가을 어느 시점에만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풍경인데 요즈음엔 사진을 찍으러 오는 여행객들이 많아져서 한적함도 많이 줄었다. 한적함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구간은 중산간로에서 이달봉과 새별오름 옆으로 빠지는 도로이다. 가메오름과 이달봉 사이, 그리고 새별오름 옆으로 지나며 오르막길이 없어 좌측으로 펼쳐지는 오름들의 능선과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정상의 풍경이 아름다운 길이다.
제2 산록도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출근길이다. 평화로에서 옆길로 빠져 제2 산록도로에 진입하면 차가 좀 많고 골프장도 많아서 거슬리긴 하지만, 숲길을 달리는 기분이 들어 좋다. 이 길은 직선으로 쭉 뻗은 구간도 많아서 가로수 나무가지와 어우러지며 시선의 정면으로 길게 뻗은 2차선 도로의 모습은 경쾌하고 시원하다. 이 길의 압권은 봄에 펼쳐진다.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에 꽃이 만발해지면, 도로의 풍경은 자체로 작품이 된다. 꽃망울이 터지고 꽃이 만발하다가 꽃비가 내릴 때까지, 봄날의 제2산록도로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마력을 발산한다. 그렇게 달리다가 1100도로 초입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법화사 방면으로 내려가면 나머지는 엉또폭포 입구로 이어지는 길에 진입한다.
장거리 운전은 피곤하긴 하지만, 온전하게 홀로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는 독립된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다. 지루하지 않게 라디오를 켜두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차 주변의 도로상황과 환경을 주시하고, 스쳐가는 풍경들에 수시로 시선을 뺏긴다. 하지만, 머리속은 끊임없는 생각을 이어간다. 시선을 중심으로 한 신체감각의 자극이 오히려 머릿속의 생각을 끊임없이 굴려나간다. 마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말이다. 그것은 명확하게 구획된 독립된 공간에 머문다는 심리적 안정감 안에서 더욱 몰두하게 된다. 출퇴근은 부담과 피곤의 시간이자 작은 여행같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하루에 잠시 내 생각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누군가를 떠올리는 생각,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시간, 좋거나 좋지 않았던 기분을 내려놓으려 집중하는 시간.. 생각해보면, 나의 표정은 차 안에서 홀로 운전하며 생각에 빠져있을 때 가장 많이 변하는 듯 하다. 생각을 다듬고 정리해서 결론을 내거나 디테일을 구성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차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것이 장거리 출퇴근의 장점이다. 반복에의 지루함은 제주라는 섬의 풍경이 거의 대부분을 해소해준다. 오롯이 혼자 존재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자세를 다잡는 작은 기반을 만드는 공간과 시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출퇴근은 날마다 벌어지는 작은 여행인 셈이다. 피곤하지만 그 시간을 생각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며 보낼 수 있고, 수시로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피로를 걷어낸다. 반복된 풍경의 지루함은 나름으로 발굴해 둔 여러 구간을 때마다 골라 운전하며 다양함을 만들어낸다. 맑은날 흐린날 비오는 날, 그리고 안개, 눈, 사계절의 변화가 각각 저마다의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 이 섬이다. 따라서 풍경은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달리면서 해왔던 생각들.. 그것들은 내가 가진 미숙함들, 어느 순간 어디로 무심히 튈 지 모르는 무례와 무모를 통제하는 작은 방법들이었다. 감정과 말들이 가없이 튀어나오려 할 때, 애써 참아내며 한 번 더 돌아보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제주사는 사람들로서는 체감으로 힘들게만 보이는 하루 84킬로미터, 한시간 반, 일주일에 6번, 그리고 6년의 출퇴근은 그래서 가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슬슬 힘들어진다. 아름다움도, 사색의 요긴함도, 의지와 상관없이 힘들어지는 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어느 순간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잠시 졸음운전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다. 애써 졸음을 참아가며 운전을 이어나가던 며칠의 날들이 있었다. 그간의 장거리 출퇴근을 가능하게 한 제주라는 섬의 아름다움을, 감사함을 담은 작은 추억으로 남겨야 할 날이 머지 않은 듯 싶다. 다시 나는, 이 섬 안에서 다른 시선과 생각으로 아름다움과 감사함을 담을 추억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가까워졌음을 감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