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받았다. 나이에 따라 국가에서 제공하는 항목에 몇가지 만성질환 검사를 추가했다. 그리고 위 대장내시경과 복부초음파도 함께 받았다. 내시경은 수면으로 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검사를 마치고 운전할 일이 있어서 비수면으로 진행했다. 사실 비수면으로 진행한 데에는 호기로운 이유도 있었다. 환자에게 직접 시술을 행하는 입장에서 피검자가 되어 시술을 받아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위내시경 두 번과 대장내시경 한 번의 경험이 있었다. 참을만 하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어 굳이 수면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약간의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 내 몸 안에서 뭔가가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당연한 듯 일었다. 검사 직전의 환자에게 내가 별일 없을 거라고 다독이던 그 기분과 감정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없이 다독이며 실제로 대부분은 별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한 입장임에도, 두려움과 걱정은 때 되면 배 고프듯 본능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 문제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과, 난 걱정하지 않는다는 여유를 담은 표정을 애써 유지하는 것 뿐이었다.
맨 먼저 복부초음파를 시행했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를 반복하고, 몸을 좌우로 열심히 돌려가며 받은 검사 결과는 이상없음이었다. 표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를 부렸지만, 마음속에서는 안도의 감정이 내려앉았다. 모든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본능이었다. 없는 척 한 두려움과 걱정은 없지 않았고, 결과에 당연하다는 태연함은 거짓이었다. 뒤이어 채혈을 하고, 팔에 수액을 달고 누운 내시경 검사실에서, 나는 목으로 넘어가는 내시경 튜브를 느끼며 꺽꺽거렸다. 두 번의 경험이 주었던 만만함은 사라지고, 마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같은 괴로움이 몰려왔다. 대장내시경도 마찬가지였다. 항문으로 뭔가가 들어가는 느낌으로 시작해서 배 안쪽이 부풀어오르는 좋지 않은 느낌이 몰려왔다. 내시경이 어디를 통과하는 지는 느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공기가 들어가면 팽창되는 대장의 구간이 느껴지며, 대략 어디쯤 통과하고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대장내시경을 시술하는 입장에서 환자를 덜 아프게 하고 덜 괴롭게 하는 기술 중 하나는, 낭창한 내시경 튜브를 꼬이지 않게 잘 다루며 맹장까지 되도록 단시간에 삽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튜브가 꼬인다면, 그것을 잘 풀어가며 삽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술자의 기술적 요건이기도 하지만 검사를 받는 이의 대장의 상태에서도 기인한다. 내 경우는 후자였던 것 같다. 특정 부위에서 내시경 삽입이 조금 어려우면서 복통이 생겼다. 배가 벙벙해지고 불편하던 느낌은 특정 부위를 통과하면서 조금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변했다. 수면을 하는 이유는 대장내시경 시술 자체의 민망함에도 있지만, 이런 통증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잠시 후회를 했었다. 그냥 수면으로 진행할 걸 그랬나.. 그러나 이 통증도 잠시였고, 나는 대장내시경을 별 문제없이 단시간에 마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용종이 두 개 있어 용종절제술도 시행했다.
전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검진이었다. 며칠 후에 확인한 혈액검사 결과 역시 큰 문제는 없었다. 모든 결과를 확인한 내 기분은 홀가분이었다. 이전의 검진보다는 조금 어긋난 것 같은 자잘한 문제들이 보이긴 했지만, 내가 막연하게 느낀 불안과 걱정은 기우였음을 확인했다. 다시 나는 피검자에서 시술자 또는 주치의의 입장으로 돌아간다. 검사 전 막연하게 별 일 없을 거라는 다독임이 실제로 별 일 없음으로 판정이 나면 나와 환자는 모두 행복하다. 그러나, 발견된 문제가 만만치 않을 때, 나는 민망해지고 미안해진다. 막연한 긍정은 나 스스로에게도 불확실함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확인하고서야, 막연한 긍정이 실제의 긍정으로 판정되고 나서야, 애써 아무렇지 않아하던 나의 마음 안에서 안도라는 고요가 찾아왔다. 마치 파도치던 바다가 잔잔해지듯이..
경험이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상대가 경험했던 일을 내가 적어도 비슷하게 경험할 때, 나는 상대를 온전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위내시경을 앞둔 환자에게 잠깐이면 끝난다고 다독이던 내가 피검자가 되었을 때, 잠깐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괴로운 시간임을 깨달았다. 내가 대장내시경을 받고 나니, 그 이후에 나에게 대장내시경을 받는 환자에게 설명을 포함한 말이 많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술을 진행하며 손과 몸이 좀 더 조심스러워짐을 느꼈다. 이해는 경험에서 나온다. 나는 여전히 막연한 긍정으로 환자를 다독거리겠지만, 주어진 결과를 두고 좀 더 조심스럽고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작은 경험만으로도 사람은 달라진다. 가난과 우울을 겪으며 성장한 사람이 마음의 여유는 부족할 지 몰라도, 타인의 가난과 우울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하고 다독이는 방법을 안다. 어릴적 소아백혈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소아과의사가 되어 아픈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기사를 오래 전 본 기억이 있다. 텃밭에서 오래 앉아있거나 오래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보면, 병원을 찾는 할망 할아방들의 걸음이 어째서 어기적거리는 모습인지, 어째서 팔 다리 허리가 아픈지 이해할 수 있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 안에서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것이 옳은지 틀린지 되돌아보지 않고, 본 것 그대로 믿어버린다. 간접경험이라는 말은 그래서 무섭다. 자신의 편견이 얼마나 그릇되고 타인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끼는 편이다. 3년전 제주에 예멘 난민이 입도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잠재적 범죄자이자 문화와 환경을 해치는 주범들이라며 비난과 혐오를 쏟아부었다. 비난과 혐오에 반대하되 예멘인들의 고통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말을 아끼고 있을 때, 나도 난민이었다 말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폭력을 피해 고향을 떠나 아는 이 하나 없는 타향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막막하고 두려운 삶을 살았던 여인이다. 충격적인 참사였던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전히 다독일 수 있었던 이들은 1999년 화성 씨랜드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었다. 고통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경험을 겪어 본 이들 뿐이다.
경험은 공감의 능력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자체로 타인의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은 경험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경험은 하나의 관념이 되고, 관념은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의식 내부에 축적되어 감정과 판단의 바탕이 된다. 18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책임있는 행동은 이성을 예민하게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고통과 행복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을 예민하게 갈고 닦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성과 감정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성숙한 이성의 판단에 따르자면, 가난을 견디지 못해 지하 셋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의 고통과 슬픔보다, 방금 책 페이지 모서리에 베여 살짝 피가 나는 내 손가락이 더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함께 드넓은 바다의 풍경을 즐기는 것보다, 바다의 풍경을 해치든 말던 간에 내가 가진 바닷가 땅에 높은 건물을 지어 임대수익을 올리는 일이 더 옳은 일일 수 있다. 시술의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한 의사가 단지 자신이 배운 것만을 바탕으로 배려없고 기계적인 시술행위만 반복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내 앞에 앉은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진단에 맞는 약만 처방하며 무심하거나 때로는 상처되는 말을 쏟아내더라는 일부 의사들의 모습을 성토하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그러나, 경험은 의식과 감정의 바탕이 되어,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 또는 공동체를 위한 선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더구나, 단지 아는 것을 경험한 것인양 착각이 만연한 세상에서, 경험은 점점 소중해진다. 직접 경험하고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경험이 없어 잘 알지 못하는 일에는 되도록 말을 아끼는 사람들 역시 귀한 세상이다.
간만에 내시경 좀 받아 본 경험으로 생각의 가지가 너무 멀리 뻗어버렸다. 진료실에 앉아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수많은 처지와 다양한 통증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 수많은 것들을 전부 알 수 없다. 지식과 자격을 가진 의사로서 증상의 이유를 설명하다보면, 환자들은 때로 애매하고 묘한 표정을 드러내곤 한다. 지식만으로 설명되는 영역 너머의, 내가 온전히 알 수 없는 배경의 무엇이 빠져있을 때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의 한계를 깨닫는 나는 서둘러 치료방법을 설명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아픈사람은 많지만, 그 아픔을 다룬다는 의사는 그 수많은 아픔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겸손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비단 진료실 안에서만의 문제일까? 오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경험없는 무모한 이해는 서로의 불신만 낳는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몇 마디 말에서 그의 몰이해는 금방 들키기 마련이다. 수많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도 선명하게 그런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의 모습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