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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Dec 19. 2021

개원준비 중.

  개원을 생각한 것은 올해 초부터 였다.  집 가까운 곳에서 개원하고 싶어 집 중심으로 공간을 설정하고 수시로 돌아다녀봤지만, 마땅한 자리는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의 개원과 함께하기로 한 약사 친구가 좋은 자리가 났다며 보러 가자고 한 때가, 아침부터 볕이 뜨겁던 한여름이었다.  원하던 공간과는 반대쪽으로,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직접 가 보고 살펴본 바로는 꽤 괜찮다는 판단이 들어, 며칠의 고민을 잇다가 임대계약을 맺었다.  내가 앞으로의 인생 대부분을 발붙일, 아니 발을 붙여야 하는 자리와 공간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살면서 무언가를 하기에 적절한 시기를 종종 이야기한다.  개원을 준비하면서, 나 역시 스스로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적절한 시기인가..  돌아보면, 적절한 시기라기 보다는 할 때가 되어서 한다는 느낌이다.  제주에서 봉직의로 일하면서 나름의 여유와 즐거움을 찾고 있을 때, 주변의 동료들이 개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개원을 생각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베짱이같은 삶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나이 마흔 중반인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개원을 더 이상 미루면 영영 할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절박도 존재한다.  여일함을 유지하고자 함이 내 천성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의사로 살면서 나름 삶의 재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래서 나름 잘 놀고 잘 살아왔으며, 이제 적절한 때가 되어 내 스스로 운영하는 의원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늦어보일 수도 있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저 흐르는 시간에 삶의 순리를 띄운 듯, 자연스런 과정이라 생각한다.  


  인테리어 공사는 한 달째 진행 중이다.  반 이상 진행되었고, 연말이면 마무리가 된다.  추석 전후로 인테리어 업체를 만나 공간을 상의하고, 도면을 구상하며, 견적을 비교하며 업체를 선정했다.  수없었던 고민들, 잘 알지도 못해서 비교조차 혼란스러웠던 그 때는, 생각이 깊이 뻗어나가 외로움마저 느꼈다.  직접 하지 않는 일은 마음에 온전히 들 수 없는 법이고, 잘 모르기에 질문은 넘치고 관여는 조심스럽다.  나 역시 하나의 분야를 거머쥐고 세상의 구조에 서 있는 사람이기에, 마음은 그런 조심과 조바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건축주라는 주인의 입장만 남기고 계약과 동시에 을이 된다.  업체를 선정하고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착수금을 입금하는 순간이었다.  수없던 고민은 다른 형태로 이어져, 만족스럽게 잘 될 것인가라는 고민이 되었고, 통장에서 돈이 나가는 순간 이제는 발을 뺄 수도 없음을 직감했다.  정해진 도면은 나의 유일한 판단기준이 되었고, 그마저도 수시로 수정해가며 좀 더 나은 효율공간이기를 바랬다.  인테리어 작업도 먹줄이 튀겨지는 순간, 도면은 돌이킬 수 없이 고정된 공간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만들어지는 공간은 도면에서 느꼈던 공간과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 냈는데, 공정과 비용을 생각하면 고집보다는 타협이 필요했다. 


  시간은 나를 짓눌렀다.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는 시기라고 나는 온전히 거기에 집중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서 진료를 이어가야 했다.  게다가 12월은 검진철이라 무척 바쁘고, 코로나19 판데믹과 관련하여 백신접종 업무까지 겹쳐 있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지만, 해가 있는 시간은 온전히 병원 진료실에 붙박혀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인테리어 공사가 반쯤 진행되면서, 병원에서 사용할 장비들을 알아보아야 했고, 같이 일할 구성원들을 고민해야 했다.  해가 진 저녁이면 산을 넘어 올라가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공사현장을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가며 둘러보았다.  장비업체 담당자를 만나 장비 견적과 스펙등등을 따져가며 어디와 계약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개원과 운영에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도 했다.  동이 트는 순간에 집을 나와 한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기이고,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확정해야 하는 때이다.  마당의 반려견은 요즘 나만 보면 낑낑대는 일이 잦아졌다.  퇴근을 하면 어느때보다도 반가워하며 앞 발을 한껏 들고 만져달라고 한다.  잠깐이라도 놀아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시무룩해지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 와중에 나는 일상은 유지하고 싶어서, 시간이 나는대로 검도를 하고 식사시간 잠깐에 헬스장을 다녀온다.  주말이면 반려견 녀석을 산책시키려 하고, 한두시간의 짬낚시도 다니곤 한다.  정말 24시간이 모자란 시기이다.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서의 정리도 나름의 일이다.  6년 넘게 근무한 공간에는 내 흔적들이 자잘하게 널려있었다.  12월에 접어들면서, 나는 그 흔적들을 조금씩 정리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처음엔 책들을 조금씩 가져왔고, 그 다음엔 진열한 건프라를 가져왔다.  서랍의 너저분한 소품들을 정리했고, 이제는 화분과 그림을 정리해야 한다.  마지막에는 이 병원에 오면서 장만했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흔적을 지우는 일은 어렵다.  물리적으로는 치워낼 수 있어도, 마음의 흔적과 생채기같은 자잘한 흔적들은 치우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눈물이 많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날에 진료실을 비우면서, 나는 아쉬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인가..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는 지분의 정리다.  봉직의에서 공동원장 형태로 전환한 지가 2년을 조금 넘겼다.  그리고, 지분을 정리함에 있어 기준이 분명하지 않고 논의가 잘 되지 않고 있다.  계약서는 그저 모호한 기준으로 남았다.  그게 마음을 아쉽게 한다.  유종의 미가 있다면, 나는 마음의 의미에서 시작하고 고민한다.  현실은 그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내가 어째서 그런 늪에 스스로 발을 담구어 버렸는가..  조금 후회스럽다.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으니, 수업료라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인테리어 중간중간에, 장비 설치를 위한 추가 작업이 있었고, 보안문제를 상의해야 했다.  그에 따라 추가적인 작업과 동시 진행해야 하는 작업들이 보인다.  가장 급하게 해결해야 했던 방사선 장비 작업은 해결이 되었고, 이제 곧 내시경과 충격파 장비 계약을 해야 한다.  나보다 먼저 개국하는 1층의 약국은 이제 막 간판을 달았다.  그 친구가 먼저 업무를 시작하면 나도 따라서 준비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그 때는 해가 바뀌어 있을 것이고, 나는 조금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개원 준비에 좀 더 적극적일 수 있게 된다.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고, 개설신고를 하고, 추가적이고 자잘한 장비들을 체크해야 한다.  대출을 받아야 하고 인원 구성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개원 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 점검해야 하고, 나는 이제 어떠한 모습으로 일상을 꾸려야 하는가 하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과 고민들에 파묻혀, 나는 요즘 차분하게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내 삶의 중요한 변화를 기록하는 작업인 동시에,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살아가는 일은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무언가 다가오는 대로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낙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낙관이 흔들릴만큼 다가온 무엇이 무척 버겁고 묵직하다.  해결되지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만이 묵직함을 버티게 한다.  


  산을 오르는데, 오를수록 짐은 점점 무거워질 것이라는 뻔히 보이는 부담을 당연하듯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할 때라는 것도 무심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런데, 이게 남들 다 겪는 과정이라는 당연함으로 부담을 눅여야 하는 것인지, 자본주의 의료안에서 머무르게 하는 세상의 구조가 짊어지우는 일종의 부당함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 사고와 사상의 가장 근본에 자리한,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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